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이준혁은 악역으로 주목받은 배우다. 영화 ‘신과함께’ 시리즈에선 진실을 은폐하는 박중위 역을 섬세하게 그려냈고, 드라마 ‘비밀의 숲’에선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만 움직이는 서동재로 분해 악인임에도 미워하기 힘든 캐릭터를 선보였다. 최근 종영한 tvN 월화극 ‘60일. 지정생존자’에서 그가 연기한 오영석은 권력의 맛을 알아버린 정치가였다.
‘60일, 지정생존자’가 끝난 후 소감을 듣기 위해 서울 도산대로 한 카페에서 만난 이준혁은 강렬한 화면 안 인물들과 전혀 다른 얼굴이었다. 질문마다 숙고해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그에게 진지한 성격인지를 묻자 “영화를 보며 타인의 이야기를 듣고 생각하는 것을 좋아한다”라고 답했다. 그는 연기하는 것도 새로운 친구를 만나, 이야기를 듣는 것에 비유했다. 새로운 역할을 맡을 때마다 그 인물이 자신에게 말을 걸어온다는 것이다. 오영석도 그랬다.
“작품을 할 때마다 저에게 새로운 친구가 생기는 기분이에요. 예를 들자면 ‘60일. 지정생존자’를 할 땐 오영석이라는 사람이 저에게 계속 말을 걸어요. 그 사람이 하는 말이 궤변이라도, 저는 그와 함께 6개월을 살면서 그 사람의 말을 들어야 해요. 그것도 깊숙이 경청해야 하죠. 그러다가 어느 시점부터는 제 의견을 말하기도 해요. 두 가지 목소리가 섞여서 나오는 것이 연기의 결과물인 거죠. 오영석은 서브 텍스트가 많은 캐릭터라서, 연기적인 고민을 할 때 특히 재미있었어요.”
이준혁은 오영석을 트라우마에 얽매여 성장하지 못한 인물로 정의했다. 원작 캐릭터와 닮은 점은 극 중 긴장감을 유발한다는 것일 뿐, 많은 것이 달랐다는 설명이다. 극 중 오영석의 전사나 정보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은 것도 캐릭터를 모호하게 표현하기 위한 연출 중 일부였다.
“오영석은 극 중에서 긴장감을 주면서도 원작과는 다르게 박무진(지진희)의 성장을 위해 대척점에 서는 역할이죠. 또 원작보다 묘한 인물을 만들어 내고 싶었어요. 그래서 가족관계나 나이 같은 정보도 나오지 않아요. 실재하는 인간이 아닌 유령 같은 느낌을 주길 바랐어요.”
‘비밀의 숲’부터 꾸준하게 언급된 외모에 관한 질문을 하자, 소탈하게 웃으며 “도대체 왜 그 얄미운 캐릭터를 보고 잘생겼다고 생각하느냐”고 되물었다. 이준혁은 외모에 대한 칭찬이 점차 많아지는 이유를 “작품의 힘”이라고 말했다. 또 “머리 스타일과 화장, 의상을 담당하는고마운 스태프 친구들 덕분”이라고 함께 일하는 관계자들에게 공을 돌렸다.
“잘생겼다는 칭찬을 들을 때마다 제 헤어스타일이나 의상을 담당해주는 분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은 것 같아서 감사해요. 그분들 덕분에 작품 속의 제가 잘나 보이는 거죠. 그리고 사람들이 누군가를 좋게 봐주는 건, 그렇게 보는 사람의 마음이 따뜻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누군가에게 긍정적인 에너지를 쏟을 수 있는 열정이 있다는 이야기고요.”
호평 속 ‘60일, 지정생존자’를 마친 이준혁은 잠시 휴식기를 갖고 차기작에 임할 예정이다. 배우로서의 목표를 묻는 말에 이준혁은 “큰 욕심은 없다”면서도 “연기에 대한 열정을 나름대로 의 방식으로 이어가고 싶다”고 귀띔했다.
“무엇인가 되고 싶다는 목표는 이미 다 이룬 것 같아요. 연기자를 꿈꿨을 당시에서 지금을 바라보면 대단한 것들을 하고 있거든요. 복을 받았다고 생각하고,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지금은 그저 제가 만나는 캐릭터들과 온전히 대화를 나누고 싶어요.”
인세현 기자 inout@kukinews.com / 사진=에이스팩토리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