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원하는 출연자를 위해 투표만 하면 될 줄 알았는데,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최근 종영한 Mnet 아이돌 오디션 ‘프로듀스 X 101’(이하 ‘프듀X’)는 방송 당시보다, 끝난 후에 더 화제가 된 프로그램이다. 생방송 문자 투표 결과가 조작 논란에 휩싸이며 검찰 고발로 이어졌고, 순위에 들지 못한 일부 멤버를 모아 또 다른 그룹을 만들라는 요구도 있다.
이 같은 움직임의 중심엔 ‘프로듀스’ 시리즈와 함께 달라진 팬덤이 있다. 2016년 Mnet이 첫선을 보인 ‘프로듀스’ 시리즈는 ‘국민 프로듀서’라고 명명한 시청자를 적극적으로 프로그램에 끌어들이며 흥행에 성공했다. 시청자는 좋아하는 연습생의 데뷔와 원하는 구성의 아이돌 그룹 론칭을 위해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동안 기꺼이 국민 프로듀서가 돼 투표에 열을 올렸다. 이 과정에서 다져진 팬덤의 결속력과 화력은 방송을 통해 가요계에 데뷔한 프로젝트 그룹의 인기로 이어졌다.
‘프로듀스’ 시리즈의 팬들은 출연자의 순위와 데뷔에 일조하며 자연스럽게 영향력을 키웠다. 시리즈가 거듭될수록 국민 프로듀서들의 활동 영역과 전문성도 늘었다. 방송 분량이 적은 연습생을 위해 직접 홍보에 나서는 것은 물론, 투표 유도를 위해 고가의 경품도 내걸기도 했다. 시즌4에 해당하는 ‘프듀X’ 방송 당시엔 자신이 응원하는 연습생에게 투표하면 필기노트를 제공하겠다는 기상천외한 상품이 등장하기도 했다.
이처럼 요구를 관철하기 위해 명확한 목소리를 내고 열성적으로 움직이는 팬덤이 생방송 문자 투표 조작 논란을 그냥 넘기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프듀X’ 팬덤은 문자 투표 결과로 나온 연습생 간 득표수 차이가 특정한 상수(7494.44/총 득표 수의 0.05%)의 배수로 분석된다는 점을 발견했다. 일부 팬들은 이 같은 결과가 우연의 일치라고 보기 힘들다고 결론 내리고 문제 제기에 나섰다. 제작진이 “집계 오류가 있었으나, 최종 순위는 변동이 없다”라고 해명했지만, 의혹을 해소하기엔 역부족이었다. 결국 투표 결과에 의혹을 제기한 팬들은 진상규명위원회를 결성해 가공되지 않은 데이터 공개와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 마련을 요구하며 CJ ENM과 제작진을 검찰에 고발했다.
‘프듀X’ 종영 이후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내린 바이나인도 달라진 팬덤의 성향을 엿볼 수 있는 경우다. 팬들은 최종 데뷔조에 들지 못한 몇몇 멤버를 중심으로 가상의 그룹 바이나인을 기획해, 각각의 소속사에 활동을 요구했다. 이들은 ‘프로듀스 101’ 시즌2 파생 그룹인 JBJ 등의 결성 과정을 거울삼아 매우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그룹명을 비롯해 구체적인 콘셉트까지 제시하는 것을 시작으로 지하철역에 데뷔를 염원하는 광고를 냈고, 모금도 진행했다.
‘프로듀스’ 시리즈를 “팬덤 오디션”이라고 정의한 정덕현 대중문화 평론가는 “‘프로듀스’ 시리즈의 팬들은 출연자의 실력보다 매력과 가능성을 보고 팬덤을 형성한 후 그에게 활동을 위한 충분한 실력을 갖추길 요구하는 경향이 있다”며 “이렇게 형성된 팬덤은 스타를 단순히 추종하는 차원에서 벗어나, 함께 끌고 나가며 육성하는 형태를 보인다”라고 진단했다.
정 평론가는 “스타의 콘텐츠와 활동 방향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려는 것은 ‘프로듀스’ 시리즈 팬덤뿐 아니라 현재 K팝 팬덤의 전반적인 흐름”이라며 “소비자인 팬이 생산 과정에 직접 개입한 콘텐츠는 예전과 다른 성격을 지니게 되는 만큼,팬덤의 변화는 결국 대중문화산업 변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인세현 기자 inout@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