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로 못 이룬 롤드컵 우승, 감독으로 하고 싶다” 유상욱 젠지 감독의 다짐 [쿠키인터뷰]

“선수로 못 이룬 롤드컵 우승, 감독으로 하고 싶다” 유상욱 젠지 감독의 다짐 [쿠키인터뷰]

젠지 신임 사령탑 유상욱 감독 인터뷰
3년간 몸 담은 BNK 피어엑스 떠나
“쵸비가 가장 기대됩니다”

기사승인 2025-12-09 06:00:05 업데이트 2025-12-11 09:04:55
유상욱 젠지 감독이 지난 5일 서울 강남 젠지 사옥에서 쿠키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정혜미 PD

3년간 BNK 피어엑스를 이끌며 팀을 하위권 예상 속에서도 플레이오프 경쟁 구도까지 끌어올린 유상욱 감독이 올겨울 젠지로 향했다. 시즌 초반 부진을 극복하고 팀 컬러를 정립해나가는 과정, 코칭 철학, 그리고 젠지에서의 새로운 도전에 대해 유 감독이 어떤 생각을 품고 있는지 시즌이 막 마무리된 시점 이야기를 들어봤다.

유 감독은 지난 5일 서울 강남 젠지 사옥에서 가진 쿠키뉴스와 인터뷰에서 “(BNK와 작별한 배경은) 서로가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BNK를 떠난 건 단순히 성적 부진 때문이 아니다. 처음 팀에 합류할 때부터 구단과 “3년 정도 함께 해보자”는 이야기를 나눴고 ASI 우승이라는 결과도 나왔다.

그럼에도 유 감독은 “정규 시즌 우승도 롤드컵 진출도 이루지 못했다”고 스스로를 평가한다. 이어 “3년 안에 뭔가를 이루고 싶었는데 완전히 만족스럽게 해냈다고 보긴 어려웠다”며 “서로에게 한 번쯤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꼈고 나도 다른 곳에서 한번 도전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BNK에서의 시간은 그에게 ‘감독 유상욱’을 만들어준 실험실에 가까웠다. 유 감독은 “팀에서 저를 많이 믿어줘서 게임 방향이나 운영 쪽에서 하고 싶은 걸 많이 해볼 수 있었다”며 “선수들과 어떻게 지내야 하는지, 게임 방향성을 말할 때 어떤 문제가 생기는지 몸으로 배우면서 경험이 쌓였다”고 돌아봤다.

하위권 전력 평가 뒤집은 밴픽과 합

올해 BNK 피어엑스는 시즌 초 2025 LoL Champions Korea(LCK)컵을 0승5패로 출발하며 고전했다. 여러 팀 출신 선수들이 모인 탓에 “각자가 게임을 하는 방식이 달랐고 이길 수 있는 판을 놓친 경우도 많았다”며 “시간이 갈수록 서로의 장점과 부족한 점을 함께 인식하면서 게임 방향을 맞춰갔고 팀 실력이 눈에 띄게 올랐다”고 강조했다.​

외부에서는 BNK의 선전을 두고 “하위권 전력 평가를 뒤집은 건 유상욱의 밴픽”이라는 평가도 나왔다. 그러나 유 감독은 공을 선수들에게 돌린다. 그는 “사실 저 때문이라기보다 선수들이 잘했다”며 “밴픽도 선수들이 열린 마음으로 같이 생각해줬다”고 전했다. 이어 “밴픽 비중은 경기 전에는 스태프 비중이 크고 경기장 안에서는 선수 의견이 중요하다”며 “최대한 연습 때 생각을 일치시키려고 한다. 경기장에서 해야 되는 챔피언이 생기면 강하게 어필을 하는 편이지만 웬만하면 선수들이 자신 있는 픽을 시킨다”고 덧붙였다.

가장 고마웠던 선수로는 정글러 ‘랩터’ 전어진을 떠올렸다. 유 감독은 “시즌 중 힘든 순간이 많았고 정글 입장에서 특히 버거웠다”며 “멘탈이 무너지지 않고 끝까지 해줘서 대견하고 고마웠다”고 말했다.

DK전 패배와 ASI 우승, 아쉬움과 보상

올 시즌 가장 아쉬운 순간을 묻자 주저 없이 “플레이오프에서 DK에게 패한 경기”를 꼽은 유 감독은 “플레이인에서 DK를 잡은 직후 패자조에서 다시 만났다”며 “저희가 ‘게임 플랜을 많이 만들었으면 이길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게임 플랜이 적은 것이 패인”이라고 아쉬워했다.

반대로 ASI 우승은 시즌 끝자락에 찾아온 보상 같은 순간이었다. 정규 시즌이 끝난 뒤 짧은 휴가를 다녀온 팀은 장기간 전담 연습이 어려운 상황에서 “정규 시즌 때 하던 것을 기반으로 편하게 하자”는 방향을 잡았다. 유 감독은 “모든 팀이 연습을 많이 하긴 힘든 구조라 오히려 선수들이 편하게 경기하도록 도와주려 했다”며 “그 흐름 속에서 우승까지 이어졌다”고 말했다.

젠지를 고른 이유, “어떻게 이기는지 궁금했다”

BNK와의 3년을 마무리한 뒤 유 감독에게는 여러 팀의 러브콜이 들어왔다. 그는 “과분하게도 오퍼가 많이 들어왔다”며 웃으며 “제가 내부에서 지켜보지 않아서 모르지만 이 팀은 인게임 ‘플랜’이 눈에 잘 보이지 않는데 그대로 이긴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제가 좀 더 역할을 잘할 수 있는 팀이라는 생각도 들었다”고 밝혔다.

젠지는 기존 로스터를 그대로 유지하고 코칭스태프만 재편한 상황이다. 유 감독은 “합을 맞추는 데 시간이 적게 들 수 있다는 점이 큰 장점”이라면서도 “만약 성적이 안 좋을 경우 기존 단점이 더 크게 부각될 수 있다는 리스크도 있다”고 짚었다.

젠지 사령탑 자리가 주는 부담감도 피하지 않는다. 유 감독은 “어느 팀 감독이든 부담감은 있지만 젠지는 전 시즌 성적이 워낙 좋아 더 무겁게 느껴지는 게 사실”이라며 “그래도 이겨내야 하는 자리라고 생각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가 젠지 로스터 중 가장 기대를 걸고 있는 선수는 미드 라이너 초비다. 전 프로 미드 출신인 유 감독은 선수 시절부터 쵸비의 리플레이를 자주 챙겨봤다고 한다. 그는 “라인전에서 군더더기가 거의 없다”며 “라인전 이후 플레이를 어떻게 풀어가는지, 인게임 콜을 어떻게 하는지 가까이서 보고 싶다”고 말했다.​

“감독 4년 차, 이제야 조금 여유가 생겼다”

2022년 BNK에서 감독 첫 시즌을 시작한 그는 이제 4년 차에 접어든다. 유 감독은 “처음에는 여유가 많이 부족했다”며 “선수들과 어떻게 지내야 할지, 어떤 거리를 유지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고 털어놓았다. 지금은 “자연스럽게 지낼 수 있는 여유가 생긴 것 같다”고 짧게 웃었다.​

그 여유가 목표 의식이 사라졌다는 뜻은 아니다. 마지막 질문으로 목표를 묻자 유 감독은 카메라를 응시하며 단 하나의 문장을 남겼다. “이번 시즌 목표는 롤드컵 우승입니다. 선수 때도 늘 부러웠는데 올해는 감독으로 그걸 이루고 싶습니다”

송한석 기자
gkstjr11@kukinews.com
송한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