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이준범 기자 = “‘승리호’요? 제 네 번째 장편영화죠.”
특유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이어폰을 타고 들려왔다. 영화 ‘아가씨’(감독 박찬욱)를 자신의 첫 번째 장편영화, 영화 ‘1987’(감독 장준환)을 두 번째 장편영화라고 설명하는 배우 김태리식 화법이다. 지난 5일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영화 ‘승리호’는 어김없이 김태리의 ‘네 번째 장편영화’로 호명됐다.
최근 화상 인터뷰로 만난 김태리는 자신이 ‘승리호’에서 연기한 장선장을 처음 시나리오로 봤을 당시 이야기를 꺼냈다. 장선장이 자신의 얼굴로 그려지지 않는다는 그에게 조성희 감독은 ‘선장’의 전형성을 벗어나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다. 모두를 통솔하는 카리스마를 보여주는 선장 대신, 김태리 만의 다른 선장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다는 감독을 믿고 출연을 결정했다.
“장 선장을 연기하려고 겪어보니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복잡한 인물이더라고요. 그 복잡한 인물을 어떻게 보여줄 수 있을까 고민하다보니까 조금 묵직한 인물로 나왔어요. 전 장 선장이 자기 신념이 있고 쉽게 휘둘리지 않는 인물이라고 생각했어요. 나무가 아닌 숲을 보는 사람이기 때문에 선장으로 있는 것 같았거든요. 사실 장선장은 완전 엘리트예요. 가족 같은 선내에서 함께 호흡하며 살아가는 한 인간을 어떻게 하면 잘 보여줄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어요. 막상 영화를 보면서 장 선장이 더 막나갔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들었어요. 만화 같은 표현이 될 수도 있겠지만 활기찬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승리호’는 공개 당시부터 완성도 높은 CG로 화제를 모았다. 이제 한국에서도 이렇게 실감나는 우주 영화를 찍을 수 있다는 희망을 줬다. 김태리는 세트와 크로마키 촬영을 병행하며 찍었다고 했다. 그에게도, 모두에게도 첫 도전이었기에 함께 만들어갈 수 있었다.
“네 명의 선원들이 활동을 많이 하는 선내는 전부 세트로 지어졌어요. 실제로 작동하는 것처럼 버튼도 눌리고 많은 게 제대로 되어있는 곳이어서 도움을 많이 받았죠. 하지만 크로마키 촬영이 있었어요. 안 보이는 적을 향해 총을 쏴야했고 그런 장면들은 어려운 부분들이 있었어요. 하지만 저뿐 아니라 다들 처음 하는 연기고 도전이었기 때문에 위안을 느끼면서 으쌰으쌰 만들어갔습니다. 뻔뻔하게 했죠.”
“영화 초반에 제가 ‘비켜라, 무능한 것들아. 저건 내 거다’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어요. 그 장면은 선내에서 대사만 뱉었지 거의 CG로 이뤄진 장면이었죠. 저도 영화로 처음 본 거예요. 너무 좋더라고요.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훨씬 좋았어요. 이제 (한국에서도) 진짜 못할 이야기가 없겠다, 만들 수 없는 이야기가 없겠다는 감동을 느꼈어요.”
누구보다 당당하게 인터뷰를 이어가던 김태리는 장선장에게 닮고 싶은 점으로 ‘당당함’을 꼽았다. 스스로도 “무슨 소리야? 하실 것 같긴 하지만”이라며 “겉으로는 당당하지만, 오늘 인터뷰한 것도 집에 가서 ‘아이고, 이런 얘기를 왜 해갖고’ 하면서 입을 치고 있을 텐데”라며 특유의 솔직한 입담으로 말을 이어갔다. 그는 배우로서의 단점으로 “멘탈이 약하다”라고 말하지만, ‘승리호’를 찍으며 많이 달라졌다고 했다.
“‘승리호’를 큰 부담감과 긴장 속에서 찍었어요. 영화를 다 찍고 나서 ‘주변을 잘 돌아보자’,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들을 생각하자’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렇게 눈을 뜨니까 정말 나를 사랑해주고 응원해주고 아껴주시는 분들이 하시는 말씀들이 손끝으로 다 전달되더라고요. 현장에서 마음이 풍요로워졌다고 할까요. 부담감이나 긴장에서 많이 벗어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마음이 예전보다 편해졌어요. 제가 성장해서 이뤄진 게 아니라, 지금이 그런 풍요로운 때인 것 같아요. 언제 또 이런 시기가 올지 모르죠.”
김태리는 인터뷰에서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다. 함께 촬영하는 동료에 대한 믿음과 인간관계에 대한 고민, 좋은 사람들에 대한 영향력이 그의 말 속에 스며있었다. 환하게 웃으며 “인복이 매우 좋습니다. 복이 터졌어요. 좋은 사람을 만나서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아도 좋은 환경에서 연기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라고 말할 정도다. 장선장이 강한 신념을 갖고 있듯, 배우 김태리가 갖고 있는 신념이 무엇인지도 들려줬다.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내 주변 사람을 사랑했으면 좋겠고, 내가 모르는 사람에게도 사랑을 나눠줄 수 있는 그런 인간이고 싶습니다. 배우 김태리로서도, 사람 김태리로서도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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