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인터뷰] 안예은 “‘눈앞의 벽을 부숴보자’고 말하고 싶었다”

[쿠키인터뷰] 안예은 “‘눈앞의 벽을 부숴보자’고 말하고 싶었다”

기사승인 2020-03-11 08:00:00

[쿠키뉴스] 이은호 기자 =문어는 꿈을 꾸는 동안 뭐든 될 수 있다. 높은 산에 올라가는 꿈을 꾸면 초록 문어가 되고, 장미꽃밭에 숨어드는 꿈을 꾸면 빨간 문어가 된다. 하지만 꿈에서 깨어나면 문어가 있는 곳은 깊은 바닷속. 춥고 어둡고 차갑고 때로는 무섭기도 하다. 그래서 문어는 매일 꿈을 꾼다. 지금 있는 이곳은 너무 우울하니까. 가수 안예은이 지난달 25일 발표한 정규 3집 수록곡 ‘문어의 꿈’ 가사 내용이다.

안예은은 한 TV 다큐멘터리에서 ‘문어가 자는 동안 몸 색깔을 바꾸는 것은 문어가 꿈을 꾸기 때문’이라는 가설을 접한 뒤 이 곡을 만들게 됐다고 한다. 꿈에서 깨어난 문어의 마음은 얼마나 허무할까. 최근 서울 월드컵북로 쿠키뉴스 사무실에서 만난 안예은에게 “‘문어의 꿈’을 참 슬프게 들었다”고 말했더니, 그는 반가워하며 “쓸 때도 슬펐던 노래”라고 답했다. “다들 발랄하고 동요 같다고 말씀해주시지만, 저는 ‘흑흑. 문어야~’하면서 썼어요.”

잿빛 세상에서 형형색색의 꿈을 꾸는 게 어디 문어뿐이랴. 안예은의 노래는 상상 속 세계를 벗어나 현실의 우리들에게도 말을 건다. 지쳐 널브러진 이를 “우리 좀 쉬어가자 아무런 생각 없이. 하나하나 각자의 리듬이 있으니”(‘품행제로’)라고 위로하다가도, 다시금 “낭떠러지라도 난 날아올라”(‘카코토피아’)라며 용기를 북돋는다. 소속사 더블엑스엔터테인먼트에 따르면 안예은은 이번 정규 3집 ‘ㅇㅇㅇ’에 자신의 다양하고 새로운 측면을 담았다. 음반에 실린 9곡 모두 안예은이 직접 작사·작곡·프로듀싱했다.

타이틀곡 제목인 ‘카코토피아’(KAKOTOPIA)는 ‘역(逆)유토피아’, 즉 가상의 암흑세계를 뜻한다. 안예은은 “각자의 절망에서 달려나가자”는 의미로 ‘카코토피아’라는 제목을 붙였다. 뮤직비디오에는 무용수가 등장해 달리고 싸우고 깃발을 흔든다. 안예은의 자아를 대신 표현하는 인물이란다. 아무리 도망쳐도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았던 사방의 벽은, 그것을 ‘깨부숴야 하는 것’으로 인식하는 순간부터 허물어진다. 안예은이 ‘혁명’이라는 단어로 노래를 설명한 것도, 그 안에 “벽을 피하기보다는 부숴보자”는 이야기를 담았기 때문이다.

안예은에게도 허물고 싶은 벽은 있다. 심장 질환을 갖고 태어난 그는 학창 시절 ‘열외’를 자주 당했다. ‘배려’라는 이름의 차별이었다. “중·고등학교에 진학한 후부터 하지 말라는 일이 많아졌어요. 난 뭐든 할 수 있는 애라고 생각했는데, 한계가 주어지는 상황들이 생긴 거죠.” 하지만 안예은은 남들이 제 눈앞에 쌓아놓은 ‘벽’을 ‘넘지 못할 것’으로 규정하지 않기로 했다. 수술 흔적이 많은 팔과 다리도 평범하게 노출하며 ‘이건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걸 몸소 보여주기도 했다. 

때론 ‘함께 달려나가자’는 격려보다, 곁에서 분투하고 있는 누군가의 존재가 더 큰 용기가 되기도 한다. 안예은이 그랬다. ‘팔에 흉터 자국이 많은데 안예은을 보며 민소매를 입기 시작했다’는 사연이나, 안예은에게서 희망을 얻었다는 환우 부모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그는 “기분 좋은 책임감”을 느낀다. 동시에 안예은은 자신이 ‘극복의 아이콘’으로 보이길 바라지도 않는다. “저를 향한 시선이 ‘심장병이 있었는데 가수를 한다’가 아니라 ‘가수인데 심장이 안 좋대’가 됐으면 좋겠어요. 흔히 ‘결함’이라고 부르는 것들도 아무렇지 않게 슥- 지나갈 수 있길 바라요.”

안예은의 노래엔 ‘혁명의 DNA’가 있다. ‘카코토피아’뿐 아니라, MBC 드라마 ‘역적: 백성을 훔친 도적’에 삽입된 ‘익화리의 봄’과 ‘새날’, 유관순 열사와 감옥 동료들의 옥중 창가 ‘8호 감방의 노래’는 언제 들어도 가슴을 뜨겁게 만든다. 흔히 ‘사극에 잘 어울린다’고 평가받는 목소리의 영향도 있겠지만, 안예은이 특히 민중의 정서를 표현해내는 데 탁월하기 때문이리라. 안예은은 자신 음악의 열쇳말로 ‘한’(恨)을 꼽았다. 안예은의 음악이 독특하게 들리는 것도 이 덕분이다.

이런 독특함은 때로 ‘대중적이지 않다’는 오해를 받기도 한다. 그가 SBS ‘K팝스타 시즌5’에 출연해 자작곡 ‘홍연’을 처음 들려줬을 때, 가수 박진영과 양현석은 ‘쉽게 공감하기 어렵다’는 평을 내렸다. 훗날 이 곡은 ‘역적: 백성을 훔친 도적’의 OST로 사용돼 크게 사랑받았지만, 당시만 해도 안예은은 혼란스러웠다고 한다. “그전까지만 해도 저는 제 색깔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누군가의 아류인 것만 같았죠. 그런데 ‘네 색깔이 너무 강하다’고들 하시니까, ‘내가 색깔이 있는 애였나?’ 싶었어요.”

자신이 부르는 노래와는 다르게 “자존감이 낮고 칭찬을 받으면 몹시 부끄러워하는” 성격이라는 안예은은 이때부터 조금씩 자신의 음악에 자신감을 느끼게 됐다. ‘안예은의 장르는 안예은’이라며 응원하는 팬들도 많아졌다. 안예은은 “이번 음반은 장르적으로나 가사 내용에서나 예전보다 생동감이 많아졌다”면서 “과거엔 우울증이 심했는데, 2년 전부터 치료를 받고 있다. 내 성격이라고 생각했던 부정적인 면들이 사라지면서, 좀 더 진취적이고 생동감 있는 자아가 많이 드러난 것 같다”고 말했다.

“저는 사극풍의 발라드곡으로 많이 알려졌고 그런 음악을 좋아하시는 분들도 많아요. 하지만 그것만 하는 사람으로 인식되는 건 무섭죠. 음악적으로 새로운 걸 많이 시도해보려는 편이기도 해서, 사극풍 발라드 외에도 다양한 음악을 많이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wild37@kukinews.com / 사진=박효상 기자, 안예은 ‘카코토피아’ 뮤직비디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
이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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