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머리 청년은 낮에 꿈을 꿨다. 점심 조리를 마치고 여유가 생기면, ‘싸지방’(사이버 지식 정보방)에 달려가 전날 방송한 Mnet ‘쇼미더머니 777’ 영상을 보고 또 봤다. 대학에서 요리를 공부한 그는 군 복무를 하는 동안 래퍼가 되기로 결심을 굳혔다.
지난 1년 간 싱글 세 장과 EP 한 장을 내며 ‘프로 래퍼’의 꿈을 이룬 컬리넌은 자신의 열정을 불타오르게 한 무대에 도전장을 냈다. 올 가을 방송하는 ‘쇼미더머니10’에 지원해 결과 발표를 기다리고 있다. “합격하면 좋겠지만, 안 돼도 열심히 해야죠. (방송을) 준비하면서 얻는 것도 있을 테고요.” 최근 서울 합정동 푸이(phooey) 사무실에서 만난 래퍼 컬리넌이 들려준 얘기다.
컬리넌은 요즘 바쁘다. 지난달 말 ‘쇼미더머니10’ 지원 영상을 낸 데 이어 지난 14일 새 싱글 ‘메트로놈’을 냈다. 음악만으로는 벌이가 충분치 않아 일주일에 3일씩 아르바이트도 한다. 여기에 ‘메트로놈’을 믹싱한 래퍼 캐치, 프로듀서 안티소셜키드와도 각각 합작 음반을 준비 중이다.
그가 24시간을 쪼개 가며 일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컬리넌은 “남들보다 음악을 늦게 시작했다는 생각에 조급하던 때가 있었다”고 털어놨다. 신곡 ‘메트로놈’에서 그는 “내 삶의 박자는 불안정”하다며 자신에겐 메트로놈(박자를 일정하게 맞춰주는 음악도구)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나만의 속도를 지키며, 느리더라도 앞으로 가겠다. 멈추지 않겠다”는 다짐을 담은 가사다.
그는 이 곡에 래퍼 랍온어비트를 불러 들였다. 그보다 먼저 데뷔한 ‘업계 선배’다. 컬리넌은 “랩 실력이 뛰어난 분이니 ‘꿀리지 말자’는 생각으로 작업했다”며 웃었다. 자신을 “오픈 마인드”라고 표현한 그는 “담백하게 가자”는 랍온어비트의 제안에 따라 곡에서 무게감을 덜어냈다. 컬리넌은 “비워내서 생긴 멋이 있다. 평양냉면 같은 맛이 생겼다”며 만족스러워했다.
초등학생 시절 MTV 채널에서 본 미국 가수 크리스 브라운을 보고 힙합에 빠져들었다. 노래방에서 래퍼 도끼, 더콰이엇의 곡을 즐겨 불렀지만, 자신이 래퍼가 되리라곤 상상하지 못했다. 컬리넌이 마음을 바꾼 건 군대에서다. 그는 “음악을 돌파구이자 도피처로 생각했다”며 “일단 해보고 후회하자는 마인드로 도전했다”고 돌아봤다. 전역 후엔 모아둔 돈을 몽땅 털어 음악을 시작했다. 어머니가 운영하던 미용실은 불이 꺼지면 컬리넌의 음악 작업실로 변했다.
‘난 내 삶을 사랑해 / 신이 내 삶을 축복해’(I love my life / God bless my life) 컬리넌이 지난해 낸 데뷔싱글 ‘선데이모닝’(SundayMorning)은 긍정적인 분위기로 가득하다. 다른 래퍼들의 곡에 자주 등장하는 ‘독기’나 ‘집념’과는 거리가 멀다. 생계를 위해 주 6일 아르바이트를 할 때도, 친구들이 전공을 살려 취직하거나 자기 사업을 시작했을 때도 그는 주눅 들지 않았다. 그에게 음악이 재밌다는 사실만큼 중요한 건 없었다.
“가장 이상적인 모습을 100으로 따지면, 저는 지금 30 정도에 와 있는 것 같아요. 지금은 제가 구상한 밑그림을 100% 구현하지 못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제가 설계한 대로 음악을 만들고 싶은 욕심이 크죠. 그렇다고 나를 남들과 비교하지 않으려고 해요. 이젠 조급함보단 ‘내가 잘하고 있다’는 확신이 더욱 자주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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