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이준범 기자 = “SNS에 뭔가를 올리는 게 되게 조심스러워요. 혹시 제가 잘못 표현해서 누군가 상처받지 않을까 싶어서요.”
최근 삼청로 한 카페에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김대명은 질문을 메모하며 진지하게 답변을 이어갔다. 조심스러운 건 SNS 만이 아니었다. 작품에 출연할지 고민하는 순간부터 현장에서 촬영에 임하는 순간, 자신의 연기를 평가하는 순간 모두 신중했다. 조심스럽고 신중한 모습이 쌓여 단단하게 느껴졌다.
영화 ‘돌멩이’(감독 김정식)에서 김대명이 맡은 역할은 ‘8세의 지능을 가진 30대 청년’ 석구다. 어느 배우에겐 자신의 연기력을 마음껏 뽐내고 증명 받을 수 있는 기회로 느껴질 역할이다. 김대명의 생각은 달랐다. 스스로 몰랐던 다른 면을 발견하는 것, 그리고 함께 하는 감독에 대한 믿음. 자신의 연기력에 대한 믿음이나 자신감은 출연 계기에 없었다.
“‘돌멩이’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내가 잘 해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석구 캐릭터를 발바닥이 땅에 붙은 진짜인 모습으로 잘 전달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많이 했어요. 김의성, 송윤아 선배님들이 출연한다는 얘기를 듣고 감독님을 만나 뵀어요. 제가 감독님에게 확실히 의지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부족한 모습도 드러내면서 달리면 되겠다 싶더라고요. 어떻게 보면 석구는 제 바람을 담은 캐릭터예요. 누군가를 선입견 없이 보고, 친구면 다 좋아하죠. 나이가 들면서 노력이 필요하고 쉽지 않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돌멩이’의 석구는 대사가 많지 않다. 오해로 인해 재판까지 간 위기의 상황에서도 석구는 자신이 겪은 일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해 답답함을 자아낸다. 대부분 장면에서 김대명은 몸짓과 표정, 느낌만으로 석구의 감정을 표현해야 했다. 배우 자신이 겪은 8세 때의 기억을 떠올리는 것이 석구가 되는 과정의 시작이었다.
“제 여덟 살 때 모습을 많이 떠올렸어요. 그때는 성장하는 과정이었고, 동작과 행동을 정확하게 표현하지 못할 때잖아요. 제가 당시에 어떻게 표현하려고 했고, 어떻게 말하고, 어떤 행복감을 느끼고, 혼자 있을 때 어떤 외로움을 느꼈는지를 생각했어요. 나이가 들수록 표현을 점점 숨기게 되더라고요. 슬퍼도 안 슬픈 척하고, 기뻐도 안 기쁜 척하죠. 여덟 살 때의 저는 밝고 투정도 많이 내는 아이였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모습에 가까워지려고 노력했어요.”
‘돌멩이’ 시사회 직후 김대명을 향한 호평이 쏟아졌다. 석구를 연기하는 김대명 대신, 마음껏 뛰어 놀고 감정을 표현하는 석구가 보였다. 하지만 김대명에게 스스로의 연기에 만족하는 건 낯선 일이다. 만족하게 될까봐 경계하기까지 한다.
“항상 걱정을 해요. ‘이 정도면 됐다’는 생각은 앞으로도 못할 것 같아요. 제가 관객들의 마음에 와 닿게 연기했을까 하는 건 작품이 끝난 후에도 계속 물음표예요. 전 칭찬에 익숙해지지 않으려고 해요. 절대 제 자신이 잘하고 있다거나 이번에 좀 괜찮네 하고 생각하지 않으려 하죠. 그게 오히려 제 연기에 마이너스라고 생각하거든요. 이 연기를 잘 못하면 나한테 어떤 문제가 생기고 나 때문에 모든 사람이 힘들어지게 하는 상황을 생각하는 게 더 도움이 되더라고요. 실제로 만족한 적이 없기도 해요.”
김대명은 2년 전 ‘돌멩이’ 촬영 이후 달라진 점을 담담하게 설명했다. 과거엔 스스로의 주장을 관철시키려고 고집을 부리기도 했다. 하지만 석구를 연기하며 달라졌다. 이젠 서로 다른 각자의 답이 있을 수 있다는 다름을 인정하는 방식으로 타인을 생각한다고 했다.
“‘돌멩이’를 찍은 후에 생각이 좀 바뀐 것 같아요. 그전에는 저를 중심으로 생각했어요. 내가 생각하는 게 맞고 저건 아니라고 생각했죠. 지금은 다름을 인정하는 자세로 들으려고 많이 노력해요. 아무리 내가 맞다고 생각해도 저 사람이 맞을 수도 있고, 사람은 다른 거지 틀린 게 아니란 식으로 접근하려고 노력해요. 예전엔 제 개인의 연기적 성취나 목적을 위해서 고집을 부릴 때도 있었어요. 하지만 영화는 공동 작업이잖아요. 저와 함께 작업하는 사람들이 이 시간만큼은 행복하게 머물고, 나중에 기억해도 그 작품 재밌게 찍었다고 생각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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