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여행 3일째 날이다. 전날 일찍 잠자리에 든 탓인지 2시에 잠을 깼다. 정신이 말똥말똥해지는 바람에 다시 잠들기를 포기하고 어제 일정을 정리했다. 여행을 하면서 정리해둔 기록 덕분에 이 여행기를 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시간을 맞추어 식당에 갔는데, 아침 차림이 아이들 말대로 ‘완전 짱’이다. 여행할 때는 꼭 챙겨먹는 찐 달걀, 스크램블, 후라이 등 계란 3종 가운데 후라이가 빠졌지만 베이컨이 있고, 사과, 바나나에 오렌지가 더해진데다 야채까지 넉넉하게 차려졌다. 아마도 이번 이탈리아 여행 전체의 아침 가운데 최고가 아니었나 싶다. 발칸을 여행할 때 하루 묵었던 베네치아 숙소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수준이다. 여행사의 차이였나 싶기도 하다.
8시에 숙소를 출발했다. 구름이 얇게 깔려있지만 비가 올 것 같지는 않다. 기온이 섭씨 6도라서인지 여전히 쌀쌀하다. 응달에는 어제 내린 눈이 남아있다. “白雪(백설)이 잦아진 골에 구루미 머흐레라”라면서 스러져가는 고려왕조의 현실을 안타까워하던 목은(牧隱) 이색(李穡)의 시조가 떠오른다. 시조에 담긴 뜻을 베네치아의 아침에 비유하는 것이 생뚱맞아 보인다. 하지만 그날 아침 분위기가 그랬다는 것은 아마도 학창시절 암기교육의 위대한(?) 힘이 아닐까 싶다.
베로나에 가까워지면서 야트막한 언덕 위에서 흘러내린 포도밭이 평지까지 넓게 펼쳐진다. 9시반경 베로나에 도착했다. 베로나(Verona 또는 Veròna)는 베네토(Veneto)에 있는 도시로 인구는 25만8108명이다. 광역으로 확대하면 인구는 71만4274명이다. 베로나지역에는 오랜 옛날 아드리아해의 베네티족에 밀려난 에우가네이(Euganei)족이 거주하다가 기원전 500년 무렵 켈트족의 일파인 케노마니(Cenomani)족에게 정복됐다. 기원전 300년 로마제국이 포강지역을 점령하면서 로마제국에 편입됐다.
베로나는 이탈리아 북쪽의 교통요지다. 베로나라는 이름은 ‘루트 베르(root wehr, 방어벽)’와 관련된 강가의 요새지역을 의미할 수도 있다. 기원전 148년에서 기원전 147년 무렵에 비아 포스투미아가 건설되면서 도시에 로마 가도와, 격자형의 도시 구획이 만들어졌다. 이어서 원형 경기장과 로마의 극장, 돌로 만든 피에트라 다리(Ponte Pietra)를 포함한 여러 공공건물들이 건설됐다.
서기 476년 동고트족의 테오도리코 1세가 이곳을 본거지로 삼은 뒤로 567년까지는 고트족, 774년까지는 롬바르드, 그리고 1000년 무렵까지 신성 로마 제국의 지배를 받았다. 1259년부터 1387년까지 스칼리제르 가문이 지배하다가 1387년에는 밀라노의 잔갈레아초 비스콘티(Giangaleazzo Visconti)가 베로나를 정복했다. 1405년부터 1797년까지는 베네치아 공화국에 속했다. 베네치아가 나폴레옹에게 점령됐던 시기를 거쳐 1814년부터 1866년까지는 오스트리아가 지배하다가 1866년 이탈리아왕국에 넘어갔다.
베로나는 가르다 호수(Lago di Garda)에서 멀지 않으며, 아디제(Adige) 강가에 위치한다. 하지만 아디제 강은 가로다 호수와 연관이 없었다. 아디제 강은 포 강에 이어 이탈리아에서 두 번째로 긴 강이다. 오스트리아와 스위스 국경 가까이에 있는 해발 1504km 높이의 레첸(Reschen) 고개 부근에서 시원(始原)해 베네치아 남쪽의 아드리아해에 이르기까지 이탈리아 북동쪽 지역을 410km에 걸쳐 굽이굽이 흘러내린다. 알프스에서 기원하는 아디제 강은 눈이 녹을 무렵이면 범람했다.
베로나의 유력가문이 돈을 내어 제방을 쌓았지만, 범람하는 강물을 막아내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1882년 대홍수가 있은 뒤로 터널을 파서 아디제 강물을 가르다 호수로 돌리는 방안이 제시됐다. 모리(Mori)와 나고-토르볼(Nago-Torbole)을 연결하는 9873m의 터널공사는 1939년 3월에 파시스트 정부가 시작했지만, 1943년 전쟁으로 중단됐다가 1954년에 재개돼 1959년 5월에 완성됐다. 터널건설은 지하수위에 영향을 미쳐 로피오(Loppio) 호수가 고갈됐다. 아디제 강물이 흘러들면 가르다호수의 수온을 낮추고 오염을 가중시키는 부작용도 생긴다.
아디제 강가의 주차장에서 버스를 내려 알레아르도 알레아르디(Aleardo Aleardi) 다리를 건너 베로나 시내로 들어간다. 이른 봄이라서인지 다리를 건너다보면 강물이 꽤 거칠게 흐르는 것을 볼 수 있다. 강변의 제방에는 수위를 나타내는 표지가 붙어있고, 제방을 건설한 가문의 문장이 새겨있다. 다리를 건너면 옛날 성벽이 남아있다. 도시국가 시절 외적을 방어하기 위한 목적으로 세운 것이다. 곳곳에 기울고 있는 성벽을 지탱하는 기둥을 세웠다.
베로나는 3면이 아디제강으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수비에 특히 민감했다. 로마가 지배할 당시 두 차례에 걸쳐 성벽을 축조했지만, 지금은 남아있는 두 개의 로마 성문인 포르타 보르사리(Porta Borsari)와 포르타 데이 레오니(Porta dei Leoni)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 아주 일부만 남아 있을 뿐이다. 현재 볼 수 있는 성벽은 12세기에 건설된 것으로 카스텔베키오(Castelvecchio)로부터 알레아르디 다리(Ponte Aleardi)의 제방을 연결하는 선상에 축조됐다.
브라 광장 쪽으로 성벽에 포르타 누오바(Porta Nuova)라고 부르는 포르토니 델라 브라(Portoni della Bra)를 만들어 구시가로 출입할 수 있게 했다. 콤뮨 시절, 도시가 확장됨에 따라 성벽은 14세기까지 남쪽으로 파르코 델라 무라(Parco delle Mura)를 포함하고 북쪽으로는 언덕 위로까지 추가로 건설됐다. 성벽은 붉은 벽돌, 굵은 자갈, 그리고 화강암 등 다양한 자재를 차곡차곡 쌓아올려 만들었는데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성벽이 기우는 듯 지지하는 석축이 곳곳에 쌓여있다.
성벽으로 들어가는 아치형 문을 지나 거리를 건너 시청의 뒤쪽에서 오른편으로 돌아가면 로마 아레나(Roman Arena)가 나타난다. 라틴어로 모래라는 뜻을 가진 아레나는 로마의 콜로세움보다 규모는 작지만 더 오래된 원형경기장이다. 30년 무렵 시의 성벽 건너에 서기 지은 것이다. 건물은 발폴리셀라(Valpolicella)에서 가져온 하얀색과 붉은색 석회암을 교대로 쌓았다. 고대 로마 시절에는 3만명까지 입장하였지만 요즈음에는 안전문제로 1만5000명까지만 입장할 수 있다.
요즈음에도 오페라나 콘서트가 자주 열리는데, 주세페 디 스테파노(Giuseppe Di Stefano), 마리아 칼라스(Maria Callas)도 이곳 무대에 섰다고 하며, 필자에게도 익숙한 브루스 스프링스틴(Bruce Springsteen),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 듀란 듀란(Duran Duran), 딥 퍼플(Deep Purple), 로드 스튜어트(Rod Stewart), 레오나드 코헨(Leonard Cohen), 폴 매카트니(Paul McCartney), 휘트니 휴스턴(Whitney Houston) 등 수많은 팝가수가 이곳에서 콘서트를 열었다.
1786년 9월 16일 이곳을 찾은 괴테는 “고대의 중요 유적 중에서 내가 처음으로 본 원형극장은 정말로 잘 보존되어 있었다. 안에 들어가서 구경하였을 때, 그리고 극장 위로 올라가서 주위를 거닐었을 때는, 내가 어떤 웅대한 것을 보고 있는 것 같은, 그러면서도 사실은 아무것도 보고 있지 않은 듯한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사실 이곳은 사람들이 없이 텅 비었을 때 구경하면 안 된다”라고 적었다.
그리고 “이렇게 위대한 작품을 오래도록 보존해 온 점에 있어서 베로나 사람들은 찬양받아 마땅하다”라고 했다. 사실 공연장은 사람들이 가득 채워져 열기가 품어져 나올 때가 더욱 감동적이다. 관객이 썰물처럼 빠져나가 텅빈 객석을 내려다보는 것처럼 허망한 순간은 없다.
아레나 앞으로 브라 광장(Piazza Bra)이 넓게 펼쳐진다. 가운데 있는 정원에는 백향목과 소나무가 있고, 비토리오 임마누엘2세 왕의 기마상이 서있다. 아레나 앞에서 왼쪽으로 시청이 들어있는 바르비에리 궁전(Palazzo Barbieri)이 있고, 건너편에 그란 구아디아 궁전(Palazzo della Gran Guardia)이 있다.
아레나의 왼쪽에 있는 루이뷔통 가게 앞에는 특히 핑크빛 대리석이 깔려있다. 그 앞에서 왼편으로 길을 잡아 죽 따라가다가 오른쪽으로 꺾어서 조금 가면 줄리엣의 집이 나온다.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을 가지고 1968년 프랑코 제피렐리감독이 만든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의 베란다 장면을 찍은 현장으로 영화 이후 유명세를 타고 있다고 했다. 레너드 파이팅이 로미오역을 맡고 올리비아 핫세가 줄리엣을 맡은 영화를 중2때이던가 보고 슬퍼했던 기억이 난다. 그 영화의 주제가 ‘What Is A Youth’를 소풍가서 불렀던 기억도 있다.
줄리엣의 집(Casa di Giulietta)은 아치형의 문간을 들어서면 좁은 마당이, 정면에 담쟁이로 뒤덮인 높다란 담장이, 오른쪽으로 2층에 베란다가 있다. 이 집은 로미오와 줄리엣의 슬픈 사랑의 흔적을 찾아 베로나를 찾는 젊은 연인들을 위하여 베로나 시가 조성한 집이다. 베로나시는 14세기에 고딕스타일로 지어진 이집을 소유한 달 카펠로 (Dal Capello) 가문으로부터 사들였다.
베란다 아래로 줄리엣의 동상이 서 있는데, 그녀의 가슴과 팔은 이곳을 찾는 수많은 사람들이 만진 탓인지 반질반질해졌다. 그런데 줄리엣의 동상 뒤에 서 있는 이름 모를 나무는 가지가 얼마나 가냘프던지 로미오는커녕 초등학생도 매달려 담장 위로 오를 수가 없겠다. 잠시 머물면서 두 연인들의 안타까운 사랑을 되새겼다.
베란다 아래의 벽에는 메모를 꼽을 수 있는 장소가 마련돼 있다. 포스트잇부터 동그랗게 말아서 붙여둔 편지를 보니 2010년에 제작된 게리 위닉 감독의 영화 ‘레터 투 줄리엣’도 생각난다. 아만다 사이프리드가 주연한 미국 로맨스 영화다. 약혼자와 함께 베로나에 온 작가 지망생 소피(아만다 사이프리드 분)는 담장의 벽돌 사이에 끼어 있는 50년 전의 러브레터를 발견하고 그녀의 첫사랑을 찾아주기에 나선다는 오지랖 넓은 역을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