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건강한 삶을 위해서는 어떤 의료서비스가 필요할까. 의사들은 현대의학에 기초한 근거 중심의 과학적 진단과 치료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일부에선 한의사는 의사가 아니라는 말도 한다.
대한의사협회는 16일, 세계의학교육협회 회의결과 중국의 순수 중의학 대학을 세계의과대학명부에서 삭제할 것이라며 우리 한의과대학이 명부에 다시 등재될 가능성과 근거가 차단될 것이라고 했다. 전통의학을 가르치는 대학은 세계에서 의과대학으로 인정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심지어 대한의사협회 한방대책특별위원회는 11일, 세계적으로 현대의학은 치열한 연구와 검증을 통해 인간의 생명과 건강을 책임지고 있고, 동시에 검증되지 않은 전통, 대체의학에 대한 위험성과 잠재적 유해성을 강조하고 있다고 전하며 한의사는 의사가 아니라고 단언했다.
한의학이 현대의학을 대체하거나 한의사가 의사의 역할을 대신할 수 있다는 주장은 무책임한 주장이며, 학문적 원리가 전혀 달라 서로의 영역을 공유하거나 보완할 수 없으므로 상호교류나 협진, 면허통합 등은 불가하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반면 대한한의사협회 최혁용 회장은 17일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 새는 꼴"이라며 현대의학에 기반을 둔 서양의학계의 결정과 이를 유도·조장하는 국내 의료계의 행태가 국가적 경쟁력을 저해하고 정부의 일관된 입장을 무시하는 옳지 못한 행동이라고 비난했다.
이어 “같은 교육과정이라도 의대와 함께 있는 중의대는 놔두고 순수 중의대만 배제하는 것이 공정하고 옳은 일이냐”며 WHO(세계보건기구) 산하 WFME(세계의학교육협회)가 정부의 공식적 입장이 아닌 중국과 한국의 의료계 의견만 반영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고 질타했다.
아울러 현재 한의과대학 교육과정의 75%가 의과대학과 동일하며, 이를 향후 100%로 높여 의료계의 이 같은 주장을 무력화하고 세계의과대학명부에 다시금 이름을 올려 한의사가 세계적으로 의사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한의교육혁신을 이루겠다고 선언했다.
이를 통해 한의사가 역할과 영역의 제한 없는 포괄적인 의사를 배출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고, 나아가 의료통합 및 의료일원화, 추나·첩약·한약제제를 포함한 한의사 행위와 도구의 전면적 급여화, 한의사의 공공의료 참여 등을 목표로 회무를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옳고 그름을 떠나 두 단체의 주장은 일견 논리적이고 설득력도 있다. 하지만 그들의 입장에서만 그렇다. 상대를 배척하고 모든 것을 자신이 해야 한다는 혹은 할 수 있다는 주장이 국민을 위하는 옳은 방향인지, 상대방의 입장에서 또는 국민의 입장에서 생각해봐야할 일이다.
지금까지 환자들의 의료이용행태를 살펴보면 대체로 의사를 찾을 때면 병이 나을 수 있기만을 바란다. 어떤 의사가 치료를 하는지, 이름이나 전공이 무엇인지는 제대로 살피지 않는다. 그저 빨리 고통에서 해방되기만을 바란다.
그런 바람이 절박할수록 명의를 찾지만 정작 명의의 출신이나 전공을 따지지 않는 경향이 있다. 건강기능식품도 아닌 불량식품을 만병통치약처럼 생각하며, 자격조차 없는 이들을 명의라 믿어 재산을 탕진하고 건강을 더욱 악화시키는 일들이 벌어지는 이유다.
분명 의사와 한의사는 면허범위를 놓고 갈등할 수밖에 없다. 하물며 같은 의학적 뿌리를 가진 신경외과와 정형외과가, 심장내과와 흉부외과도 신경전을 벌인다. 당연히 시작부터 다른 현대의학과 전통의학이 충돌하는 것은 이해하지 못할 영역은 아니다.
그렇지만, 그 갈등이 미래를 위한 다툼인지, 국민을 위한 논쟁인지도 함께 고민해야할 것이다. 의료는 고도의 전문적 영역으로 정보의 비대칭성이 극심한 영역 중 하나다. 환자는 의사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고, 의사의 손에 생사를 맡긴다.
더구나 환자들은 한의사가 의사든 아니든 크게 관심을 갖지 않는다. 미래에 한의학이 혹은 현대의학 한 쪽이 사라진다고 해도 치료할 방법이 있다면 크게 걱정하지 않을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가능성을 막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현대의학 또한 완벽하지 않았고, 지금도 완벽하지 않다. 한의학과의 융합 혹은 상호작용에 따른 변화 또한 가능하다. 당장 모든 한의학적 치료에 대한 의학적 설명은 불가능에 가깝다. 현대의학 또한 한의학을 통해 배우고 발전한 점이 없었는지 생각해보면 알 것이다.
폐쇄된 우물은 섞는다. 학문 또한 외부적 자극이나 소통이 없으면 죽었다고 표현한다. 부디 현대의학도, 한의학도 현실에 안주하고 서로를 배척하지만 말고 환자를 위해, 학문의 발전을 위해 미래의 더 나은 치료가능성까지 막지는 말아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