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이준범 기자 = 2년 간 준비하던 장편 영화가 무산됐다. 다음날 찾아온 공허함을 메우기 위해 무작정 글을 썼다. 완성 초고엔 영채와 아영이 두 여성의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왜 두 인물이 나왔는지, 왜 이런 얘기를 쓰게 됐는지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그 답을 찾기 위해 3~4년의 시간이 걸렸다. 그 결과 영화 ‘아이’가 탄생했다.
김현탁 감독은 최근 쿠키뉴스와 진행한 화상 인터뷰에서 자신이 연출한 ‘아이’를 질문에 답을 찾는 과정에서 완성된 영화라고 소개했다. 영화의 주제 의식인 대안가족 소재도 처음부터 생각한 건 아니었다. 지금 시대의 가족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한 결과다.
“처음에는 제가 왜 홀로 아이를 키우는 영채가 등장시켰는지 잘 몰랐어요. 아이를 돌보는 베이비시터 아영과 그의 사건에만 집중했죠. 쓰다 보니 여자 주인공 두 명으로 영화를 찍냐는 얘기도 들렸고, 선입견과 편견에 대한 생각이 많아졌어요. ‘이 시대의 가족이란 뭘까’ 고민하고 타인의 인생을 책임지려는 이야기를 하려다 보니 이야기가 이렇게 발전한 것 같아요. 완전히 답을 내렸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아직도 제가 어떤 영화를 찍고 써야 하는지 스스로에게 묻고 있어요. 영화를 하면서 가족과 공동체의 의미에 대해 계속 찾아가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이’는 배우의 비중이 큰 영화다. 영화가 마련한 공간에 놓인 배우들은 실제처럼 살아 숨 쉬는 연기를 펼치며 빈 곳을 채워간다. 김 감독은 배우 김향기와 류현경, 염혜란 모두 캐릭터가 확실히 잡혀있어서 서로 맞추고 이해하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았다고 했다.
“리허설을 하면서 배우들의 감정이 올라오지 않는 장면이 있었어요. 배우들이 왜 울지 않았을까 고민해보니까 제가 눈물이 나지 않게 시나리오를 썼더라고요. 촬영을 시작하기 전에 배우들의 느낌을 반영하는 식으로 대본 수정 작업을 했죠. 예를 들면 현숙(박옥출)과 아영(김향기)이 대치하는 장면에 원래 아영이의 대사가 있었어요. ‘향기님’이 그 장면에서 대사보다는 아무 말도 안하는 게 나을 것 같다고 말씀해주셨어요. 개인적으로도 아영의 눈빛과 혁이의 울음소리를 더 담아내고 싶었고요. 촬영 거듭할수록 연출자 입장에서 배우에게 어떤 면들을 놓칠 때가 있었어요. 향기님은 자기중심을 잘 잡고 있는 사람이어서 제가 믿고 연출할 수 있었습니다.”
‘아이’는 아이를 통해 어른이 성장하는 보통의 상업영화와는 조금 다른 길을 간다. 김 감독 역시 “전형성을 따르지 않으면서 어떻게 영화를 흥미롭게 사람들에게 보여줄지가 엄청난 고민이었다”고 했다. 가족의 의미를 바탕으로 두 주인공의 관계성, 서로가 가진 결핍을 채워가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쌓아갔다. 영화를 보다보면 감정이 다루는 장면들에서 인물들의 뒷모습을 잡는 연출이 눈에 띈다.
“최대한 인물의 감정을 잘 따라가려는 의도였어요. 일부러 롱테이크 기법을 쓴 것보다는 인물들의 동선과 행동에 집중하려고 했습니다. 그 다음 감정이 충분히 표현되는 장면에선 인물의 정서를 담기 위해 배우의 얼굴보다 뒷모습을 잡았어요. 걸어 다니는 장면도 뒷모습이 많아요. 영화 속 인물들이 감정적으로 힘들다고 멈춰서 있는 인물들이 아니라, 힘들어도 앞으로 나아가는 인물이고 그걸 따라가고 싶어서 뒷모습을 많이 찍었어요. 이것들은 전형적이지 않을 수 있는 영화를 관객들이 어떻게 바라보게 할 수 있을까에 대한 저만의 답이었어요. 인물들이 느끼는 감정을 강요하는 것보다 관객들과 같이 호흡하고 느끼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그렇게 찍는다고 전해지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배우들이 카메라를 견딜 수 있게 하는 힘을 갖고 있어서 가능했죠.”
‘아이’는 김현탁 감독의 첫 장편 영화다. 자신이 쓴 이야기를 사람들과 함께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내놓는 과정을 “굉장히 색다른 일”이라고 느꼈다. 영화감독은 “하고 싶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걸 느끼기도 했다. 다음 이야기도 중심을 잘 지키며 쓰겠다는 다짐과 함께 ‘아이’가 어떤 영화인지 소개했다.
“제 주변도 그렇지만 요즘 코로나19 때문에 더 외롭고 힘든 분들이 많을 것 같아요. 점점 더 고립되고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기 힘들어지는 시간이 아닌가 싶어요. 용기내서 다른 사람의 곁에 있어주고 손을 내밀어줄 수 있는 영화가 되길 바라고 있어요. 인물들이 사는 모습을 힘들게 보여주는 영화가 아니거든요. 자신의 삶을 반추하게 해주는 영화에 가깝다고 생각해요. 관객들이 보고나서 누군가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줄 수 있는 영화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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