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속 한국형 히어로들이 활약 중이다. 사제, 근로감독관, 의사 등 다양한 직업을 지닌 이들은 평범함이 무기다. 한국형 히어로에겐 하늘을 나는 능력이 없다. 하지만 불의를 목도하고 참지 않는 정의감은 있다. 평범한 영웅을 기꺼이 돕는 평범한 조력자들도 있다. ‘을’의 눈물을 닦아주고 ‘갑’을 응징하는 것, 소도시에 형성된 악의 카르텔을 무너뜨리는 것,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시스템을 손보는 것 등이 이들의 주요 임무다.
지난 20일 막을 내린 SBS 금토극 ‘열혈사제’는 다혈질 가톨릭 사제를 전면에 내세워 큰 인기를 얻었다. 주인공 김해일(김남길)은 그야말로 열혈사제였다. 성직자 신분이지만, 악당을 물리칠 땐 거침없이 주먹을 뻗었다. 스승의 누명을 벗기고, 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다. 전직 특수요원이었던 사제의 주먹은 불의를 응징하는 하는 데 쓰였다. 중후반부에는 클럽 버닝썬을 패러디한 클럽 라이징문이 등장하기도 했다. 김해일은 자신을 돕는 여러 인물들과 함께 라이징문의 비리를 밝혀내고, 이들을 비호하던 세력을 타파한다. 답답한 현실 속 상황이 브라운관으로 옮겨져 시청자에게 통쾌함을 안긴 셈이다.
MBC 월화극 ‘특별근로감독관 조장풍’(이하 ‘조장풍’)의 조진갑(김동욱)도 부당한 일에 눈을 감지 못하는 영웅이다. 체육교사 시절 학교폭력 피해자를 감싸다가 불미스러운 사건에 휩싸인 조진갑은, ‘조장풍’이라고 불렸던 과거를 잊고 무사안일을 지향하는 공무원으로 살아보려 하지만 쉽지 않다. 결국 그는 근로감독을 위해 나간 현장에서 밀린 임금을 받지 못하고 부당하게 해고된 옛 제자를 마주치며, ‘갑’을 응징하는 조장풍으로 변신한다.
‘조장풍’은 한국 드라마 중 처음으로 근로감독관을 주인공으로 한 작품답게, 다양한 노동문제를 현실적으로 다룬다. 직장 내 성희롱과 폭언, 만연한 야근, 임금체불 등 어려움에 처한 이들을 돕기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조장풍은 정해진 길로만 가지 않는다. 불의 앞에선 증거가 없어도 있다고 큰소리를 치기도 하고, 엎어치기 메치기도 마다하지 않는다.
목적을 위해서라면 물불 가리지 않는 것은 KBS2 수목극 ‘닥터 프리즈너’의 나이제(남궁민)도 마찬가지다. 한때 대학병원 응급실의 성인(聖人)이자 에이스였던 외과의 나이제는 거대권력이 일으킨 소용돌이에 휘말리며 새로운 복수를 계획한다. 나이제가 촘촘하게 계획한 판에는 적군과 아군이 따로 없다. 그가 칼날을 겨눈 것은 개인이 아닌, 사법 시스템을 악용한 권력이기에 이를 무너뜨리기 위해선 누구와도 손을 잡는다. 없던 병을 만들어 죄인을 교도소 밖으로 빼내는 등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한다.
정덕현 대중문화 평론가는 최근 등장한 비슷한 성격의 드라마를 “서민형 히어로물”이라고 정의했다. 현실적으로 정의구현이 어렵다는 인식이 있는 한국사회에서 시청자가 드라마를 보는 동안만이라도 통쾌함을 느끼길 원한다는 설명이다.
정 평론가는 “이러한 드라마 캐릭터들이 다소 과장됐고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의 현실성은 떨어지지만, 드라마를 통해서라도 정의에 대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길 원하는 시청자의 요구에 따라 ‘서민형 히어로’가 사제, 근로감독관, 의사 등 다양한 형태로 등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인세현 기자 inout@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