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이준범 기자 = 그룹 블랙핑크는 지난달 26일 발표한 신곡 ‘하우 유 라이크 댓’(How You Like That)에서 연인과 헤어진 후 “바닥을 뚫고 저 지하까지” 추락한 여성의 심정을 노래한다. 노래의 상대는 ‘너’가 아닌 ‘너희’다. 그에겐 이미 다른 연인이 생긴 것으로 보이고, 그것 역시 추락의 이유로 추정된다. 단순히 저주를 퍼붓고 잊기 위해 노력하는 구구절절한 이야기는 아니다. 몽환적인 오케스트라 사운드 도입부로 현재의 심정을 표현한 ‘하우 유 라이크 댓’은 후반부로 갈수록 파워풀한 비트로 내달리며 오히려 상대에게 현재 심정을 적극적으로 되묻는다. “실컷 비웃어라 꼴좋으니까”라고 현재 자신을 인정하면서도, “그때쯤에 넌 날 끝내야 했어”라고 서늘한 여운을 남긴다.
블랙핑크는 ‘하우 유 라이크 댓’을 통해 최악의 이별 앞에서도 당당하고 쿨한 태도를 보여준다. 동시에 북미 시장에 진출한 블랙핑크의 상승 욕망을 숨기지 않는다. 전작 ‘킬 디스 러브’(KILL THIS LOVE)가 미국 코첼라 페스티벌과 북미 투어를 앞둔 블랙핑크의 출정식을 상징하는 곡이었다면, ‘하우 유 라이크 댓’은 이젠 정상을 향해 올라가겠다는 포부를 담은 것처럼 보인다. ‘하우 유 라이크 댓’의 뮤직비디오는 도입부에서 목과 다리가 잘렸지만 화려한 크리스털 날개를 가진 검은 비너스의 제단으로 올라가는 멤버 리사의 이미지, 계단 아래 모여 앉아있는 네 멤버들의 이미지를 짧게 비춘다. 곡의 가사에도 추락, 하늘, 날개 같은 수직적 이미지가 반복된다.
블랙핑크의 세계는 수평으로, 수직으로 확장되고 있다. 겁 없이 ‘오빠’라 외치며 오토바이를 타고 질주하던 소녀는 마지막처럼 키스해달라고 요청하는 시기를 겪은 끝에 결국 사랑을 죽이고 당당하게 이별하는 방법을 익히게 됐다. 노래 속 화자가 성장하는 것처럼 현실의 블랙핑크도 달라졌다. 기획사와 팀이란 정해진 영역 안에서 활동하던 멤버들은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를 상징하는 패션 아이콘이자 유명 셀러브러티가 됐다. 자신의 매력을 무대와 각종 행사에서 충분히 보여주면서 팬들과 유튜브, SNS로 끊임없이 소통한다. 또 가수 두아 리파, 레이디 가가와 협업하며 자신들의 음악 세계를 넓혀가고 있다.
블랙핑크를 둘러싼 환경도 여러모로 달라졌다. 이제 더 이상 대중은 블랙핑크의 신곡을 대형 기획사에서 발매된 여성 아이돌 그룹의 노래로만 소비하지 않는다. 블랙핑크가 국내 음원 차트 1위를 기록할지보다, 빌보드 핫100 차트에 몇 위까지 오르고 유튜브 조회수는 얼마나 빠르게 상승할지에 관심이 쏠린다. 2NE1과 비교되고 작곡가 테디의 영향력에 갇혀있던 시대를 넘어, 이젠 화상을 통해 미국 TV쇼에서 신곡 무대를 선보이고 뮤직비디오에서 리폼한 한복 의상을 입은 것만으로도 화제가 되는 시대에 블랙핑크는 도착했다. 그 끝이 어디로 향할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해 상승하는 블랙핑크의 현재를 목격하고 있는 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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