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이 국회에서 일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아니, 그보다 여성에게 국회란 과연 일할 만한 근무지일까?
이러한 궁금증이 인 까닭은 지난 주 받은 한 통의 전자우편 때문이다. 짧은 외유를 마치고 열어본 메일함에는 여느 때처럼 이메일이 쌓여 있었다. 그 중 눈에 띄는 발신자가 있었다. 발신처는 ‘국회페미’였다.
요는 이렇다. 국회에서 일하는 여성 보좌진들이 상시적으로 불합리한 대우를 받고 있고, 정책보다 허드렛일에, 차 심부름에 지쳐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국회페미는 참다못한 일부 여성 보좌진들의 자발적 모임이다.
미투 운동이 우리사회의 성평등에 반보 가량 진보를 이끌어냈고, 여기에는 이른바 ‘미투 법안’으로 불리는 유의미한 입법 과정에 힘입은 바가 크다. 그러나 이러한 법안이 만들어진 국회에서 정작 여성 보좌진들이 차 심부름과 택배 나르기, 손님 접대에 허덕이고 있었던 것이다.
수년간 국회를 출입하면서 적잖은 여성 보좌진과 친분을 쌓았다. 지근거리에서 바라 본 그들은 대개 일 잘하고 자부심이 높았다. 그러나 실상은 차 심부름에 시달리고 있었다니!
입법 공무원이든 의원실 소속 보좌진이든 국회에 몸담은 이들만의 ‘자부심’이 있다. 나는 자부심의 근원에는 ‘세상을 바꾼다’는 인식이 있다고 본다. 물론 자부심의 방향이 매번 옳은 방향으로 흐르는 것은 아니지만, 신념의 가치만은 존중받아야 한다.
이들은 세상을 바꾼다는 그 이상적인 가치를 쫓아 강도 높은 업무량과 밥 먹듯이 이어지는 야근, 사기업에 비해 보잘 것 없는 월급을 이겨내고 있다.
국회만큼 온갖 사고가 벌어지는 곳도 없다. 매순간 카메라와 언론이 이곳을 비추지만, 한편으로 국회만큼 은밀하고 폐쇄적인 곳도 없다. 구중궁궐처럼 온갖 암투와 욕망이 뒤섞인 이곳에서 세상을 바꾸기 위해 투신한 여성 보좌진들에게 굳이 차를 타라고 시켜야 하나. 손이 없나, 발이 없나.
국회에서 여야 의원 간 낯부끄러운 쌈질이나, 이해관계가 엮인 법안을 내놓는 정치인의 모습에 얼굴이 화끈거렸던 순간이 적지 않았다. 여기에 의원실에서 아무렇지 않게 차를 얻어 마시던 나의 행동도 추가해야 겠다. 부끄럽고, 부끄럽다.
김양균 기자 angel@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