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오준엽 기자 = 6월은 현충일과 6·10 민주항쟁 기념일, 6·25전쟁 기념식, 제2연평해전 추모식이 있는 ‘호국보훈의 달’이다. 사전적으로 ‘호국보훈(護國報勳)’은 ‘나라를 지키고 나라를 위해 힘쓴 사람들의 공훈에 보답한다’는 의미다. 하지만 정작 스스로를 희생한 이들이 무엇을 원하고, 필요로 하는지를 고민하는 이들은 많지 않아 보인다.
이에 호국보훈의 달을 기념해 쿠키뉴스에서는 ‘호국보훈의 달’ 특집기사를 통해 국가유공자들의 오랜 숙원들이 무엇인지, 유공자가 바라본 보훈정책의 문제점은 어떤 것인지를 살펴봤다. 나아가 제도개선을 위한 정부와 정치권의 노력을 짚어보고, ‘호국보훈’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 “국가유공자의 명예는 추락하고 있다”
국가유공자는 국가와 국민을 지키기 위해 희생한 이들을 일컫는 말이다. 이에 정부와 국회는 ‘국가보훈 기본법’과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국가유공자법)’ 등을 제정해 국가유공자와 그 유가족에게 합당한 예우와 지원을 약속했다. 그러나 법에서 정하고 있는 예우와 지원이 제도화되고 실행되는 과정에서 국가유공자들의 반감을 사고 있다.
한 보훈단체 관계자는 “국가유공자들이 기대하는 것과 국가가 보여주는 행태의 간극이 크다”며 “해주고 욕먹는 수준”이라고 혹평했다. 심지어 한 국가유공자 모임의 대표 A씨는 “오늘날 보훈의 현실은 참혹하다. 정부는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고, 대한민국 국가유공자의 명예는 추락하고 있다. 국가를 위한 희생의 대가가 너무 가혹하다”고 한탄하기도 했다.
무엇이 국가유공자들 스스로가 유공자임을 당당히 밝히지 못하고 한숨과 원망어린 시선으로 국가를 바라보도록 하는 것일까.
A씨는 이 같은 질문에 ‘기본이 부실한 전시행정’과 ‘정부와 공무원들의 인식’을 가장 큰 문제라고 꼽았다. 유공자들이 국가로부터 예우와 지원을 받고 있다는 실질적이고 기본적인 정책이나 제도보다는 보여주기 좋은 지원정책이나 사진찍기가 목적인 과시형 행정이 횡횡하고, 그마저도 귀찮다거나 사무적인 태도가 드러나는 행태가 많다는 지적이다.
대표적인 예로는 문재인 정부의 대표 보훈사업으로 2019년부터 추진해온 ‘국가유공자 명패’ 보급사업을 들었다. 국가보훈처는 “국가유공자의 희생과 공헌을 이웃이 함께 기리는 사회 분위기를 조성하고 세대를 넘어 보훈정신을 체화하는 체험과 참여 중심의 선양사업”이라며 2020년에는 명패보급사업을 더욱 확대 추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러나 국가유공자들은 “가장 쓸모없는 전형적인 전시행정”이라고 강하게 비난하고 있다. 당장 명패를 달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에 주거가 불명확하거나 소유하고 있는 주택이 아닐 경우 명패를 달기가 마땅찮다 지적이었다. 여기에 유공자인지도 숨기는 마당에서 명패를 달고 싶지 않다는 이들에, 명패를 전하는 공무원의 불친절한 태도나 인식을 문제 삼는 경우도 많았다.
약 4만명의 국가유공자가 보훈정책과 일상정보를 공유하는 ‘국가유공자를 사랑하는 모임’에는 “문 대통령도 (유공자의) 예우를 위해 명패수여사업을 강조했다. 그러나 사업이 본래취지와 달리 지자체 담당자의 명패지급과정 등에서 다수의 문제가 확인됐다. 지자체의 무분별한 보도자료 배포는 사업취지와 부합하는지도 의문”이라며 부당사례를 모으기도 했다.
사례들을 살펴보면 “연락도 없다가 면사무소에 갔더니 불쑥 내줬다. 황당하고 기분이 좋지 않았다”거나 “전세집이라 주인허락을 받고 붙여야할 텐데 붙이게 해주겠냐. 창고행이다. 자존심 상하게 이런 걸 왜 하냐”는 등의 불만을 토로하는 모습이었다. 일부는 “기본 예의를 갖추기는커녕 언제까지 찾아가라며 전화를 끊었다”며 공무원의 태도를 문제 삼기도 했다.
◆ ‘보훈 = 돈(?)’, 기본 예우 막아서는 재정·보건 당국
그럼 국가유공자들이 진정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안타깝게도 보훈처나 보훈관련단체에서 유공자들을 대상으로 제도개선이나 의견을 묻는 광범위한 설문조사나 인식조사를 시행했던 사실을 확인할 수 없었다. 찾을 수 있었던 자료는 국사모가 2006년부터 2007년 사이에 진행한 설문조사가 사실상 전부였다.
해당 설문에 따르면 유공자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보훈급여금 인상(69%)’이었다. 뒤를 이어 취업(10%), 유공자예우(7%), 법률개정(3%) 순이었다. ‘국가와 사회로부터 받고 있는 시혜 중 확대되길 희망하는 것은 무엇이냐’는 질문에는 1위가 보상금(51%), 2위가 취업보호(16%), 3위가 의료보호(12%), 4위가 대국민홍보(11%)였다.
심지어 많은 유공자들이 불편을 토로함에도 교통지원확대를 바라는 이들은 2%에 불과한 점이 그 절실함을 반증하기도 한다. 실제 유공자들은 일반버스 승차 시 제공되는 무임승차혜택을 거부당하거나 이상한 눈초리를 받고, 마을·광역 버스체계 도입 후 십수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무임승차나 승차할인이 적용되지 않아 불편을 겪고 있다.
이와 관련 노용환 국사모 대표는 “설문결과만 보면 유공자들이 돈독에 올랐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총탄이 빗발치고 사람이 죽어가는 전장의 경험, 전우를 지키지 못한 죄책감, 전쟁의 상흔을 몸에 새긴 채 고통 속에서 평생을 살아온 국가유공자가 생활고로 폐지를 줍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며 “최소한의 생계는 보장돼야한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이어 “다수의 유공자가 고령인데다 신체적 제약으로 노동력을 상실했거나 근로가 어려워 생계를 위협받는 상황에서 보훈급여금이 소득으로 간주돼 기초생활수급이나 기초연금 등 사회안전망의 대상에서 제외되는 실정”이라며 “보훈급여금은 희생에 대한 보상적 성격이지 소득이 아님에도 (기획재정부나 보건복지부는) 마치 불로소득인양 취급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일련의 문제는 2019년 국회 정무위원회가 보훈처를 대상으로 진행한 국정감사에서도 지적됐다. 보상금이 소득으로 산정돼 기초생활수급자 혹은 노령연금을 받지 못하는 문제, 일부 유공자 미망인의 보상금 미승계 문제, 지자체별 지급 보훈급여의 격차문제 등 형평성과 현실성을 고려한 조치가 이뤄져야한다는 주문이다.
하지만 국회의 주문은 여전히 이행되지 않고 있다. 보훈처에 따르면 참전명예수당 인상 문제는 재정당국인 기획재정부, 보상금의 소득산정으로 인한 복지급여 제외문제는 보건복지부, 보훈급여의 지역별 격차는 지방정부의 협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이다. 이에 보훈처는 “지자체로는 협조요청을 발송했으며, 여타 문제는 관계부처와 협의하고 있다”고 했다.
다만 일련의 협의가 언제 어떤 식으로 결론이 날지, 결론을 낼 수는 있을지에 대해서는 장담할 수 없다는 입장 또한 간접적으로 내비쳤다. 재정당국과 보건당국이 난색을 표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한 보훈단체 관계자는 “사실 오래 전부터 제기된 문제이자 가장 필요하고 유공자들이 요구하는 사안”이라면도 “돈이 드는 문제다보니 십수년째 제자리”라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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