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대한의사협회는 지난 1일 ▲의대 정원확대 ▲공공의대 설립 ▲한방첩약 급여화 ▲비대면진료 육성 등 ‘의료 4대악 정책’의 즉각 철폐를 포함한 대정부 요구사항을 발표하고 정부에 대화에 나설 것을 촉구하면서 12일 정오까지 의협의 요구가 수용되지 않으면 총파업을 단행하겠다고 예고했다.
의협은 ‘제1차전국의사총파업’ 당일인 14일 ‘4대악 의료정책 저지를 위한 전국의사 총파업 궐기대회’를 서울 여의대로를 비롯해 부산, 대전 등 5개 권역에서 진행했다. 이날 오후 1시께 전공의와 의대생들이 집회 현장 자리를 채우기 시작했다.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19(코로나19) 확산을 방지하고자 문진표를 작성하고, 얼굴인식 체온측정기를 통해 발열 검사를 진행했다. 궐기대회 시작이 두 시간 남짓 남았지만, 많은 의사, 의대생 등이 여의도공원을 가득 메웠다. 집회 참가자들은 애초 비가 내릴 것이라는 전망으로 우산을 챙겼지만, 햇빛을 가리는 용도로 사용하기도 했다. 최대집 의협 회장은 이날 대회사를 통해 궐기대회를 하게 된 계기를 설명했다. 최 회장은 “의사를 진료실에서, 연구실에서, 강의실에서 거리로, 광장으로 내쫓고 집단행동을 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 장본인은 정부”라며 “정부는 앞에서는 ‘덕분에’라며 고마워하는 척 하고 뒤에서는 ‘4대악 의료정책’을 기습적으로 쏟아내고 어떠한 논의도, 협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질주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오늘 전국의사총파업의 최종적인 책임자는 대한의사협회장인 저 최대집”이라며 “모든 의사 회원이 어떠한 불이익도 받지 않고 전문가로서 정당한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철호 의협 대의원회 의장도 정부를 규탄했다. 이 의장은 “최일선에서 진료를 담당하는 전문가인 의사보다 의료 문제를 누가 잘 알겠냐”며 “단 한마디 상의도 없이 의대 정원을 함부로 늘리고 공공의대를 붕어빵 찍듯이 무조건 설립하는 등 한심한 정책을 밀어붙이는 것이 정상적인 나라에서 일어날 일이냐”고 비판했다.
이어 “정부의 잘못된 정책을 전면 철회하고 우리들의 정당한 요구사항을 충분히 보장받기 전까지는 물러나선 안된다”면서 “정부는 논의되지도 않은 졸속 정책임을 시인하고 당장 중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7일 같은 장소에서 ‘2020 젊은의사 단체행동’이라는 집회를 열었던 박지현 대한전공의협의회 회장도 거들었다. 박 회장은 “(논리적 반박이 아닌 저열한 프레임을 씌워 언론플레이를 하며 우리를 공격하려는 정부의 간계를 보며 우리가 더 하나가 돼야 함을 느낀다”며 “교과서 사는 데 십 원 한 푼 보태준 적 없는 정부가 이제 의사를 ‘공공재’라 부른다. 의사를 맨홀 뚜껑 정도의 소모품과 동일시 하는 정부의 태도를 보고 의료계를 망쳐놓는 것이 시작이라 확신한다. 어떤 분야든 손만 대면 엉망진창을 만들어 놓는 정부에게 세계최고수준의 대한민국 의료만큼은 제발 건드지리 말라고 명령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예비 의사들인 의대생단체인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도 정부의 의대 정원확대 정책에 대해 의사 국가시험 거부·동맹 휴학 등으로 강경하게 대처하겠다고 밝혔다. 조승현 의대협 회장은 “정부가 의료계를 절벽까지 몰아붙여 의대생까지 걱리로 밀려나오게 됐다”며 “당정이 현실을 직시하지 않고 재논의에 대한 입장표명이 없다면 무기한 수업·실습 거부와 동맹휴학을 불사하겠다. 오늘부로 공식적으로 의사 국가시험 거부에 관한 논의도 진행한다”고 경고했다. 박인숙 울산의대 의학과 명예교수(전 자유한국당 의원)도 발언대에 동참했다. 박 교수는 “의대 신설은 태양광이 아니다. 아무 데나 내다 깔면 안 된다”며 “공공의대 신설과 공공의대 신설은 무식한 정부와 정치인들의 합작품”이라며 “이 나쁜 정책을 반드시 막아야 한다. 여러분이 이 정책을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10년간의 의무복무 내용을 담은 지역의사제에 대해서 박 교수는 “한 지역에 10년을 묶어두고 거기를 떠난다면 의사 면허를 뺏는다고 하는데 여기가 북한이냐”며 “진정으로 지역 의료격차를 해소하고 싶으면 지역에 인력·장비·시설 등을 팍팍 지원해주면 된다”고 밝혔다. 최대집 의협 회장은 궐기대회의 마지막에 크레인을 타고 다시 등장했다. 최 회장은 “오늘 우리의 총파업 투쟁 계획이 알려지자 각 지자체에서 ‘업무개시 명령을 내리겠다’며 이를 어기면 ‘업무정지 처분을 내리고, 형사고발을 하겠다’는 등 조폭식 협박을 자행한 바 있다”며 “만약 단 하나의 의료기관이라도 업무정지 처분을 당한다면 13만 회원들의 의사면허증을 모두 모아 청와대 앞에서 불태우고, 우리 모두의 업무를 스스로 정지할 것”이라고 강하게 말했다.
아울러 “우리의 자유를 억압하는 어떠한 부당한 탄압에도 피와 죽음으로 맞서 저항해야 한다”면서 “오늘 총파업은 하루에 그치지만 이후 우리가 수용할 수 있는 답변을 정부가 내놓지 않는다면 이번 달 26, 27, 28일 3일간에 걸쳐 제2차 전국의사총파업을 단행할 것이다. 이를 정치적 탄압으로 맞선다면 무기한 총파업에 나설 것이다. 의협을 구심점으로 하나가 돼 국민건강과 한국의료의 미래를 위한 투쟁에 끝까지 동참해달라”고 호소했다.
궐기대회를 마친 의사회원들은 더불어민주당 당사까지 행진을 벌였다. 최 회장은 더불어민주당 당사 앞에서 “이번 파업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 될 것”이라며 “26일부터 28일까지 벌어질 제2차전국의사총파업은 교수, 봉직의, 병원장 등과 함께 하겠다. 이제 선배들이 앞장 설 시기다. 당정은 대한민국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무엇을 했는가, 코로나19로부터 국민을 지키기 위해 중국발 입국금지를 7번 외치고 외쳤다. 우리가 환자를 볼모로 거리에 나왔다고 뻔뻔하게 말하지 말라. 의료계의 투쟁을 만만히 보지 마라. 더욱 더 가열찬 투쟁으로 우리의 요구를 관철시키겠다”고 밝혔다.
이날 서울 여의대로에서 열린 궐기대회에는 2만명이 넘는 인원이 참석했다. 집회장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여의도 공원 등에서 모여 앉아 궐기대회를 응원하는 이들도 쉽게 볼 수 있었다. 서울 여의대로를 비롯해 ▲부산시청 ▲대구 엑스코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 ▲대전역 광장 등에서도 집회가 진행됐다. 의협은 이날 궐기대회에 2만8000명 이상이 참석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