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그대로 ‘맨땅에 헤딩’이었다. 소녀는 온라인 힙합 커뮤니티에 자신이 부른 노래를 올리며 조금씩 이름을 알렸다. 그가 새로 지은 자신의 이름은 체리콕. 2017년 싱글 ‘업’(Up)으로 데뷔해 힙합 팬들 사이에선 이미 ‘우량주’(반드시 뜰 것 같은 가수)로 꼽힌다. 2015년 낸 믹스테이프는 대형 힙합 커뮤니티에서 ‘과소평가된 믹스테이프’로 거론됐고, 스포티파이·아이튠즈 등 글로벌 음원 플랫폼도 그의 음악을 앞다퉈 추천했다.
“체리콕 같은 음악을 하고 싶어요. 어떤 장르든 제가 묻어난 음악을요.” 최근 서울 합정동 CTM 사무실에서 만난 가수 체리콕이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새 싱글 ‘러브 게임 인 서머’(love game in summer)를 낸 뒤 만난 자리였다. 체리콕은 “오랜만에 내는 싱글인데, 싱글에 실린 노래들이 모두 마음에 든다”며 유쾌하게 웃었다. “제 MBTI가 게으르기로 유명한 ‘개노답 삼형제’ 중 하나거든요. 무조건 여름엔 신곡을 내겠다고 생각했는데, 계획보다 오래 걸렸어요. 하하.”
싱글에 실린 세 곡 ‘핑퐁’(pingpOng), ‘치치’, ‘응하고 대답해줘’ 모두 체리콕이 “한 땀 한 땀 만들었다”고 표현할 만큼 정성을 들인 노래다. ‘핑퐁’은 멜로디를 수십 개나 만들었을 만큼 완성되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고, ‘응하고 대답해줘’는 테크 하우스로 장르 확장을 꾀한 노래다. ‘치치’로 말할 것 같으면, 체리콕이 프로듀서와 배꼽을 잡아가며 만든 곡이다. “음메음메” “응애응애” 등 기상천외한 노랫말 때문이다.
“‘음메음메’를 가사로 쓰는 가수가 있을까요? 힙합·댄스·알앤비·발라드 어느 장르도 불가능하다고 봅니다.(웃음) 저는 정말 좋아하는 가사예요. 함께 작업한 친구도 ‘누나. 이 노래 완전 미쳤어!’라며 즐거워하더라고요.” ‘치치’뿐만이 아니다. 체리콕은 “남들이 자주 안 쓰는 단어를 공략해 작사한다”고 했다. 연인 간 사랑을 찹쌀떡에 비유하고(‘찹쌀떡’), 연인이 원망스러울 땐 ‘마늘 너무 써’라는 가사에 씁쓸한 마음을 묻어 놓는(‘지옥가요’) 식이다.
음악적으로는 들으며 흐느적거리기 좋은 몽환적인 분위기가 특징이다. 부드러우면서도 끈적이는 목소리가 힙합·알앤비에 제격이지만, 그렇다고 한 장르만 파고들 생각은 없다. 지난해 첫 정규음반을 낸 뒤부터는 장르 스펙트럼을 넓힐 수 있겠다는 자신감도 붙었다. 체리콕은 “한 번 해본 스타일을 반복하기는 싫다. 해보지 않은 음악에 끊임없이 도전하고 싶다”면서 “그러면서도 ‘체리콕 같은 느낌’을 이어가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음악을 시작한 지 벌써 10여년. 체리콕은 “내가 내 음악에 떳떳할 수 있길 바란다”고 했다. 음악에 관해서는 자타가 공인한 완벽주의자다. “수백 번 녹음을 반복하느라 미칠 지경”에 이르기도 여러 번이었단다. 그래도 체리콕은 음악이 재밌다. 단숨에 유명해지는 길보다, 자신이 만족할 수 있는 음악을 만드는 일이 그에겐 더욱 값지다.
“최근에 재밌는 일이 있었어요. 8년 전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린 노래에 새 댓글이 달린 거예요. 오랜만에 그 노래가 생각나서 접속했는데 재생이 안 된다고, 다시 들을 방법은 없냐고 묻는 댓글이었어요. 정말 감동이었죠. 8년이나 지난 곡을 다시 찾아주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잖아요! 저는 그저 ‘멋있는 음악을 하는 뮤지션’으로 남고 싶어요. 멋있되, 어렵지 않은 음악을 하는 사람으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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