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지난 2일 공개한 중·고교 역사·한국사교과서 집필기준 시안을 놓고 보수와 진보 간 이념 논쟁이 재점화 되는 양상이다. 시안은 오는 2020년부터 쓰일 새 교과서를 만들면서 적용할 가이드라인으로, 교육부는 의견 청취와 함께 심의 및 자문을 거쳐 7월초 최종안을 확정할 계획이다. 시안에서 논란이 일고 있는 부분을 꼽자면, 대한민국이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란 기존 표현을 뺀 것과 ‘자유민주주의’ 대신 ‘민주주의’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로 한 것, 더불어 ‘대한민국 수립’을 ‘대한민국 정부 수립’으로 수정한 것 등이다.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 삭제에 대해 시안 연구진은 1948년 유엔(UN) 결의에 대한민국이 ‘유엔한국임시위원단 감시가 가능한 지역에서 수립된 유일한 합법정부’라고 돼 있으며, 남북한이 1991년 유엔에 동시 가입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보수 진영은 유엔 결의 일부 구절, 전체적 맥락 등을 따져볼 때 대한민국은 유엔이 인정한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가 맞다고 주장한다. 진보 색채를 담은 것으로 평가받는 시안이 현행 교과서의 집필 기준과 상충하는 내용이 적지 않은 것을 감안하면 최종안에 도달할 때까지, 또 그 이후에도 진보·보수 입장에 따른 해묵은 정치적 논쟁이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교과서를 만드는 일은 정치 성향을 둘러싼 문제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정권에 따라 역사교과서 내용도 바뀌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나마 이번 시안은 기준이 지나치게 세세하다는 비판을 고려해 박근혜 정부 당시 개정 교육과정 집필 기준의 6분의 1가량으로 적은 분량을 제시했고, 교육부도 ‘개입의 최소화’를 표명하는 등 긍정적 변화 의지를 보였다. 나아가 궁극적으로는 자유롭고 다양한 역사 교과서가 나올 수 있도록 제도적 뒷받침이 마련돼야겠다.
박근혜 정부의 국정교과서 강행이 국민 저항에 가로막힌 이유는 역사를 보는 관점 중앙에 정치적 잣대가 드리워졌기 때문이다. 불신을 초래하는 이념 논쟁의 대상이 아닌, 역사교육을 바로 세우기 위한 교과서가 필요하다. 최종 고시까지 남은 기간 동안 중립적 시민사회, 학계, 교육계 등의 의견을 수렴하고, 충분한 토의를 거쳐 도출한 합당한 결론을 통해 소모적 사회 갈등을 완화해야 할 것이다.
김성일 기자 ivemic@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