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간호사는 머물 수 없는 나라."
21년차 김현아 간호사가 쓴 책 '나는 간호사, 사람입니다'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지난 2015년 메르스 사태 당시 중환자실에서 환자들과 함께 격리됐던 김 간호사는 '끝까지 메르스와 싸우겠다'는 편지로 전 국민을 감동시켰던 주인공이다.
간호사 사회의 괴롭힘 문제와 태움이 지난해에 이어 다시 수면 위로 오른 가운데 '착한 간호사는 머물 수 없다'는 메르스 영웅의 고백이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얼마 전 서울의료원의 5년차 간호사가 극단적인 선택을 해 논란이 됐다. 지난 11일에도 간호조무사 실습생이 투신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잇따라 발생한 비보(悲報)의 원인으로 직장내 괴롭힘과 태움이 거론된다. 지난해 이맘 때쯤 일어났던 서울아산병원 간호사의 사건과 비슷한 양상이다.
실제로도 착한 간호사는 드문 모양이다. 지난해 대한간호협회가 공개한 '간호사 인권침해 실태조사' 결과, 간호사 10명 중 4명이 '동료 간호사나 의사로부터 괴롭힘을 당했다'고 응답했다. 또 최근 일련의 사건들로 신규 간호사뿐만 아니라 경력 간호사도 직장 내 괴롭힘 등에 자유롭지 않다는 점이 드러났다.
무엇이 이들을 각박하게 만들었을까. 일부의 시선처럼 간호사들이 드세고, 못된 집단이라 그런걸까. 그렇다면 메르스 위협 한 가운데서 환자 곁을 지킨 간호사들의 희생은 어떻게 설명할까. 타인을 위해 희생하는 것이 직업적 소명임을 알면서도 이 길에 뛰어든 이들에게 '태움 집단'이라는 꼬리표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동안 간호사들은 만성적인 인력부족과 격무가 심각하다고 호소해왔다. '태움' 이면에 간호사들의 열악한 근무환경 문제가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개인을 극단으로 몰아넣는 구조 속에서 예민해지지 않을 사람은 없다. 동물도 극도의 스트레스 상황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자해, 동족상해 등 이상증세를 보인다.
메르스 이후 4년. 간호사들에게는 더 까다로워진 평가와 관리 의무가 지워졌다. 여전히 낙오되는 간호사들은 많고, 남은 이들은 그만큼의 짐을 나눠지고 있다. 간호사들에게 돌아가는 영광은 위기 상황에서 잠깐 뿐, 그들이 감내하는 오랜 수고는 당연하게 여겨진다.
이제 그 수고의 강도가 한계에 달했다는 경고등이 곳곳에서 울린다. 개개인 사이의 괴롭힘 행위는 마땅한 벌을 받아야겠지만, 정부와 사회도 간호사들의 희생에 마땅한 책임을 질 때가 됐다.
전미옥 기자 romeok@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