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답은 정해져 있었다.
지난달 29일 의료계 유형별 환산지수 계약(수가협상) 2차 협상에서 강청희 건강보험공단 수가협상단장이 예상보다 낮은 추가재정소요분(벤딩)이 제시됐다며 이례적으로 사과의 말을 건넸다.
강 단장은 “지난달 23일 진행된 재정 소위에서 공급자들의 이야기를 설명했지만, 재정 적자를 위기상황으로 보고 불안감을 느끼는 분위기가 컸다”며 “재정 소위에 원치 않는 수치의 벤딩 금액이 제시됐다”고 강조하며 사과의 말을 전했다.
협상 과정에서 사과는 하나의 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는 표현이지만 정부를 대변하는 자리인 만큼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모습을 유지했어야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건보공단과 협상을 진행하는 보건의료단체에게는 객관적인 근거자료를 요구하면서 우리가 줄 수 있는 금액은 적다고 말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행태다.
수가협상의 결과는 2019년 수가협상 벤딩금액인 9758억원보다 2.29% 증가한 1조478억원으로 마무리됐다. 강 단장의 ‘사과’로 인해 대한의사협회를 제외한 나머지 단체가 협상을 받아들인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매년 반복되는 그림의 연속에 불과했다.
현재 수가협상 시스템은 건보공단에서 금액을 내려주면 의료기관끼리 나눠 먹는 시스템을 반복하고 있다. 정부에서는 최선을 다해서 이 정도의 금액을 줄 수 있으니 너희들끼리 알아서 물고 뜯으라는 식의 협상이 수년째 지속되는 상황.
31일을 기점으로 마무리했어야 하는 수가협상은 1일 오전 8시를 넘겨서야 끝났다. 협상을 결렬하지 않고 버티면 좋은 성과를 끌어낼 수 있다는 작전이 매년 통해서다. 유형별로 보면 병원 1.7%, 의원 2.9%, 치과 3.1%, 한방 3%, 약국 3.5% 조산원 3.9%, 보건기관 2.8%로 정해졌다. 서로가 싸워야 하기에 보건의료단체 어디서도 만족할만한 성과를 받았다고 언급하기 어렵게 하는 구조인 셈이다.
전국의사총연합은 이번 수가 협상을 “정부가 답을 정해놓고 공급자 단체를 한편으로는 겁박하고 한편으로는 적당히 구슬려 어린아이 사탕 쥐어 주는 한편의 쇼를 보는 듯하다”고 밝혔다. 객관적인 근거를 가지고 오더라도 끝까지 버티고 버티는 것이 더 큰 이익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선처만 남기는 제도라는 오명에서 벗어나길 바란다.
노상우 기자 nswreal@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