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사 기자 출신 임영주 씨, 고향서 커피농장 일궈-
-봄이면 농장은 새하얀 꽃과 빨간 열매로 장관-
-푸드 마일리지제로, 담양산 골드캐슬 커피(Gold Castle Coffee) 인기 -
-시골살이도 배움과 교육의 연속, 농사꾼도 스펙이 중요-
-‘담양 가볼만한 곳’ 검색어 순위 10위권-
-작은 커피 씨앗 바탕으로 농촌융복합산업 꿈 키워-
-커피테마파크 커피마을 조성해 더불어 행복한 삶 목표-
[쿠키뉴스] 전남 담양‧ 곽경근 대기자=“니째야, 뒤늦게 고향엔 뭐할라고 내려 온다냐!”
40년 전 보도 사진가의 꿈을 품고 서울행 기차에 올랐던 넷째아들이 환갑이 다된 나이에 귀향 해 농사를 시작하겠다니 노모는 걱정이 앞섰다. 힘든 농사는 부모세대로 끝내고 싶었는데 그것도 생전 듣지도 보지도 못한 커피농사라니… 연로하신 어머니는 밤잠을 못 이뤘다. 자나 깨나 노심초사하며 아들을 지원했던 어머니였다. 지난 2016년 봄, 서울생활을 완전히 접고 뒤늦게 커피농사를 짓겠다며 귀향했다. 사람들이 떠나는 농촌으로 내려온 아들이 도무지 이해가 안 됐다. 서울에서 언론인으로 잘 살고 있다고 동네사람들은 알고 있었다. 표현은 안했지만 내심 뿌듯했던 어머니였다. 하지만 고향으로 돌아온 아들을 동네사람들이 수군거린 것 같아 노모는 한 동안 노인정 출입도 꺼렸다.
시골 동네에서 서울로 유학 간 아들부자인 임 씨네 넷째 아들을 마을 어르신들은 기억하고 있다. 마을 초입에 하루가 다르게 지어지는 커다란 시설하우스는 일거수일투족 관찰 대상이 었다. 딸기로 유명한 담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비닐하우스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시골인심이 그렇듯 신축 중인 대형 비닐하우스 앞에는 이곳을 오가는 마을 사람들을 위해 막걸리와 가벼운 안주가 놓여 있었다.
“임 기자! 커피나무는 아프리카에서나 브라질 같은 곳에서 자라는 거 아냐, 우리 고장에서도 잘 자랄 수 있을까, 이렇게 크게 사업을 시작하는 거 보니 서울 가서 돈은 많이 벌었나봐” 막걸리 한잔으로 목을 축인 동네 어르신들은 걱정 반 기대 반으로 질문을 쏟아냈다.
사진이 귀했던 시절, 막 중학교에 입학한 임영주 담양커피농장 대표농부(63·이하 임 대표)는 베트남 전쟁 참전용사였던 큰형이 가지고 온 일제 야시카 카메라로 메고 동네를 누볐다. 풍경사진과 마을사람들 초상사진을 찍어줘 칭찬이 자자했다. 호기심 많은 소년이 대학에서 사진을 공부하고 중앙일간지 기자로 활약하고 있는 것을 시골 동네 사람들은 익히 잘 알고 있다. 정작 부모님은 시골에서 자식자랑을 할만도 한데 조용히 지내셨다. 혹 남에게 상처주고 자식에게 누가 될까봐 조심스러웠던 것이다.
그렇게 반신반의했던 커피농장 겸 체험장이 어느새 번듯하게 자리 잡고 하우스 안에서는 싱그런 커피나무가 무럭무럭 자랐다. 농장을 설립한지 채 일 년도 안되 입소문이 나고 외지 승용차와 관광버스가 수시로 들락거리고 ‘담양의 가볼만한 곳’ 검색순위 10위권(관 운영 빼면 2~3위)에 들어서자 마을 뿐 아니라 주변의 인식이 크게 달라졌다.
개구쟁이로 자라면서 엄한 부친에게 혼이 날 때면 언제나 넉넉한 치마폭으로 감싸주던 어머니 허야무(95)의 주름진 얼굴이 활짝 펴졌다. 마을 어르신들도 농장을 지나치면서 임 대표에게 밝은 표정으로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다. 이만하면 초보 농사꾼으로는 대단한 성공이다.
-잘 나가던 특종기자에서 커피농사꾼이 되기까지-
아들 부잣집의 넷째로 태어난 임 대표는 어릴 적부터 궁금할 일이 있으면 반드시 해결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었다. 국민학교(현 초등학교) 2학년 가을 어느 날 일이다. 추수 후 타작을 위해 집 앞에 커다랗게 쌓아놓은 원통형 벼 낟가리가 있었다. 덜 마른 아래쪽 볏단에 불이 붙을지 궁금해 친구와 함께 불을 붙여 보았다. 안 탈것 같았던 젖은 볏단은 아이들 생각하곤 달리 연기를 내며 순식간에 타올랐다. 연기를 보고 달려온 아버지와 동네 사람들이 겨우 불을 껐다. 화가 난 아버지는 일 년 먹을 양식과 집까지 다 태울 뻔했다며 어린 소년을 감나무에 세우고 벌을 줬다. 불이 얼마나 무서운지 보여주겠다며 신발 아래 불을 붙이는 시늉을 하며 겁을 줬다. 엷은 옷을 입은 체 늦가을 저녁까지 벌을 서고 있던 철없는 어린 아들을 어머니는 따뜻한 치마폭에 한참이나 감싸 안았다. 또 한 번은 수박서리한 동네 형들의 무용담을 듣고 친구와 함께 수박서리에 나섰다가 친구가 넘어지면서 그만 수박밭 주인에게 잡히고 말았다. 지서(현 파출소)에 잡혀간 친구가 임 대표와 함께 서리를 했다고 말하는 바람에 아버지와 함께 지서에 불려갔다. 큰돈을 수박밭 주인에게 물어주기로 약속하고 겨우 풀려났다. 그 후로 임 대표는 집에서 수박은 구경도 못했다고 했다. 엄격했던 아버지와 달리 어머니는 늘 자식들을 이해하고 다독거려 주었다.
부모님 세대에는 형편이 어려워 교육 받을 기회가 적었다. 임 대표의 부친(작고)도 다르지 않았다. 그나마 훈장이였던 할아버지 영향으로 한학을 깨우치고 초등학교 문턱 정도는 갔지만 공부보다 먹고 사는 문제가 우선이었을 시대다. 그러나 배움의 중요성을 안 부친은 허리띠를 졸라 매면서 자녀들 교육만큼은 무슨 일보다 앞섰다. 농촌에서 손바닥만한 농사를 지어 7남1녀 모두를 고등교육까지 시킨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형들은 모두 부친이 원하는 대로 교사나 공무원의 길을 택했다. 중학교 시절부터 사진 찍기에 관심이 많았던 임 대표는 고등학교 교내 사진전에서 은상을 받았다. 교지에 당당히 수상작이 실려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다. 필름 현상과 인화를 위해 사진관을 들락거리던 임 대표는 어느 날 사진관에서 사진 전문잡지 ‘라이프’지를 보게 된다. 세계적 사진가인 앙리 까르띠에 브레송과 특종 종군기자인 로버트 카파의 사진에 깊은 감명을 받고 사진가의 길을 결심한다.
“열심히 공부해 안정적인 직장을 가져야지, 사진관이나 하려고 하느냐”며 아버지가 화를 내며 크게 반대했다. 다행히 당시 교사였던 외삼촌이 “사진은 신학문이고 장래성도 있으며 특종 사진기자가 될 수 있다”는 설득과 어머니의 도움으로 임 대표는 독학으로 사진을 공부해 서울의 유명대학 사진학과에 당당히 합격했다.
이후 임 대표의 낮선 서울 생활은 힘도 들었지만 졸업 후 당당히 중앙일간지에 사진기자로 입사해 ‘파수꾼’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해 감당해냈다. 사진기자로서 가장 중요한 덕목인 체력과 담력, 감각과 친화력을 모두 갖춘 임영주 기자는 많은 특종과 함께 어려운 기획취재도 너끈히 소화해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란 말로 지금까지 회자되고 있는 탈주범 지강헌 사건은 너무나 유명해시사한 바가 크다. 서울 남가좌동 개인주택에 침입해 인질을 잡고 창가에서 자신의 머리에 총을 대고 있는 사진은 그의 대표작 중 하나다. “당시 총을 소지한 탈주범 지강헌과 거리는 불과 4m 내외였다. 대문 위 비좁은 장독대에 포진한 기자들 방향으로 지강헌이 쏜 총소리에 놀라 카메라를 떨어뜨린 기자도 여럿 있었다 ”고 임 대표는 당시를 회상한다.
그 외에도 산악인 허영호대장과 얼어붙은 북극해를 죽을 고비를 넘기며 횡단했고 설산 히말라야 로체 등정, 산악자전거로 5천 미터 이상 산악지대와 사막횡단, 오지탐험 등 일반 기자들이 쉽게 접할 수 없는 영역을 임 대표는 특화해 취재하고 이를 즐겼다.
어려운 취재를 도맡아 하면서 생사의 갈림길도 여러 차례 넘겼지만 지금도 어려움이 처했을 때 당시를 회상하면서 고비를 넘긴다고 말했다. 도전과 모험을 즐기던 자유인 임 대표는 오랜 기자 생활을 한 중앙일보를 떠나 홍보 관련 사업을 하면서 성공의 단맛과 실패의 쓴맛도 보았다. 이후 통신사 기자로 다시 언론에 몸 담은 임 대표는 기획취재로 2014년도 아프리카 케냐로 출장을 갔다.
그다지 커피를 즐겨하지 않았던 그는 케냐의 한 커피농장에서 맛 본 커피에 깜작 놀랐다. “커피가 이렇게 향과 맛이 좋을 수가 있단 말인가?” 산지에서 커피열매를 직접 따고 말려 탈곡한 신선한 생두를 볶고 갈아서 내린 핸드드립 커피였다. 여태껏 먹었던 커피는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자신의 손으로 직접 만든 커피 맛은 한국에서 맛보던 어떤 커피보다 신선하고 향미가 풍부했다. 놀란만 했다. 커피의 세계에 빠질 줄 이때만 해도 몰랐다.
단순히 커피나무 키우기에 관심을 갖고 있던 그는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커피나무를 키우고 열매를 생산해서 로스팅하고, 내려 마시는 커피체험농장에서 커피테마파크 타운까지 머릿속으로 상상의 날개를 폈다. 면밀히 검토 후 결심이 서면 바로 실천에 옮기는 그는 본격적으로 커피공부를 시작하고 문익점처럼 현지에서 몰래 가져온 커피 씨앗을 발아해 아파트 베란다와 거실에서 30여 그루를 키웠다. 5년 전인 2015년에 마침내 고향인 담양에 작은 비닐하우스를 짓고 커피 시험재배에 들어갔다. 주말이면 무조건 고향을 찾아 커피나무를 돌보고 커가는 과정을 관찰하고 보살폈다. 다행히 먼저 귀향해 홀어머니를 모시며 살고 있는 막내 남동생 영노 씨가 큰 도움을 주었다. 아무리 고향일지라도 떠났다가 돌아오면 동네에서 이방인 대접을 받는 기분은 솔직히 지울 수가 없다. 귀향 당시 이미 동생은 지역 사령관이고 사회단체 활동도 많이 하는 마당발이여서 한없이 커 보였다.
귀농과 귀향을 동시 결심한 그는 시간을 쪼개어 하나둘씩 준비를 해나갔다. 천안 소재 연암대학에서 석 달을 합숙하며 낮에는 농업의 전반에 관해 배우고 밤에는 인터넷으로 커피 공부를 했다. 요리 자격과 제빵은 기본이고 미국에서 향미전문가 자격증과 이탈리안 바리스타 자격증까지 취득하는 등 차곡차곡 더 큰 세상을 준비했다.
-담양커피농장은 이런 곳-
기자가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피해 청정 담양커피농장을 방문한 지난 25일, 농장 문을 열고 들어서자 새소리와 잔잔한 클래식 음악이 일행을 반겼다. 더불어 농장 안 녹색식물에서 뿜어져 나오는 항산화 성분과 음이온, 초록색 커피 숲 사이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코끝이 상쾌해졌다. 일순 몸이 가벼워지며 머리가 맑아지는 듯 했다. 이것이 임대표가 말하는 커피농장 힐링인가 보다.
임영주 대표 커피농부와 밝게 인사를 나누었다. 조끼를 걸치고 카우보이모자를 쓴 임 대표의 모습은 영락없이 중남미의 커피농부를 연상케 한다. 식물과 날마다 교감해서인지 차분하고 온화한 모습이지만 그의 과거 전력답게 단단한 몸매와 부드럽지만 당찬 모습도 함께 보였다.
“농사꾼이 훨씬 더 바빠요. 농장 전체면적이라야 그리 넓지 않지만 하루 종일 쉴 틈이 없어요”라며 “농장 일도 많고 체험객도 많이 찾아오지만 요즘 농사꾼은 공부도 많아해야합니다. 특히 저처럼 개척정신으로 시험작물을 재배하는 사람은 더욱 그렇습니다”며 자신감 넘치는 첫마디를 던진다.
처음 서울 아파트 베란다와 거실에서 키운 커피묘목을 고향 땅에 옮겨 심고 본격적으로 커피농사를 시작한 2016년부터 임 대표는 비닐하우스 곁을 떠나지 않고 있다. 시설 비닐하우스 한 귀퉁이에 사무실 겸 간이 주거공간을 마련해 밤낮으로 커피나무의 성장을 지켜보면서 연구하고 모르는 부분은 바로 컴퓨터를 검색해 찾아보는 등 열성을 다했다.
임 대표는 “ 커피나무는 생각보다 생명력이 강합니다. 건기와 우기가 있는 고향을 그리워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혹한과 혹서 그리고 봄가을의 큰 일교차를 극복해야 합니다. 그런 연유로 한국만의 독특한 성격의 커피가 탄생 됩니다. 처음엔 아열대 작물인 커피나무가 자라는 데 필요한 온도를 유지해 주기 위해 밤샘하는 일이 허다 했습니다. 온도 섭씨 1도를 물리적으로 올린다는 것 상상이 안 될 겁니다. 묘목이 얼어 죽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열매가 맺히지 않아 애를 먹었다. 정말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고 털어놨다.
적도를 중심으로 북위, 남위 25도를 보통 ‘커피벨트’라 칭한다. 커피벨트는 기후와 풍토가 커피가 잘 자라는 환경과 조건이어서 자생하거나 재배가 많이 이뤄지는 지역이다. 커피 산지라고 불리는 아프리카의 에티오피아․케냐, 중남미의 멕시코․브라질, 동남아시아의 베트남․인도네시아 등이 여기에 속한다. 임 대표는 커피나무가 잘 자라려면 온도를 평균 15℃에서 30℃로 유지하고 적절한 일조량과 환기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담양커피농장의 시설하우스 역시 스마트한 시스템 체계를 갖추고 있지만 혹한기에는 몇 년간 정성껏 키운 나무들이 한 번의 오류나 에러로 한 순간 냉해나 동해로 죽을 수도 있다. 혹서기에는 나무들이 화상을 입을 수도 있어 온도와 통풍에 늘 신경을 쓴다고 했다.
다행히 담양(潭陽)은 말 그대로 물이 많은 담(潭)과 볕이 좋은 양(陽)으로 이뤄져 있는 고을이어서 사람이든 식물이든 성장하는데 최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단다.
담양커피농장은 내 외부 면적이 약 1650㎡(500평)로 농장 안으로 들어서면 연녹색의 커피 열매에서부터 빨갛게 익어가는 열매까지 한 번에 만날 수 있다. 봄이 한창 무르익는 4월이면 새하얗게 피어난 커피 꽃까지 볼 수 있다. 시험재배 중인 파파야 등 열대과일들도 중간 중간 커피나무 위로 달려 있어 마치 아열대 식물원을 방문한 느낌이다.
커피열매는 언뜻 체리를 닮았다. 연녹색에서 익어가면서 노랑, 빨강, 진홍빛으로 변해 더 탐스럽다. 농익은 열매의 과육에서는 일반 체리보다도 더 달콤한 맛과 향이 배어나고 순백의 커피 꽃에서는 자스민향이 묻어난다. 이곳 농장에서 생산되는 커피열매의 과육 당도는 평균 25.0 브릭스를 넘어서 커피 주산지 당도보다 높게 나오고 있다. 한국의 봄, 가을 큰 일교차의 영향이라고 설명한다.
커피열매는 커피나무가 보통 3~4년이 되파파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아라비카종은 벌 나비가 없어도 자가수분을 한다. 담양커피농장에는 아라비카 등 12개 품종을 시험 재배 생산하고 있다. 농장에서 생산된 커피는 금성면에 있는 금성산성(金城山城)의 지명을 따서 ‘골드 캐슬(Gold Castle)’로 이름 붙였다.
이곳에서는 직접 재배한 커피나무에서 나온 씨앗을 발아시켜 묘목까지 키운다. 1년생부터 3년생, 5년생에 이르기까지 어린나무 수천 그루가 자라고 있다. 큰 나무도 수백그루에 달한다. 담양커피농장은 붉게 익은 커피열매를 따는 수확 체험부터 생두를 볶고(로스팅) 갈아서 핸드드립으로 직접 내려 마시기까지 커피의 모든 것을 체험할 수 있다.
국내서 생산한 푸드 마일리지 제로인 햅쌀 개념의 골드캐슬 커피를 비롯해 26브릭스 농익은 커피 과육으로 만든 커피잼, 유기농 무농약 커피잎차, 자스민향이 진동하는 커피꽃차, 커피열매의 과육을 말린 카스카라차도 접할 수 있다. 여러 종류의 커피 묘목도 판매한다. 연중 이국적 풍광의 상록수 커피나무 숲을 거닐며 힐링 할 수 있는 새로운 트렌드 커피체험농장이다.
임 대표는 “모든 농축수산물이 그렇듯 커피도 푸드 마일리지(Food Mileage)와 비례해요. 이동거리가 길면 길수록 신선도가 떨어지죠. 그래서 사람들은 로컬 푸드(local food)를 선호해요”라며 “커피도 신선한 것이 당연히 맛있다. 좋은 생두와 로스팅, 바리스타의 역할은 그 다음”이라고 말한다.
친구들과 담양커피농장을 찾은 오은하(전남 광주‧46) 씨는 “빨간 커피열매도 처음보고 커피 만드는 체험도 처음이다. 한국에서 이런 체험을 할 수 있다는 게 신기하다”며 “커피 맛은 한마디로 표현하긴 어렵지만 첫 맛은 부드러우면서 구수하고 중간에는 살짝 단맛도 나면서 마지막에는 발효향이 탁치고 올라오는 듯했다. 커피 한 모금에서 다양한 맛과 향을 느꼈다”고 말했다.
한 커피전문가는 담양커피농장에서 생산된 골드캐슬에 대해 “한국에서 뿌리를 내리고 추위와 더위를 이겨내고 자라서 이곳만의 새로운 발효기법으로 재탄생된 커피다”라며 “커피는 기호식품이어서 사람마다 다 취향이 다르긴 하지만 한 번도 마셔보지 못한 비교불가의 맛인 것만은 틀림없다”고 말했다.
임 대표는 “솔직히 골드캐슬 커피는 따지고 보면 이름도 족보도 없다. 커피 취향은 다 달라 골드캐슬이 최고의 맛이라고 할 수는 없다”며 “하지만 시중 어디에 가도 맛 볼 수 없는 우리 커피만의 신선함과 독특한 향미가 있다.”며 “최소한 우리 땅에서 나고 자라 생산된 우리 농장 커피가 싱싱한 ‘생태’라면 나머지 커피는 조금 과한 표현이지만 ‘동태’라고 말할 수는 있다”고 자신감을 보인다.
어느 정도 커피농사에 자신이 붙은 임 대표는 “커피나무는 노동력이 적게 들고, 병해충도 많지 않고, 생각 외로 난방비도 큰 부담 없이 지속적으로 수확할 수 있다”며 “커피나무 재배면적을 차츰 늘리고 아열대작물도 시범 재배 중이다. 식품가공 및 파생사업까지 확대해 지역사회와 상생하는 사회적 기업으로 키워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기자 시절보다 바쁜 나날들/ "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면, 불역열호(不亦說乎)아."
-농촌도 이제는 전문경영과 스펙이 필요한 시대-
커피에 대해 조금의 눈은 떴지만 아직도 베테랑 동네 어르신들에 비하면 갈 길이 먼 초보 농사꾼이다. 커피농사관련 농업지도서나 교과서가 없는 상태에서 맨땅에 헤딩하듯 매일 매일 개척하고 도전해왔다.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는, 아무도 가르쳐 줄 수 없는 커피농사의 노하우를 오늘도 하나씩 알아가고 있다.
귀농 후 시골살이는 교육과 배움과 행사의 연속이다. 농촌살이도 스펙과 품격이 중요하다.
농업인도 스펙이 중요한 시대다. 농사를 잘 지어야하는 것은 기본이고 품격(퀄리티)과 자신의 스펙을 높이는 것 역시 중요하다. 많은 종류의 인증과 검증를 받기 위해 오늘도 교육을 받는다. 농사일이 겹쳐 바쁠 때에도 꼭 필요한 교육이면 억지로라도 시간을 낸다. 미래에 대한 투자가 우선이기 때문이다. 대외적인 인지도와 신뢰도는 인증과 검증에서 비롯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강소농교육, 발효연구, 창농 디자인 교육과 정보화 교육, 아열대과수 교육 등 수많은 교육과 농촌체험관광지도사 자격증, 전통문화놀이 자격증 등 모두 기억할 수 없고 열거할 수 없을 정도다.
지난해에는 농민에게 고시만큼이나 어렵다는 농업진흥청에서 검증한 농촌교육농장 품질인증도 받았다. 농촌교육농장 품질인증은 농업 활동이 이뤄지는 농촌의 모든 자원을 바탕으로 학교교육과 연계된 교육프로그램 활동을 정기적으로 제공하는 교육의 장을 말한다. 단순한 농촌관광을 넘어 어린이들에게 농촌이 갖고 있는 소중한 가치를 인식시키고, 자연과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우며, 농업인으로 하여금 농업활동에 대한 무한한 자긍심과 보람을 느끼게 하는 대안적 모델이다.
귀농하기 전보다 문서나 서류를 작성하는 일도 많아졌다. 직장생활을 할 때도 기껏 출장 품의서나 일지를 쓰는 정도가 전부였는데 관련 자료와 책자를 서너 번 독파하고 며칠씩 밤샘을 해가며 수십 페이지의 서류를 완성 관공서에 보낸 적도 여러 차례다.
“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면, 불역열호(不亦說乎)아.” “배우고 익혀서 때에 맞추어 실천하면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가 임 대표에게 배움은 현실이고 고되지만 즐거운 일상이다.
-그가 꿈꾸는 커피유토피아-
‘커피체험 1번지’ ‘핸드드립 커피 맛있는 집’ ‘아열대작물 견학 1번지’ ‘선진지 견학 1번지’ 등 담양커피농장을 지칭하는 단어들이다. 농장의 품격도 상승 중이다. 농민단체와 기관, 학교, 종교단체, 회사 그리고 온라인카페모임 등 숱한 단체와 다양한 체험객들이 방문 후 방명록에 좋은 글들을 남기고 간다.
그동안 커피나무 숲에서 합창단의 합창과 뮤지션들의 즉석 연주, 시 낭송회, 사진촬영대회도 가졌다. 해마다 크게는 못해도 마을어르신들을 모시고 경노잔치도 열었다. 3년 전에는 커피농장 바로 길 건너에 위치한 오래된 정미소도 인수했다.
역사도 수십 년 됐지만 방앗간 건물 모양새가 멋있어 늘 마음에 품고 있었다. 사실 이 방앗간이 없었다면 커피농장은 지금 자리에 들어서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커피농장을 시작하면서 세웠던 9차 계획 중 2차 계획이 방앗간 구입 건 이었단다. 커피농장을 일구고 체험장을 만든 다음 ‘커피방앗간’이 필요했다.
농촌의 정서적인 면과 역사성과 상징성, 시대성과 공간적인 의미가 있어서다. 동네 사람들과 함께 상생하며 더불어 사는 커피공동체를 생각했던 터라 망설임이 없이 진행했다. 지금은 커피방앗간을 멋있게 운영할 동력자를 찾고 있다.
담양군과 담양군농업기술센터에서도 담양의 신지식인 임 대표의 거취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소건영(61) 미래농업연구소 소장은 “임 대표는 적은 면적에서 고소득을 올리는 대표적 선진농이다. 귀농 전 농업계 전문대학인 연암대학교와 농업기술센터에서 열성적으로 교육을 받고 준비도 철저히 했다”며 “그런 노력 덕분에 창업 첫해부터 수익을 냈다. 귀농인들의 롤모델 같은 분”이라고 말했다.
‘담양은 나무가 지역을 살리고 나무가 관광객을 끌어 모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나무에 메타세쿼이아가 더해 유명 관광지가 됐다. 임 대표는 여기에 나무 한 가지를 보태려 한다. 테마적인 요소와 콘텐츠 향기가 강렬한 커피나무를 더해 담양에 나무벨트를 만들어 보려는 것이다. 죽녹원을 시작으로 관방제림을 지나 메타세쿼이아 가로수 길을 걷다가 커피농장 견학투어와 커피체험으로 마무리하고자 한다. 담양하면 3T(Three Tree) 즉, 대나무와 메타세쿼이아 나무 그리고 커피나무가 연상되는 지도를 그려본다.
담양군농업기술센터 김나빈아(53) 경영지원과장은 “임 대표는 커피 농사를 잘 짓기위해 정말 열심히 교육도 받고 스스로 노력도 많이 하는 분이다. 우리 기술센터는 최근 농산물가공센터를 오픈 해 시험가동 중이다. 전남도립 식품학과와 커피농장과도 연계되는 사업을 찾아보고 있다”며 “특화작물인 커피를 융복합사업으로 농진청에 공모하는 등 담양군의 대표 수익작물 중 하나로 키워보려 한다. 임 대표는 부지런하면서도 여유도 있고 창의력도 뛰어난 매력적인 분”이라고 평했다.
다양한 아이템과 성실함, 추진력까지 갖춘 임 대표의 행보에 주변에서 많은 관심과 기대가 넘친다. 커피농장, 커피방앗간 카페, 커피박물관과 전시장이 함께 어우러진 커피테마파크 커피마을에서 이웃과 더불어 행복한 삶이 63세 청년 임영주가 꿈꾸는 융복합 6차 산업의 장밋빛 청사진이다.
kkkwak7@kukinews.com / 사진=곽경근 대기자‧ 임영주 커피농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