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구현화 기자 = LG유플러스에 이어 KT도 글로벌 콘텐츠 업체 넷플릭스와 손을 잡았다. SK텔레콤만이 지상파 중심의 '웨이브'를 고수하고, 망 사용료를 두고 SK브로드밴드를 통한 넷플릭스와의 소송도 지속하며 대립각을 유지하고 있는 모습이다.
KT는 지난 3일부터 IPTV 올레tv에서 넷플릭스 서비스를 제공한다. 기존에 LG유플러스에서만 제공돼왔던 넷플릭스와의 직접 연결이 가능해져 TV로 넷플릭스를 시청할 수 있다. 여기에 별도 신용카드를 등록하지 않아도 KT 통신료에 넷플릭스 구독료를 함께 낼 수 있어 편리해진다.
이에 따라 통신3사 중 2사가 넷플릭스와 협력하는 가운데 SK텔레콤만이 글로벌 사업자에 대항하는 '외로운 싸움'을 하게 됐다.
◇ KT의 입장 전환, 왜? '유료방송 1위'의 수성 위함
그간 KT는 넷플릭스와 SK브로드밴드와의 갈등이 커지면서 넷플릭스와의 제휴설이 돌 때마다 "검토 중"이라는 입장을 표명해왔다. 국내 통신사에 국내 인터넷기업과 비슷한 수준의 망 사용료를 내지 않고 있는 넷플릭스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면서 KT는 유보적인 입장을 취해왔다.
그러다 결국 넷플릭스와의 협력을 전격 결정한 데에는 소비자 편의성 증진과 함께 유료방송 시장에서 차지하는 '1위' 타이틀을 유지하기 위함이었다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LG유플러스가 넷플릭스를 등에 업고 영향력을 키우고, SK텔레콤이 지상파와 합한 자사 OTT인 웨이브를 기반으로 성장세를 키워가는 데 따라 KT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함으로 보인다.
KT는 자체 OTT인 '시즌(seezn)'을 내놓은 바 있지만, 아직 넷플릭스만큼의 화제성을 보여주기에는 아직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자금 투자도 비교가 안 되는 수준이다. 이에 따라 일단 LG유플러스의 공세에 방어하고, 자체 OTT를 키워가고 있는 SK텔레콤과의 차별화를 위해 시즌은 좀 더 긴 호흡으로 가져가겠다는 '투트랙' 전략으로 해석된다.
실제로 LG유플러스는 넷플릭스와 손을 잡고 난 뒤 가입자 수가 폭증했다. 2018년 하반기 387만명(11.93%)에서 지난해 하반기에는 436명(12.99%)로 늘었다. 이와 같은 LG유플러스의 성장세를 저지하고, SK텔레콤과의 차별화를 꾀하려는 선택인 것이다. 국내 최대 유료방송 가입자(730만명)을 유지하려면 타사로 빠지는 고객 이탈을 막고, 자체 콘텐츠도 더 강화해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새로 선임된 구현모 사장으로서는 임기 시작 후 빠른 시일 내 성과를 보여주어야 하기 때문에 자체 콘텐츠 성장보다 넷플릭스와의 제휴라는 '쉬운 길'을 택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로 넷플릭스의 가입자 수는 지난 3월 기준 약 272만명 규모로 지난 2년간 10배나 급증했다. 네 명까지 계정이용이 가능하기 때문에 실제 이용자수는 500만~600만명에 이를 거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KT 관계자는 "600만명이 보는 넷플릭스 콘텐츠와의 제휴는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라며 "OTT 이용자의 80%가 넷플릭스를 보는 상황에서 자사 고객이 넷플릭스를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게 해주는 것도 플랫폼 사용자의 의무"라고 설명했다.
KT의 입장 전환에 따라 SK텔레콤은 통신3사 중 넷플릭스와의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유일한 통신사가 됐다. 웨이브는 지상파 중심의 푹(POOQ)과 자사의 옥수수(OKSUSU)를 통합한 웨이브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박정호 사장은 여러 공식행사에서 웨이브를 '초협력'의 사례로 언급하며 토종 OTT의 성장 가능성에 대해 매우 강조한 바 있다.
SK텔레콤은 웨이브의 경쟁력을 더 높여나간다는 입장이다. 웨이브는 드라마, 예능에 이어 'SF8'로 영화까지 진출하는 등 적극적인 투자로 자체 콘텐츠 확보에 나서고 있다. 이미 넷플릭스는 이미 3년간 국내 자체 제작 콘텐츠에만 1500억원을 투자할 만큼 '큰손'으로 군림하고 있다. 웨이브도 3년간 자체 콘텐츠에 2900억원을 투자한다고 밝혔다. 다만, 콘텐츠 투자 경험이 적어 흥행성 여부를 쉽게 판단하기 어렵기 때문에 쉽지 않을 거라는 지적도 나온다.
SK 관계사와 넷플릭스와의 망 사용료 갈등은 지속되고 있다. SK브로드밴드와 넷플릭스 간 소송전은 아직 진행 중이다. SK브로드밴드가 망 사용료 갈등 해결을 위해 방송통신위원회에 진정했으나, 넷플릭스가 이에 대항해 법원에 채무(망 사용료 의무)가 없음을 입증하는 '채무부존재 소'를 제기한 상태다. 이와 함께 SK브로드밴드는 넷플릭스를 대신할 자체 영화 콘텐츠 플랫폼인 '오션(OCEAN)'을 출시하기도 했다.
다른 업계 관계자는 "SK의 경우 넷플릭스와의 소송을 이어가면서도 글로벌 1위 사업자인 넷플릭스와의 협상은 열려 있다고 줄곧 말해왔다"며 "다만 소송전이 지속되면서 넷플릭스와 손을 잡기 멋쩍어진 부분이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 지상파의 '넷플릭스 때리기'...망 사용료 문제도 남아 있어
국내 콘텐츠 사업자들은 KT의 넷플릭스 제휴에 반발하고 있다. 지상파 중심의 한국방송협회는 KT와 넷플릭스와의 제휴가 공식화된 지난 13일 성명을 내고 "유료방송 1위 사업자 KT와 넷플릭스의 제휴로 국내 미디어 생태계가 붕괴될 위기에 처했다"고 비판했다. 이 같은 협회의 주장은 그동안 넷플릭스가 국내 업체에 타격을 준 데 이어 영향력을 더 확대하게 됐다는 위기감이 작용한 것이다.
이들은 "국내 미디어산업계의 지원을 받으며 성장해 온 KT가 해외 사업자에게 이토록 손쉽게 국내 시장 석권의 길을 열어 준 것은 매우 충격적이고 유감스럽다"고 강조했다. 특히 협회는 넷플릭스가 3위 사업자 LG유플러스와의 제휴를 계기로 국내 최대 OTT로 성장했다며, KT마저 국내 시장 석권의 길을 열어 준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수수료 문제도 지적했다. 협회는 "(넷플릭스와의) 수수료도 국내 사업자로부터 받는 수수료의 절반인 것은 국내 사업자들에 대한 역차별"이라며 "국가 정보통신망을 해외 OTT 사업자에게 넘긴 것에 다름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KT에 "탐욕을 버리고, 미디어 생태계 파괴를 가속화하는 넷플릭스와의 제휴를 철회하라"고 일침했다.
이 같은 방송협회의 입장은 SK텔레콤의 주장 기조와 맞닿아 있다. SK텔레콤의 '웨이브'는 지상파 3사 중심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LG유플러스에 이어 KT까지 해외 콘텐츠 플랫폼을 열어줘 해외플랫폼에 대한 종속성이 더 높아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다만 이에 대해 업계에서는 '이해관계의 충돌'로 보는 모양새다. 한 업계 관계자는 "넷플릭스를 앞세워서 국내 콘텐츠 업체들이 넷플릭스를 방패삼아 콘텐츠 배분과 관련한 이해관계를 보이는 듯하다"며 "콘텐츠 계약 자체는 넷플릭스에 유리하게 계약을 했을지 몰라도, 지상파 재전송료의 경우 가입자수에 따라 일괄 정산하고 있지만 이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망 이용대가 논란도 여전할 것으로 전망된다. 넷플릭스는 LG유플러스와 캐시 서버 설치를 통해 우회적으로 국내에 들어오는 방식으로 망 이용대가를 면해 왔다. 이 같은 방식이 국내 인터넷기업이나 국내 OTT 사업자가 내는 어마어마한 망 이용대가와 차이가 나 국내 기업을 차별한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다만 KT는 넷플릭스 자체 회원이 IPTV로 접속할 경우 해외 망을 통해 넷플릭스 미국 서버에 직접 접속하는 방식으로 서비스를 제공하기로 했다. 캐시서버 역할인 오픈커넥트 얼라이언스(OCA) 방식은 국내 망에 설치하지 않는다. 이에 따라 망 이용대가를 내지 않고 무단으로 사용한다는 논란은 비켜갔다.
이는 향후 망 이용대가에 대한 정부의 정확한 지침이 나온 경우 적용하기 위함이다. 지침이란 최근 국회를 통과한 이른바 '넷플릭스법', 즉 개정 전기통신사업법 시행령 등이다. 넷플릭스는 자사가 캐시서버 비용을 부담하겠다고 하고 있지만, 통신사는 캐시서버 비용을 받으면 망 이용대가가 무마되는 만큼 이를 받지 않고 제대로 된 망 이용료를 내라고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결국 KT도 망 이용료를 완전히 해결하지 못하고 넷플릭스와 손을 잡음으로써 비판은 가속화될 수 있다. 네이버나 카카오 등 국내 인터넷기업들이 통신사에 내고 있는 한 해 수천억 규모의 망 이용대가에 비해 넷플릭스나 유튜브 등 해외 기업들이 내고 있는 망 비용은 미미하기 때문이다.
또다른 업계 관계자는 "KT가 넷플릭스와 손을 잡으면서도 망 이용대가 문제는 열어두는 방식으로 현명한 전략을 취했지만, 향후 망 이용대가 문제가 구체적으로 불거지면 협력에 있어 문제가 될 수 있다"면서 "또 넷플릭스와 계약한 LG유플러스는 캐시 서버를 두고 트래픽을 소화하고 있지만, 이번 KT의 계약에서는 그런 장치마저도 두지 않아 향후 트래픽 문제가 불거질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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