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지나서 제 20대를 돌아봤을 때, 제가 가장 밝았던 모습이나 가장 용기 있게 도전했던 모습을 상상하면 ‘으라차차 와이키키2’가 떠오를 것 같아요.”
지난해 의외로 좋은 반응을 얻었던 JTBC ‘으라차차 와이키키’의 시즌2 계획이 발표되자 이번엔 어떤 배우들이 등장할지 관심을 모았다. 배우 이이경을 제외한 다섯 명의 배우들이 교체됐다. 문가영은 그중 가장 눈에 띄는 배우였다. SBS ‘질투의 화신’, tvN ‘명불허전’, MBC ‘위대한 유혹자’ 등에서 가능성을 보여준 그가 정통 코미디극에선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궁금했다.
지난 21일 서울 동교로 카페 살롱문보우에서 만난 문가영은 “막상 해보니 정말 재밌었다”고 입을 열었다. 오히려 더 웃기지 못해 아쉬움이 남을 정도다. 그가 맡은 한수연 역할이 남자 주인공 세 명의 첫사랑이라 파혼당해 얹혀 살게 되는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문가영은 “리액션이나 애드리브를 하고 싶다가도 파혼당했다는 걸 잊지 말라는 감독님의 말이 생각났다”고 했다.
“코미디 연기는 제가 상상한 것보다 훨씬 어려웠어요. 유쾌하고 재밌는 장르니까 가볍게 생각했는데 하면 할수록 어렵더라고요. 작전도 필요하고 누군가를 웃긴다는 게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라고 느꼈어요. 제 에피소드가 다가오기 시작하면 두려웠던 게 사실이에요. 그 에피소드는 제가 책임을 져야 하는 거잖아요. 누군가를 웃겨야 한다는 부담을 떨쳐내기 힘들었어요. 다행히 많은 분들이 ‘음치 에피소드’를 좋아해 주셨지만, 전 촬영 직전까지 웃지 못했어요. 제가 민망해하며 연기하면 보시는 분들이 자칫 불편해하실 수 있는 소재잖아요. 듣기 거북한 목소리를 내면 저를 보기 싫어하실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그 중간에서 적정선을 찾는 데 고민을 많이 했던 에피소드예요.”
지난해 ‘으라차차 와이키키’ 시즌1 방송 당시 문가영은 ‘위대한 유혹자’ 촬영 중이었다. 본 방송을 챙겨보진 못하고 짧은 영상으로 드라마를 봤다. ‘질투의 화신’에 함께 출연한 배우 김정현과 JTBC ‘마녀보감’에서 함께한 이이경, 정인선 등 반가운 얼굴들이 많아 어떻게 하는지 보자는 마음으로 봤다. 보면서 전에 못 본 새로운 장르에 매력을 느끼게 됐다. 그때까진 자신이 시즌2에 출연하게 될 줄 몰랐다.
“기존 코미디가 아닌 이런 드라마가 나오는구나 했는데 제가 합류하게 됐어요. 막상 제가 하려고 하니까 볼 때와는 느낌이 크게 다르더라고요. 시즌1을 몇 번이고 다시 봤어요. 새삼 시즌1에 출연한 배우들이 대단하다고 느껴졌어요. 템포가 빠른 것도 있고, 배우가 책임감을 갖고 에피소드를 이끌어가야 하는 부담감도 감수해야 해요. 시즌1의 배우들도 대단하고, 시즌2를 한 우리에게도 박수 쳐주자는 얘길 저희끼리 했어요. ‘으라차차 와이키키2’를 막 시작했을 무렵, 시상식에서 만난 정인선 언니가 ‘쉽지만은 않을 거야’라고 했던 그 한 마디가 촬영 내내 박혀있었어요. 촬영하면서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게 되더라고요.”
문가영은 지난해 5월 종영한 ‘위대한 유혹자’ 이후 쉰 6개월을 공백기라고 표현했다. 아역배우로 열 살 때 일을 시작한 이후 그렇게 긴 기간을 쉰 건 처음이었다. 다시 뭔가를 채워야 할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저한테도 시간이 필요했어요. 열 살 때 일을 시작해서 쉼 없이 일을 해왔어요. 그래서 6개월은 저에게 처음으로 오랫동안 쉰 긴 기간이었죠. ‘위대한 유혹자’가 저에게 의미가 큰 작품이기도 하고 방전됐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다시 채워야 할 시간이 필요했어요. 익숙지 않아서 그런지 쉰다는 것 자체가 두렵기도 하고, 많은 분들이 날 잊지 않을까 고민도 됐어요. 그래도 저를 위해 시간이 필요했고 6개월 동안 많이 충전했어요. 늦잠도 자보고 친구들도 만나고 대학 생활도 해봤어요. 제 또래들을 만나서 고민을 많이 나눴기 때문에 ‘으라차차 와이키키2’를 하면서 더 공감이 됐던 것 같아요.”
문가영은 그동안 출연 제의를 받은 작품을 마다하지 않았다고 했다. 다양한 작품을 해보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 그 마음은 지금도 변하지 않았지만 추가된 것이 있다. 스스로 확신이 드는 작품, 상상한 대로 잘 표현할 자신이 있는 작품을 시청자들에게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이다. ‘위대한 유혹자’가 그랬다. 문가영은 “연기를 잘 해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작가님이 써준 수지를 망치지 않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배우로 활동할수록 스스로를 더 잘 알아야겠다는 생각도 한다.
“연기를 하면 할수록 저 자신을 잘 알아야 표현할 수 있는 게 많아진다는 걸 느껴요. 아역 때는 일만 하다 보니까 ‘문가영’보다는 일터에서의 모습과 배역에 신경 썼던 것 같아요. 지금은 제가 뭘 좋아하고 어떤 게 강점이고 단점인지를 더 많이 생각해요. 제가 저를 모른 채 일하니까 힘이 들더라고요. 남의 시선에 맞춰진 제 모습을 보는 것도 힘들고요. 제 연기를 모니터링 할 때도 민망해한 적도 많았는데, 요즘엔 꿋꿋이 보면서 제 장단점을 보려고 해요. 더 전문성 있게 하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 / 사진=박효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