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2월 10일. 대한의사협회가 첫 거리투쟁을 벌였다. 맹렬한 추위에도 1만여 의사들은 ‘문재인 케어’ 반대피켓을 들었다. 당시 비상대책위원회 이필수 위원장은 국민 건강권 수호와 의료계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보다 적극적이고 강력한 대책이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2018년 3월 18일. 시도지부회장 등 1000여명의 의료계 대표들은 또 다시 거리로 나왔다. 이들은 정부의 상복부초음파 급여화 고시에 반대하며 비급여의 급여화 핵심인 예비급여의 허구성을 강조했다. 국민의 의료비 부담은 줄지 않고 의료계만을 통제할 수단이라고 비난했다.
2018년 5월 20일. 전국의사들의 2번째 총궐기대회가 있었다. 역시 1만여 의사들은 ‘문재인 케어’ 반대피켓을 들고 거리로 나왔다. 피켓의 내용은 1차 궐기대회와 조금 달라졌지만 결국 정부의 보장성 강화정책의 방향성을 문제 삼는 문구들로 채워졌다.
3차에 걸친 의사들의 가두집회를 통해 전해진 메시지는 분명하다. 의료계가 더 이상은 희생하며 버틸 수 없어 몰락하고 있고, 의사들은 연일 병원 폐업을 고민하며 고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문재인 케어가 도입될수록 의료계는 힘들어질 것이라는 점이다.
의사들의 이 같은 절규 섞인 외침과 행동에 동정표도 늘었다. 적어도 의료계가 무엇을 걱정하고 힘들어하는지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이들도 생겼다. 하지만 동시에 의료계, 의사를 향한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이들 또한 많아졌다. 득과 실이 모두 존재하는 상황이다.
◇ 생명을 살리는 전문가 vs 생명을 이용하는 자영업자
최대집 대한의사협회장은 지난달 30일 2019년도 의원급 의료기관의 수가협상과정에 대해 비난하며 정부를 향해 “의사들을 공무원으로 착각한다. 우리는 민간자영업자”라고 강조했다.
건강보험 강제지정제로 의사들의 뜻과 무관하게 강제로 건강보험의 틀 안에서 일하지만 교육부터 시설·장비, 고용에 이르기까지 근본적으로 소요되는 모든 재정을 대표가 부담하는 구조인 만큼 통보와 지시의 대상이 아닌 협조를 구해야할 동등한 입장이라는 주장이다.
일견 타당하다. 납득이 안 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안타까움마저 든다. 사람들도 의사들의 현실과 실상, 어려움에 대해 좀 더 이해하고 고민하며 받아들이는 모습이다.
학창시절 내내 전교 1~2등을 다투며 공부와 씨름했고, 10여년간 해마다 수천만원을 학비와 교육비 등으로 쏟아 부었으며, 매순간 생명의 무게를 실감하고 부담하는 의사들. 수십에서 많게는 수만명의 생계를 책임지거나 일조하며 하루에도 수십명의 환자를 봐야하는 삶. 많게는 80시간 이상을 근무하며 쪽잠에 시달리는 생활. 원했지만 원하지 않는 의사들의 일상 말이다.
이러한 일상 속에서 의사라는 전문가의 판단을 제도적 한계, 재정적 여건, 정책적 제한에 의해 통제되고 억압된다면 반발하는 것이 당연하다. 의사가 되기까지, 의사로 생활하며 아무런 지원이나 혜택도 제공하지 않으며 규제하고 압박한다면 삐뚤어지는 것도 이해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생명을 다룬다는 측면에서 사제와 같은 존경과 우러름을 받아왔던 위치가 장사치로 평가절하 되고 있다는 점이다. 거리로 나오며 외치는 목소리에, 기자들 앞에서 자영업자라며 스스로를 칭하는 모습에, ‘선생님’이라며 우러르던 시선은 ‘의사X들’로 낮아지는 양상이다.
다름을 다름으로 받아들이고 서로를 동등한 인격체이자 인간으로 인식하려는 시대적 변화도 한 몫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존중돼야할 희생과 노력, 전문성은 의사들이 거리로 뛰쳐나오며 함께 거리에 버려진 형국이 됐다.
최근 만난 한 의사는 “밖에 나가면 의사라고 소개하기 부끄러워지고 있다. 주변 시선이 곱지만은 않은 상황”이라며 낮아진 의사의 위상과 존중보다는 힐난이 담긴 눈초리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하고 있다고 전했다.
◇ 득 보다 실? 기로에 선 의사들
흔히 투쟁은 양날의 검이라고 한다. 원하는 바를 강한 어조로 전할 수 있다는 장점과 함께 본인을 포함한 불특정 다수의 피해와 희생을 각오해야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득실을 명확히 따지고, 철저한 전략과 준비를 거쳐 투쟁여부를 결정해야한다.
이 같은 측면에서 의사협회의 3번에 걸친 거리투쟁은 분명 득보다 실이 컸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의사에 대한 동정여론보다는 반대와 반감이 커졌다.
얻은 것이라곤 긍정과 부정에 대한 논의는 뒤로하고 최대집 회장의 인지도와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과의 끈끈한(?) 관계 정도다. 억지를 조금 부려본다면 의료계의 의지가 명확히 전달됐고, 이 과정에서 적과 아군이 명확하게 구분됐다는 정도다.
반면, 잃은 것이 더 많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의사의 이미지는 장사꾼으로 격하됐고, 의료계를 향한 부정적 사회인식이 강화됐으며, 정부나 보건복지부, 사회의 동의를 얻지 못했고, 협조 또한 이뤄지기는 요원한 상황이다.
심지어 근거나 논리의 부족으로 인한 투쟁명분과 지지층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는 평도 들려온다. 한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는 의사협회의 가두집회에 대해 ‘명분 없는 떼쓰기’라고 비난했고, 의료계 내부에서도 ‘최 회장의 국회진출을 위한 발판’이라는 말이 떠돌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의사협회는 제3차 전국의사총궐기대회를 추진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올해에만 3번째 거리투쟁이다.
적정수가 보상 약속의 이행 요구와 사회적으로 불고 있는 의료기관에 대한 규제강화 및 의료사고 등에 대한 의사책임 강화 움직임에 대한 의료계 내부의 반대여론이 높아지고 있고, 이를 사회와 정부에 전할 필요도 있다. 인정한다. 이해도 된다. 일견 해야하기도 한다.
하지만 신중하게 결정해야할 문제다. 지금의 여론과 사회적 분위기, 정부기관을 비롯한 주변의 시선을 무시하고 갈 때까지 가자는 식으로 밀어붙이는 것은 스스로의 목을 칼날에 들이미는 꼴이 될 수도 있다.
투쟁은 분명 양날의 검이다. 거리에 나서기 전에 칼날을 날카롭게 갈고, 스스로가 베이지 않도록 논리와 근거로 무장한 후 주변의 지지를 기반으로 함께 나서야 한다. 무뎌진 칼날은 베지 못하고, 날카롭게 벼려진 칼도 준비 없이 휘두르면 자신이 다칠 뿐이다.
의사협회는 지금 돈키호테가 될지 이순신이 될지의 기로에 서있다. 부디 이순신 장군이 12척의 배로 일본함대를 격파했던 것처럼 잃어버린 위상과 존경, 숭고한 정신을 다시금 쟁취할 수 있길 기대해본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