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이은호 기자 =“박문치, 그리고 루루와 라라. 그들은 무엇인가 수상함을 품고 있다. (중략) ‥…박문치의 음악을 듣기 위해서 모두가 ‘박문치’라는 구호를 외쳐야 했다. 따라 해보자. 박문치, 박문치, 어 박문취, 예아 박문치, 커몬.” 네이버 온스테이지 역사상 가장 파격적이라고 회자되는 무대의 주인공, 박문치. B급 코드의 콘텐츠로 온라인상에서 마니아를 모은 그가 최근 그룹 엑소 멤버 수호, 가수 강다니엘 등의 음반에 참여하며 아이돌 팬덤에게도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지금도 또 다른 아이돌 가수의 신곡을 작업 중이라는 박문치를 지난 6일 서울 독막로의 작업실에서 만났다.
대문을 열고 계단을 오르자 중문에 붙은 배우 전지현의 브로마이드가 기자를 반겼다. 2000년 발간된 연예 잡지 부록이라고 한다. 거실 한쪽에 있는 작은 테이블엔 1996년 10월 나온 영화 잡지 ‘키노’(KINO) 19호가 놓여 있었다. “(표지 속 배우가) 머리에 총을 겨눈 모습이 과감하잖아요. 야망 있어 보이기도 하고.” 박문치는 웃으며 말했다. 작업실 곳곳에선 그의 괴짜 같은 성격이 묻어나왔다. 직접 그린 시계, 가수 스텔라 장이 선물해준 ‘프로듀서 박문치’ 명패, 선반에 붙인 온갖 스티커…. 사진 촬영을 요청하자 “희한한 모자를 쓰고 찍겠다”며 번호표가 매겨진 파란 야구모자를 꺼내 들었다. 가수 기린이 KBS1 ‘도전 골든벨’ 콘셉트로 만들어 선물해준 것이란다.
눈치 빠른 이들은 이미 알아차렸을 수도 있겠다. 박문치는 1990년대의 정서를 사랑한다. ‘세기말’의 문화엔 특별함이 있다. 박문치는 “90년대에 나온 콘텐츠들은 ‘엥?’하고 느껴질 만큼 신선하다. 직접 그런 걸 만들어보면 더욱 재밌을 것 같았다”고 했다. 지난달 30일 공개한 ‘그 해 이야기’를 비롯해 앞서 발표한 ‘널 좋아하고 있어’, 데뷔곡 ‘울희액이’ 등 모두 90년대 음악을 완벽하게 재현하고 있다. 지난해엔 싱어송라이터 치즈, 스텔라 장, 러비와 함께 S.E.S., 핑클 등 ‘탑골 요정’을 패러디한 걸그룹 ‘치스비치’를 결성해 활동하기도 했다.
1996년생인 박문치는 어쩌다 90년대 음악에 빠져들었을까. 그는 미국 팝의 전설 故 마이클 잭슨이 계기였다고 말했다. “저에겐 굉장히 신선하게 느껴졌어요. 자연스럽게 ‘나도 이런 음악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의 유튜브 채널엔 ‘내 동년배들은 다 박문치 노래 듣는다’는, 세대 불상의 누리꾼이 남긴 댓글이 끊이지 않는다. 공연장을 찾는 관객도 10대부터 40대까지 연령층이 다양하다고 한다. 박문치는 “10대나 20대 중엔 뉴트로 음악이나 ‘힙’한 분위기에 끌려서 오시는 분들이 많다. 반면 30대, 40대 관객들은 (90년대의) 향수를 그리워하시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덕분에 음악 애호가들 사이에선 ‘뉴트로 천재’라고 불리지만, 박문치는 “레트로 음악으로만 알려지는 것 같아 걱정되기도 한다”고 털어놨다. 실제로 그의 음악적 세계는 한 단어로 규정할 수 없을 만큼 넓다. 2년 전엔 가수 김현철의 ‘오랜만에’ 리메이크를 프로듀싱했고, 린의 ‘정말 헤어지는 거야’, 정세운의 ‘데이 앤 데이’(Day & Day) 등도 작곡했다. 최근엔 아이돌 가수들과 자주 작업하고 있다. SM엔터테인먼트의 송캠프에서 작곡가 노데이·이아일과 함께 만든 세 곡이 모두 팔렸다. 수호의 첫 솔로음반 타이틀곡 ‘사랑, 하자’와 강다니엘의 미니 1집 수록곡 ‘인터뷰’(Interview), 그리고 아직 이름을 공개할 수 없는 또 다른 아이돌 가수의 노래 등이다.
“‘인터뷰’는 시작 단계부터 강다니엘 씨를 위한 곡으로 만들었어요. 우리가 잘하는 것을 (강다니엘의 보컬에) 접목해보자며 작업을 시작해 하루 만에 완성했죠. ‘사랑, 하자’에는 재밌는 사연이 있어요. 우리끼리 잼(즉흥연주)을 하던 것을 SM엔터테인먼트의 A&R 담당자가 들으시곤, ‘수호 씨가 솔로 음반에 이런 분위기의 노래를 넣고 싶어 한다’며 수호 씨에게 들려준 거예요. 그 노래가 타이틀곡이 될 줄, 음원차트에서 1위까지 하게 될 줄 그때는 몰랐어요. 아직도 신기해요.”
특히 수호는 ‘사랑, 하자’ 녹음에 7시간 이상을 투자하며 남다른 노력을 보여줬다고 한다. 박문치는 “감정 표현이 중요한 노래라, 어떤 부분은 (녹음을) 한 글자씩 끊어서 하기도 하고, 어떤 부분은 원테이크로 이어가기도 했다”라면서 “수호 씨가 녹음만 2프로(약 7시간), 수정 녹음도 1프로(3시간30분)를 채웠을 정도로 열심히 해줬다”고 돌아봤다. 발매를 기다리고 있는 나머지 한 곡 역시 노래 주인이 무척 마음에 들어 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박문치는 “애절하면서도 섹시한 분위기의 노래”라고 귀띔했다.
송캠프를 통해 주인을 찾은 세 곡과 달리, 정세운의 ‘데이 & 데이’는 박문치와 정세운, 그리고 김아현이 시작 단계에서부터 함께 만든 노래다. 정세운은 SBS ‘K팝스타 시즌3’에 함께 출연했던 김아현을 통해 박문치에게 러브콜을 보냈다고 한다. 박문치는 “세운이가 음악에 대한 열정이 정말 많다. 작업실에도 직접 와서 ‘0’에서부터 모든 걸 함께 만들어간다”고 말했다. 요즘엔 가수 아이유의 음반을 자주 들어 ‘아이유와 작업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크단다. 그러면서 “내 곡을 원하는 가수라면 누구와의 협업이든 좋다”고 덧붙였다.
박문치의 모토는 “재밌고 행복하게” 활동하는 것이다. ‘박문치’라는 예명도 “본명(박보민)이 워낙 ‘노잼’이라 지었다”는 그에게, 재미와 행복은 돈만큼이나 중요한 것이다. 진정성을 최고의 가치로 숭배하던 기자에겐 ‘새로운 세대의 뮤지션’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박문치의 유튜브를 보면, 트와이스 ‘댄스 더 나잇 어웨이’(Dance The Night Away) 리믹스부터 ‘세탁기와 합주하기’ 등 다양한 영상을 발견할 수 있다. 박문치는 “그냥 재밌는 일에 발을 담그고 있는 것”이라면서 “욕심일 수 있지만, 재밌고 ‘간지’나는 건 다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wild37@kukinews.com / 사진=곽경근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