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김고은은 영화 ‘유열의 음악앨범’에서 두 명의 남자를 다시 만났다. 한 명은 tvN 드라마 ‘도깨비’에서 짝사랑했던 야구부 선배를 연기한 배우 정해인, 다른 한 명은 데뷔작인 영화 ‘은교’를 연출한 정지우 감독이다.
최근 서울 삼청로 한 카페에서 만난 김고은은 정지우 감독과의 인연이 ‘유열의 음악앨범’의 시작이었다고 했다. ‘은교’ 이후 그동안 꾸준하게 만나던 정 감독이 한 번 읽어보라며 대본을 보내준 것이 시작이었다.
“감독님이 처음엔 대본을 보내줄 테니까 읽어보라고 가볍게 얘기하셨어요. 저도 작품에 대해 고민할 때 감독님께 조언을 구하기 위해 대본을 종종 보내드리거든요. 다른 얘기가 없으셔서 모니터링 개념인가 생각하며 읽었어요. 읽고 나서 오랜만에 커피나 한 잔 하자고 하셔서 만났어요. 어떻게 읽었냐고 물으셔서 제 생각을 말했어요.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고 이건 이해가 잘 안 된다고요. 그랬더니 감독님이 내가 이 영화를 한 번 해보려고 하는데 여자 인물에 대해 어떨 것 같냐고 하셨어요. 처음엔 ‘이게 무슨 의미지’ 하고 머릿속으로 막 생각했어요. 감독님이 ‘난 지금 이 시기에 고은을 잘 담아보고 싶고 잘 그릴 자신이 있다’고 하셔서 그 자리에서 ‘바로 저 할게요’ 하고 결정했죠.”
출연 결심을 한 김고은은 ‘유열의 음악앨범’ 시나리오를 여러 번 반복해서 읽었다. 처음 읽었을 때 이해되지 않던 점을 이해해갔다. 그가 맡은 미수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다. 그 결과 자존감이 떨어져 있던 상황으로 생각해 납득할 수 있었다.
“전 미수의 자존감에 대한 얘기로 생각했어요. 자존감이 많이 무너져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그럴 수 있지 않았을까 싶었죠. 미수는 자신이 하고 싶은 무언가를 선택하기보다 더 안정적이고 흔들림 없는 직업을 갖길 원했던 친구예요. 하고 싶었던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해가 거듭할수록 오는 공허함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 것들이 쌓이지 않았을까 생각했어요.”
미수를 이해할 수 있었던 건 김고은의 경험 덕분이다. 그 역시 과거에 갑자기 자존감이 떨어지고 정신적으로 흔들리던 시기가 있었다고 털어놨다.
“저도 그랬던 시기가 있어요. 살면서 누군가와 저를 비교해본 적이 없거든요. 하지만 자존감이 낮아지니까 저 사람은 저런데 난 왜 이러지 싶더라고요. 그때 정말 슬펐어요. 저는 제가 정신적으로 잘 흔들리지 않고 자존감도 높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 일을 해왔어요. 그래서 여러 가지 일들이 있어도 난 아니니까 괜찮다고 생각했죠. 지금 생각하면 힘든 저를 인정해주고 그럴 수 있다고 다독여 줬으면 어땠을까 싶어요. 전 자기 학대하듯이 힘들 자격도 없다고 스스로를 몰아붙였거든요. 무슨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닌데 한 순간에 그런 생각들이 몰려왔던 시기가 있었어요. 영화 속 미수도 분명 그런 게 있었던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자기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면서 난 왜 이러지 하고 생각했을 것 같아요.”
‘유열의 음악앨범’은 김고은이 연기한 미수의 시선과 서술로 전개되는 영화다. 미수의 눈에 비친 현우(정해인)의 이야기를 주로 그리고 미수 개인의 이야기는 잘 드러나지 않는 독특한 구성이다. 김고은은 영화 후반부 미수의 선택을 ‘성숙의 결과’라고 해석했다. 단순히 한 순간의 선택이 아니란 얘기다.
“전 미수가 한 단계 성숙했다고 생각해요. 스스로 용기를 낼 수 있게 된 건 미수가 10년의 과정을 거치며 갖게 된 성숙이 아닐까 싶어요. 갑자기 마음이 완전히 바뀌어서 결정을 내린 건 아닐 거예요. 미수가 안정된 환경을 원하는 마음이 있겠지만, 그럼에도 관계에 대한 끈을 놓지 않는 건 그녀로선 큰 용기라고 생각해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으려면 어느 정도 감수해야 하는 거잖아요.”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 / 사진=CGV아트하우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