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석은 다양한 얼굴을 가진 배우다. 작품마다 다른 사람이 돼 자연스럽게 화면이나 무대를 누빈다. 조정석의 진가는 얼마 전 종영한 SBS 금토극 ‘녹두꽃’에서도 어김없이 드러났다. 조정석은 이 드라마에서 과거의 죗값을 치르고 동학군 별동대장이 되는 백이강 역을 맡아 인물의 변화를 설득력 있게 그려냈다.
최근 서울 도산대로 한 카페에서 만난 조정석은 ‘녹두꽃’을 마무리한 소감으로 “아주 시원하다”고 말문을 열었다. 작품 하나가 끝나면 아쉬움이 남기 마련인데, ‘녹두꽃’은 섭섭한 마음 한 조각 없이 시원함만 남았다는 것이다.
“작품이 정말 좋았기 때문에 섭섭한 게 하나도 없어요. 사극이고 48부작의 긴 작품이라 마음을 단단히 먹고, 각오하고 촬영에 들어갔죠. 그런데 현장이 생각보다 훨씬 수월했어요. 제작진도 연기자도 모두 모나지 않고 좋은 사람들뿐이었어요. 그래서 더 좋았던 현장이고 작품이에요.”
조정석은 첫 사극으로 동학농민운동을 다룬 ‘녹두꽃’을 선택했다. 그가 연기한 백이강은 가상의 인물로, 당시 민초를 대변한다. 백이강과 함께 극의 중심이 된 백이현(윤시윤)과 송자인(한예리)도 마찬가지다. 그 시절 어딘가에 있었을 법한 인물을 만들어낸 셈이다. 조정석은 “상상력을 동원해 인물을 표현하는 작업이 즐거웠다”라고 말했다.
“연기를 통해 누군가에게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선 내가 먼저 인물에 공감해야 해요. 이번에 백이강을 연기하면서는 그 점이 수월했어요. 이 역할에만 집중하고 있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변화의) 과정이 잘 보였어요. 제가 느낀 그대로 변화의 지점들을 섬세하게 표현하려 했죠. 작가님께서 대본에 백이강이 바뀌는 당위성을 잘 써주시기도 했고요.”
쉽지 않은 부분도 있었다.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전투와 군중 장면 촬영은 체력적으로 힘든 작업이었다. 아울러 조정석은 “감정적으로 울컥했던 순간도 많았다”고 귀띔했다. 그런 순간들을 겪으며 역할과 이야기가 주는 힘을 느꼈다고.
“촬영하며 극 중 동료의 죽음을 볼 때 울컥하더라고요. ‘거시기’에서 백이강이라는 이름을 얻으며 거듭나면서 책임감이 생기는 걸 실제로 느끼기도 했고요. 극 중후반부부터 백이강이 가져가는 폭발적인 감정들이 자연스럽게 와닿았어요.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울컥울컥해요.”
뜻깊은 작품을 치열하고 즐겁게 작업한 덕분일까. 시청률에 대한 아쉬움은 함께 한 배우들과 함께 털어냈다. 조정석은 “참여하는 모두가 어느 순간부터 작품의 의미를 공유하고 한마음이 됐다”면서 “(시청률에) 연연하기보다 뜻깊은 작품에 참여하는 것에 의의를 두자는 이야기를 자주 나눴다”고 말했다.
지금껏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에서 주로 활약했던 조정석은 ‘녹두꽃’으로 새로운 모습을 선보이며 저변을 넓혔다. 주연을 맡은 영화 ‘엑시트’도 곧 개봉을 앞두고 있다. 조정석은 이 영화에서 백이강과 전혀 다른 캐릭터를 소화했다. 이우정 작가와 신원호 PD가 함께하는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에도 출연할 예정이다.
“저는 늘 변주하고 싶은 욕심이 있는 배우예요. ‘녹두꽃’ 덕분에 더 많은 변주를 할 수 있는 기회의 장이 열렸다고 생각해요. 앞으로 어떤 역할을 할지 저도 잘 모르겠어요. 다만 더 다양한 시도를 하고 싶어요. 다행히 연기가 너무 재미있거든요. 그래서 꾸준히 일을 열심히 하는 것 같아요. 연기할 때 고민하면서 생각지 못한 호흡을 연구하고 찾아낼 때 희열이 저를 움직이게 해요.”
인세현 기자 inout@kukinews.com / 사진=잼엔터테인먼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