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6일까지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세종홀서 은퇴 사진전 열어-
-다양한 교육기부활동 통해 과학 대중화에 앞장서-
-과학기술정보통신부장관 표창 수상-
-1981년 입사해 한국표준과학연구원과 역사 함께 해-
[쿠키뉴스] 곽경근 대기자 =우리 주변에서 관행으로 이어지는 각종 측정과 표준의 성과를 국민에게 알리기 위해 평생을 한 직장에서 일하고 정년퇴직하는 사람이 있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KRISS‧원장 박현민) 황응준 책임기술원은 직장생활 40년 동안 표준의 역사를 기록하고 이를 세상에 알리는 일을 책임져왔다. 한 우물을 40년 팠으니 과학사진과 관련 달인이라 불린 만하다.
‘기록은 기억을 지배한다.’는 말이 있다. 황 책임기술원은 지난 2월 28일 정년퇴임을 하면서 표준과학연구원에서 일한 40년의 기록사진을 모아서 작은 전시회를 열고 있다. 대형 모니터도 설치하고 그의 땀과 노력이 배인 사진들을 액자에 넣어 전시 중이다.
지난달 25일 오픈한 사진전은 3월 6일까지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세종홀에서 관람객을 맞이한다.
황응준 책임기술원은 1981년 입사해 KRISS와 그 역사를 함께하고 있는 연구원 내 대표 과학문화확산 전문가이다. 황응준 책임기술원은 매년 다양한 교육기부활동을 통해 KRISS 소개와 국제단위계의 확산을 위한 홍보활동에 전념하였다. 또한 다양한 과학프로그램과 교구 등을 개발함으로써 측정표준의 대중화에도 크게 기여하였다.
특히 우리나라 최대 과학교육기술부 행사인 ‘대한민국과학창의축전’에서 매년 수만 여명의 방문객을 유치에 일익을 담당했다. KRISS는 매년 과학창의축전에 제1회부터 꾸준히 참여하여 전시부스를 운영하였는데, 이는 외부전시 담당자인 황응준 책임기술원의 노력 덕분에 가능할 수 있었다. 이처럼 측정표준을 비롯한 대한민국 과학문화확산에 크게 공헌한 점을 인정받아 황 책임기술원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장관 표창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KRISS의 김소정 씨는 “황 선배님은 말없이 추진력이 강하신 분이세요. 늘 온화한 미소로 선후배를 대하세요. 제가 입사 후 큰 소리 한번 내신 것을 본적이 없어요.”라며 “전형적인 외유내강 형이시죠. 선배를 진심으로 존경한다.”고 말했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은
현대인은 각종 질병에 시달리며 늘어나는 뱃살과 이에 비례하는 몸무게로 고민하고 있다. 그러면서 이것을 측정하는 단위에 대한 이해는 많지 않다. 기준에는 관심조차 없다.
그러나 밤을 지새우며 10억분의 1mm, 천만분의 일 킬로그램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의 연구 성과로 산업은 발전하고 국민들은 공정한 삶을 누릴 수 있다. 측정과 단위 그리고 표준은 우리가 숨 쉬는 공기처럼 평소엔 의식하지 못해도 우리 생활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우리나라 최고의 정밀정확도를 갖는 표준을 개발하여 유지 보급하고, 또한 그 측정기술을 개발하여 각 연구기관이나 산업계에 전수 하는 일을 하는 곳이 표준과학연구원이다.
우리나라가 보유하고 있는 국가 표준의 수준은 많은 분야가 현재 선진국수준이며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은 이처럼 국가측정표준을 확립하고 유지 향상시키는 업무를 담당하는 기관이다.
‘선명한 기억보다 흐릿한 기록을 믿어라’
스스로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다고 생각해도 한낱 기억은 무수한 세월을 거치며 흩어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무엇인가를 기록한다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다.
하얗게 센 머리카락만 아니면 아직도 미소년으로 보이는 온화한 인상의 황응준 책임연구원을 한국표준과학연구원 내 세종홀에서 만났다.
-. 표준과학연구원에는 어떻게 근무를 시작하게 되었나.
중앙대학교 사진학과 4학년 재학 중 학교로 추천 의뢰가 왔다. 저보다 실력이 우수한 선배와 함께 응시했는데 운 좋게 입사하게 되었다.
제가 입소 전에 당시 차관으로 연구 장비와 사진 장비를 미리 들여놨는데 서울에서도 구경하지 못했던 물건들이 다 있었다. 지금은 잘 사용하지 않는 대형 뷰카메라부터 최고급 독일제 소형 카메라는 물론 서울의 전문상업사진 스튜디오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조명장비까지 최고급 장비들이었다. 입소 초기 이 장비들을 하나하나 써보는데도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당시 컬러사진은 당연히 외부 현상소에 의뢰해야 하는 상황이었고, 슬라이드 필름은 서울로 보내야 현상할 수 있었다. 사진을 찍고 나서 1주일이 지나야 슬라이드 필름은 받아 볼 수 있는 그런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이었다. 그 후 컬러현상을 할 수 있는 시설을 완비하면서 언론사, 타 연구소, 대학 등에서 근무하는 선후배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다.
-. 처음 근무했을 때는 대덕연구단지에 사진 담당자들이 별로 없었다고 들었다.
요즘은 디지털카메라‧핸드폰 등으로 누구나 쉽게 사진을 찍을 수 있지만, 제가 입소한 때만 해도 전문 사진작가들 외 카메라를 제대로 다룰 줄 아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 우리 연구원에서도 본인이 처음이었고, 인근의 전자통신연구원‧원자력연구원‧카이스트, 수자원공사 전신인 산업기지개발공사 등에서 사진을 전공한 전문인 몇 명이 기록과 홍보업무를 담당했었다.
저는 주로 연구 성과와 연구원 풍경, 주요 행사 등 사진 업무를 전담했는데 연구원들의 연구 성과를 사진으로 표현하는 일에 정성을 다했습니다. 정밀한 연구성과를 조금이라도 더 이해하기 쉽게 표현하려다 보면 담당연구자들과 많은 의견을 교환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표준에 대한 지식도 늘어나게 되었다. 제가 촬영한 사진을 신문사 등에 보내면 일반적으로 보기 힘든 사진들이어서 게재율이 상당히 높았다. 그때까지 연구 성과를 시각화하는 일을 잘 몰랐기 때문이다. 쑥스럽지만 어느 후배는 우리 연구소 사진을 보고 제게 ‘우리나라 과학사진의 원조’라고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 그런 평가 때문에 지금의 물리동 지하에 있던 암실에서 수많은 밤을 지새우며 과학사진 작업에 몰두할 수 있었다.
-. 가장 기억에 남는 사진 한 장을 꼽는다면
많은 사진이 기억에 남지만 딱 한 가지를 꼽으라면 표준주파수국에 있는 시보탑에서 찍은 벚꽃 사진을 선택하고 싶다. 한 10년 전쯤이었나, 사진 찍을 때 느꼈던 감정을 써서 사진과 함께 사보에 실은 적이 있다. ‘초속 5센티미터’(2007년)라는 일본 애니메이션이 유행할 때였어요. 벚꽃 잎 떨어질 때의 속도가 초속 5cm라는 내용을 담은 학생들의 연애 얘기였는데요. 제목을 보고는 “벚꽃 잎이 초속 5cm로 떨어져? 생각보다 엄청 느린 속도네. 그럼 진짜 빠른 속도는 뭐지?” 고민해봤어요.
그래서 두 가지를 비교해서 사진 위에 글을 썼습니다. 생각을 좀 더 발전시키니 “나는 시속 몇 km로 가고 있을까?” 돌아보게 되더군요. 저는 태생이 여유로운 성격이어서 뭐든 쫓아가듯 빠르게 해본 적은 없지만, 너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주변을 살피며 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깨달았다.
-. 과학 대중화에도 힘쓴 것으로 알고 있다.
연구 성과 사진을 찍을 때, 사실 엄청난 고급기술이 필요한 건 아니다. 연구 내용을 잘 설명할 수 있는 사진이어야 하니 그 내용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찍어야 한다. 최대한 이해하려고 노력하니 일반 사람들에게 표준과 측정 단위 등에 대해 쉽게 설명을 잘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이해하는 선에서 설명을 하니 일반 사람들이 더 쉽게 공감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동안 전시 행사와 견학 행사에 참여하며 체험 전시물도 꽤 많이 제작했다. 7가지 기본단위별로 체험 전시물이 하나씩 있고, 축구공 속도 측정, 체공 시간 측정 등 다양한 체험 전시물을 제작했다.
그 외에도 체공 시간 측정이 인기가 많았다. 처음 기획할 때 뉴턴의 사과나무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중력을 체크 하는 것인데 점프를 얼마나 오래 하는지 측정해주는 체험 전시물이다.
-. 업무 외 취미활동은
‘KRISS 산우회’ 활동은 활발히 했죠. 90년대 중반쯤, 제가 30대 중반일 때부터 건강을 챙기기 위해서 담배도 끊고 산우회 가입을 했다. 그러다 회장까지 하게 되었다. 산우회 활성화를 위해 신입 회원도 많이 모으고 전문적인 산행도 많이 했다. 산우회 회원들과 지리산부터 설악산까지 이어져 있는 백두대간 종주도 여러차례 했다.
많은 산을 다녀봤지만, 히말라야 안나푸르나가 제가 가본 중에 최고의 산인 것 같다. 베이스캠프가 4300m인데, 앞을 보면 나머지 4000m 되는 산이 병풍처럼 서 있다. 계룡산의 다섯 배 정도인데 위에서 내려다보면 그 높이가 실감이 안 난다. 기회가 된다면 꼭 한 번 다시 가보고 싶다.
-. 은퇴 후 계획은
지금껏 여행 겸 산을 많이 다녔다. 은퇴 후에는 캠핑카를 꾸며서 사랑하는 아내와 전국 일주하는 것이 목표다. 앞으로는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사진도 찍고 내 나름대로 조용히 공부도 하면서 욕심 없이 그렇게 살고 싶다.
일상적 이야기지만 최근 첫 손녀 돌잔치를 했다. 자식 키울 때와는 또 다르게 보면 볼수록 행동 하나하나가 너무 사랑스럽고 예쁘다. 손녀가 돌잡이를 하며 첼로와 돈을 잡았는데, 의견이 분분했다. ‘한쪽은 첼로로 돈을 많이 벌 거다. 한쪽은 첼로를 해서 돈이 많이 들거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좋단다. 62세 미소년은 손녀가 건강하고 행복하게만 자랐으면 좋겠다며 활짝 웃었다. kkkwak7@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