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쿡리뷰] ‘69세’의 시선으로 보는 낯설고 아픈 현실

기사승인 2020-08-12 06:19:01

[쿠키뉴스] 이준범 기자 = 어딜 봐도 편견이다. 영화 ‘69세’(감독 임선애)는 성폭력 피해를 입은 여성 노인이 얼마나 많은 오해와 어긋난 시선에 둘러싸여 살아가는지 묵묵히 그린다. 자신이 원하는 삶을 찾아 침착하게 장애물을 하나씩 돌파하는 성장담이기도 하다. 지독히 현실적이라 아프다.

‘69세’는 69세 심효정(예수정)이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 성폭행을 당한 이후의 이야기를 다룬다. 고민 끝에 경찰서로 향한 효정은 직접 고소장을 작성하고 형사를 만나지만, 오히려 치매 환자로 의심받는 모욕을 당한다. 법원은 피해자와 정반대의 진술을 한 피의자 29세 이중호(김준경)에게 쉽게 구속영장을 내주지 않는다. 그 과정에서 효정은 자신을 돕던 동거인 남동인(기주봉)의 집에서 나와 자신만의 방법으로 사건을 해결하기 시작한다.

‘69세’는 제목이 암시하듯 철저히 69세 효정의 시선에서 바라본 세상을 그린다. 다림질을 잘못해 옷을 버리고 가위에 손을 베는 등 효정의 사소한 실수가 영화 전반에 이어진다. 잘못된 기억을 뒤늦게 깨닫기도 한다. 영화는 몸과 정신이 온전치 못한 효정을 상황을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거리를 두고 노인의 삶을 연민하는 대신, 가까이에서 효정의 삶을 이해하고 섬세하게 더듬다. 노인의 삶을 가까이에서 경험하거나 상상해보지 못했다면, 신선한 체험 영화처럼 느껴질 수 있다.

영화는 효정의 삶을 전시하는 걸 끝까지 경계한다. 대신 “늙은이라고 함부로 말하지 마세요”라고 읊조리는 그의 주체적인 삶과 선택, 방향을 조용히 응원한다. 조력자도 없이 온갖 핸디캡을 극복하며 혼자 자신의 사건을 하나씩 풀어가는 효정의 모습을 언뜻 진지한 탐정처럼 그리기도 한다. 영화의 결말 역시 효정이 직접 선택한 결말을 그대로 옮긴 것처럼 느껴진다. 느리더라도 방향이 명확한 효정의 발걸음은 어떤 극적인 상황이나 대사보다 큰 울림을 남긴다.

평범한 노인이 아닌 효정을 온전히 연기한 배우 예수정의 깊은 눈빛이 돋보인다. 효정의 시선으로 새로운 세상을 볼 수 있었다면, 예수정의 공이 크다. 기주봉, 김태훈 등 배우들의 안정적인 연기가 극의 생기를 불어넣는다. 선악을 오가는 연기를 선보인 신인 배우 김준경의 발견도 기억할 만하다. 오는 20일 개봉. 15세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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