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쿡기자] 코미디, 봄날은 올까

[친절한 쿡기자] 코미디, 봄날은 올까

코미디, 봄날은 올까

기사승인 2019-05-22 07:00:00


“초심으로 돌아가면 좋겠다. 재미없으면 당연히 프로그램 없어질 것”

지난 13일 열린 ‘개그콘서트’ 1000회 기자간담회에서 코미디언 전유성이 일침을 날렸습니다. 분명 1000회 방송을 기념하는 의미의 자리였지만, 현장 분위기는 날이 서 있었습니다. 예전만 못하다는 평가를 받는 ‘개그콘서트’에 대한 아쉬움과 앞으로 추구해야 할 방향성에 대한 이야기가 쏟아졌습니다. 침몰 직전까지 몰린 ‘개그콘서트’의 상황을 이제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는 코미디언들의 의지가 느껴졌습니다.

공개 코미디의 위기가 찾아온 건 어제 오늘 일이 아닙니다. MBC ‘개그야’가 10년 전, SBS ‘웃찾사’는 2년 전에 이미 폐지됐습니다. 끝없이 추락한 낮은 시청률이 문제입니다.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의 원조로서 꾸준히 자리를 지킨 ‘개그콘서트’도 시청률 하락은 막을 수 없었습니다. 과거 시청률 20~30%대를 기록했을 정도로 인기였지만, 올해는 5~6%(닐슨코리아 기준)대에 그치고 있는 상황입니다. 지난 19일 방송된 1000회 특집이 8.0%를 기록한 것이 화제가 될 정도죠.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의 폐지와 함께 많은 코미디언들이 설 자리를 잃었습니다. ‘웃찾사’의 폐지 당시 150여 명의 코미디언들이 한 순간에 직장을 잃기도 했습니다. 당시 프로그램 폐지를 반대하는 1인 시위가 열릴 정도로 이들의 생계를 걱정하는 반응도 많았지만, 폐지를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기존 코미디 무대에서 활약하던 코미디언들은 다양한 길을 개척하고 있습니다. 코미디가 아닌 연극 무대에서 배우로 활약 중인 코미디언들도 많습니다. 조혜련이 출연하는 연극 ‘사랑해 엄마’에는 이상화, 홍가람, 박은영, 임종혁, 김진 등 지상파 방송 3사 출신 코미디언들이 대거 출연 중입니다. 지난달까지 공연된 연극 ‘샵 온 더 스테이지 홈쇼핑 주식회사’에는 박미선과 김영희, 권진영, 홍현희, 김나희 등이 출연했습니다. ‘개그콘서트’에서 활약했던 정태호도 연극 제작자 겸 배우로 활동 중입니다.

유튜브도 코미디언들의 새로운 무대가 되고 있습니다. 강유미의 ‘좋아서 하는 채널’은 구독자가 53만 명이 넘을 정도로 인기입니다. 코미디언 부부인 홍윤화, 김민기 부부는 ‘꽁냥꽁냥’ 채널에서 먹방과 일상 콘텐츠로 23만 명, 이수근과 한판 대결을 벌이는 콘셉트의 ‘이수근 채널’은 36만 명의 구독자수를 기록 중입니다. 이영자도 최근 자신의 소소한 일상을 기록하는 유튜브 채널을 개설해 활동 중이죠.

새로운 영역에서 코미디 공연을 펼치는 코미디언들도 있습니다. 언어 없이 소리와 몸짓만으로 웃기는 ‘옹알스’는 2007년 ‘개그콘서트’의 한 코너에서 시작해 10년 넘게 세계를 돌아다니며 공연 중입니다. 영국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을 비롯해 스위스, 호주 등 각국 코미디 페스티벌에 참가하며 국제무대로 영역을 넓혔죠. 이들이 라스베가스에 도전하는 모습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옹알스’가 개봉을 앞두고 있기도 합니다.


MBC ‘나 혼자 산다’ 등 예능 프로그램에서 주로 활동 중인 박나래는 지난 17~18일 스탠드업 코미디 공연 ‘박나래의 농염주의보’를 개최했습니다. 자신의 연애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방송에서 선보이지 못하는 성인용 개그를 펼친 이번 공연에 2500명의 관객이 몰렸습니다. 이번 공연은 넷플릭스를 통해 190개국에 서비스될 예정입니다.

지난달 3일 열린 ‘전유성의 쑈쑈쑈’ 제작발표회에서 최양락은 “시청자들의 수준이 높아지고 그 수준을 못 따라가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과거와 달리 지금은 시청자와 관객들의 볼거리, 즐길 거리가 넘쳐난다는 얘기죠. 실제로 ‘개그콘서트’ 시청률만 하락하는 것이 아니라, 드라마와 뉴스 시청률도 동시에 낮아지고 있습니다. 이젠 특정 프로그램이 두 자릿수 시청률만 기록해도 화제가 될 정도입니다.

공개 코미디가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던 건 과거가 됐습니다. 그 과거는 돌아오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공개 코미디의 시대가 막을 내렸다는 해석보다, 코미디 세계가 재편되는 과정에 있다는 시각이 더 설득력 있습니다. 코미디는 다양한 영역으로 변주될 가능성을 갖고 있으니까요. 공개 코미디가 반드시 재미없는 것도 아니고요. 만약 지금의 흐름에 적응하고 새로운 영역을 발견해낸다면, 한국 코미디에도 다시 봄날이 찾아오지 않을까요.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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