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형 A. 반응
지난해 2월 공개된 그룹 방탄소년단의 ‘온’(On) 뮤직비디오. 전쟁이 벌어진 듯 폐허가 된 초원 위로 멤버 진이 등장하자, 뮤직비디오를 보던 멤버들이 저마다 감탄한다. “멋있다!” “영화 같은데?” “미드(미국 드라마) 같다.” 방탄소년단이 자신들의 뮤직비디오를 보며 소회를 나누는 이 영상은 지난해 3월 공개돼 1000만 뷰 넘는 조회수를 기록했다. 이처럼 콘텐츠에 반응하는 모습을 담은 리액션 비디오는 2010년대부터 온라인에 급속도로 확산하더니, K팝과 결합하며 팬덤의 놀이문화로 자리매김했다. 팬들은 언어로 표현하기 힘든 감정을 표정과 감탄으로 공유하며 결집한다. 이 과정에서 오리지널 콘텐츠는 자연스레 입소문을 타 인기를 얻는다. K팝이 세계 시장에서 사랑받으면서 뮤직비디오 리액션 비디오를 전문적으로 생산하는 채널, 안무가와 클래식 전공자 등 업계 종사자의 반응을 담아내는 채널도 속속 생겨났다. 기획사는 소속 가수가 자신의 뮤직비디오에 직접 반응하는 영상을 제작해 신곡을 홍보하고 있다. 한 가요기획사 관계자는 “리액션 비디오는 이제 마케팅 수단이 됐다”며 “해외 K팝 팬들에게 이름을 알릴 수 있는 통로 중 하나”라고 말했다.
주목! 이 콘텐츠 ☞ https://youtu.be/KFgBCh9D4d0 감탄과 환호 일색인 리액션 비디오가 식상하게 느껴진다면, 유튜브 크리에이터 박막례 할머니의 ‘2PM 우리 집 뮤비 보고 누구네 집 갈지 정하기’ 영상을 보자. 박막례 할머니가 말하는 각 멤버의 집에 가고 싶은/가기 싫은 이유를 듣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게 될 것이다.
유형 B. 모방
동영상 플랫폼 틱톡이 음악 산업에 끼친 영향은 대단하다. 재생시간이 1분미만으로 짧은 동영상을 공유하는 이 플랫폼에서 음악은 화면 못지않게 중요한 요소로 활용된다. 2019년 틱톡 ‘이-햐’ 챌린지에 삽입된 노래 ‘올드 타운 로드’(Old Town Road)는 그 해 빌보드에서 19주 연속 1위를 차지하며 반향을 일으켰다. K팝에선 지난해 초 발매된 지코의 ‘아무노래’가 댄스 챌린지 열풍을 타고 음원 차트를 장악했다. 고난도 안무를 소화해야 하는 댄스 커버와 달리, 댄스 챌린지는 따라 추기 쉬운 포인트 안무로 구성돼 접근성이 낮다. 덕분에 1020 세대 사이에선 댄스 챌린지가 ‘인싸(인사이더) 문화’로 자리 잡는 중이다. 한편 일부 틱톡 이용자는 댄스 챌린지로 유명세를 얻어 스타가 되기도 하는데, SM엔터테인먼트의 ‘핑크 블러드’ 프로젝트 주자로 낙점된 윈디파지(Windyfaj)가 대표적이다. 인도네시아 출신인 그는 지난해 틱톡에 올린 백현 ‘캔디’(Candy) 댄스 챌린지 영상으로 10만 뷰에 달하는 조회수를 달성했다. 이후 최근까지도 트와이스 ‘알코올-프리’(Alcohol-Free), 엑소 ‘파라다이스’(Paradise), NCT 드림 ‘맛’(Hot Sauce) 등의 댄스 챌린지에 참여하며 162만 명 이상의 구독자에게 호응을 얻고 있다.
주목! 이 콘텐츠 ☞ https://youtu.be/eSwEpl5Hbb8 원곡 가수 현아도 반한 영상, ‘핑크 블러드’ 프로젝트에 발탁된 또 다른 주인공 땡깡의 ‘아임 낫 쿨’(I’m Not Cool) 댄스 커버 되시겠다. 차진 동작에 접신한 것 같은 표정 연기, 치고 빠질 때를 제대로 아는 카메라 워킹 등 짧은 영상에 관전 포인트가 수두룩하다.
유형 C. 분석
K팝 콘텐츠가 품은 세계관이 방대하고 복잡해지면서, 이를 이해하고 해석하려는 팬들의 시도가 또 다른 콘텐츠의 형태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유튜브 크리에이터 김일오는 2019년 선미의 ‘누아르’(Noir) 뮤직비디오를 시작으로 70여 편에 가까운 K팝 뮤직비디오를 분석·리뷰했다. 곡 소개, 가수 인터뷰, 과거 발표곡, 오마주한 다른 콘텐츠 등을 집대성해 주요 장면마다 의미를 부여하고, 이를 연결해 서사를 완결하는 솜씨가 탁월하다. 그룹 방탄소년단이나 투모로우바이투게더처럼 팀 활동 전반에 걸쳐 세계관을 보여주는 가수가 늘면서, 분석형 재가공 콘텐츠도 덩달아 다채로워지고 있다. 팬들이 개별 곡이나 뮤직비디오를 해석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해당 가수가 공개한 여러 콘텐츠 간 유기성을 찾아내 의미를 부여해서다. SM엔터테인먼트가 올해 SMCU(SM Culture Universe)를 본격 가동한 뒤부터 이 회사 소속 가수들의 콘텐츠를 총망라해 세계관을 분석하려는 노력이 계속되는 중이다. 텍스트 기반 플랫폼을 바탕으로 한 편의 SF소설을 연상시키는 분석 글이 이어지는 가운데, 최근에는 20년차 ‘슴덕’(SM 마니아)을 자처하는 크리에이터 세세, 네네가 유튜브 채널 ‘들짐SM’에 강의에 가까운 SMCU 분석 영상을 공개해 K팝 팬들 사이에서 화제가 됐다.
주목! 이 콘텐츠 ☞ https://youngcrewzine.wordpress.com/2021/06/09/example-post-3/ ‘아이’, ‘광야’, ‘싱크’ 등 SMCU 기본 개념을 통달한 이들에게 일독을 권하는 글. 에스파 ‘넥스트 레벨’(Next Level)을 필두로, 일명 ‘SMP’(SM Music Performance)로 분류되는 음악의 전략과 메시지를 상세히 들여다볼 수 있다. 이 웹페이지에 실린 글들은 유튜브 채널 ‘들짐SM’ 운영자 세세, 네네와 음악레이블 영기획 하박국 대표가 K팝 글쓰기 워크숍을 통해 완성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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