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송이 가득 탐스럽게 열리는 포도는 ‘풍요와 다산’의 이미지를 지니게 되었다. 동양에서는 도자기의 문양이나 회화의 주제로 사랑받아 왔고, 서양에서는 하나님의 축복을 표현하는 데 사용되어 왔다. 덩굴 식물이지만 포도나무는 크고 많은 잎을 지녔기 때문에, 뜨거운 한낮의 더위에 지친 나그네들에게 햇볕을 피할 수 있는 그늘과, 지친 몸을 달래줄 달콤한 맛의 포도열매를 제공한다. 이렇게 먼 길을 가는 나그네들은 포도나무 아래서 지친 몸과 마음을 편안히 쉬어 갈 수 있었다.
이렇게 현실에서 긍정적인 역할을 하는 포도나무는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라는 성경 말씀처럼 ’새로운 변화‘의 상징으로도 자리매김하여 왔다. 성경에서는 포도가 지닌 긍정적인 이미지가 새로운 변화와 희망, 축복의 매개체로 널리 사랑받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오래 전 포도가 들어온 걸로 알려져 있다. 해상 무역로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삼국시대에, 이미 포도가 도입됐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통일신라 시대의 유물에서 발견되는 포도당초문이나 그 이후, 고려시대 청자나 다른 유물에 새겨진 포도문양 등으로 미루어 볼 때, 포도는 이미 우리에게 친숙한 존재였음을 알 수 있다. 유학자 유중림이 1766년 펴낸 <증보산림경제(增補山林經濟)>와 실학자 서유구가 1806년에 저술한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에 포도에 관한 여러 기록들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조선시대에는 포도가 널리 알려져 재배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다산의 상징’이기에 또한 ‘과일의 여왕’으로도 불리는 포도에는 다양한 영양분이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다. 포도에서 유래한 이름인 중요한 영양물질인 포도당이 포도에는 15% 정도 함유되어 있고, 각종 비타민, 칼슘 등이 풍부히 들어 있다. 그래서 포도는 늦가을에서 초가을로 넘어가는 요즘 같은 환절기에 나타나기 쉬운, 피로감을 개선해주는 영양이 풍부한 맛있는 과일이다.
그냥 버려지기 쉬운 포도씨도 기름을 짜서 좋은 식재료로 이용할 수 있다. 포도씨에는 혈액을 맑게 하는 기능을 가진 카테킨(Catechin)이 들어 있다. 카테킨은 비타민E의 20배에 해당하는 항산화 작용을 지닌 물질이다. 카테킨은 활성산소의 생성을 억제해 노화를 방지하여, 건강한 젊음을 유지하게 하는 작용을 지닌다.
이렇게 포도는 피로회복과 해독 작용에 좋은 효과가 있다. 피를 맑게 하며, 열을 내리고, 이뇨작용을 돕는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포도의 송이가 달리는 작은 가지 부분에, 항암작용과 항산화 작용을 하는 물질인 레스베라트롤(Resveratrol)과 폴리페놀이 포도 열매에 비해 더 많이 함유된 것으로 보고되었다.
레스베라트롤은 식물이 자기를 보호하려고 만들어내는 일종의 방어물질이다. 우리 체내에서는 콜레스테롤을 낮추어 심장병을 예방하는 역할을 한다. 라스베라트롤의 혈관확장 협심증, 뇌졸중의 발병률을 낮추어 성인병을 예방한다. 폴리페놀(Polyphenol)은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는 물질로, 염증을 예방하고, 체내 DNA와 세포는 보호한다. 송이 가지 부위에 과육 부분보다 최고 85배까지 많이 함유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포도는 그 색에 따라 지닌 약효가 다른데, 이를 알아보면 다음과 같다. 우리가 흔히 먹는 검정색의 포도에는 인체를 구성하는 물질, 한의학적으로 표현하면 음(陰)을 보하고, 노화를 예방하여 머리카락을 검게 하는 효과가 크다. 청포도라고 불리는 녹색의 포도에는 청열해독(淸熱解毒) 작용이 강하여, 체내의 불필요한 열과 건조한 나쁜 기운들을 몰아내는 작용을 한다. 약간 검으면서도 붉은색이 감도는 포도에는 시력을 보호하는 성분이 더 많이 함유되어 있으며, 혈액순환을 촉진하여 깨끗한 혈액이 피부를 건강하고 맑게 유지하는데 도움을 준다.
늦여름을 지나 초가을로 진입하는 요즘 같은 환절기에, 흔히 경험하게 되는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주기에 포도보다 더 도움이 되는 음식은 흔하지 않을 것이란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