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이준범 기자 =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다. ‘D.P.’ 1회는 작품 소개와 함께 안준호가 어떤 인물인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회차다. 1회 첫 장면에서 입대 전 피자 배달을 하던 안준호(정해인)는 손님에게 거스름돈 500원을 주지 않았다는 오해를 겪는다. 황당해하며 가던 길을 갈 수도 있고, 억울함을 호소하며 따질 수도 있다. 안준호는 닫힌 아파트 현관문을 다시 열고 거스름돈 분명 줬다고 재차 말한다. 1회 마지막 장면에선 탈영병의 죽음 앞에서 다 끝난 일이라고 다독이는 박성우(고경표) 상병에게 폭력을 행사한다. 그건 그의 소신이다. 억울한 오해 앞에서, 사람의 죽음 앞에서 그냥 그럴 수 있는 일이라는 말에 동의하고 넘어가지 않는 소신.
배우 정해인은 자신이 연기한 안준호와 꼭 닮은 인물이다. 최근 화상 인터뷰에서 만난 정해인은 어떤 질문에도 적당히 답하는 법이 없었다. 매번 인터뷰 때마다 그랬듯 단정하게 정장을 입은 채 모든 질문에 성심성의껏 답했다. ‘D.P.’에서 맡은 역할을 소화하며 사회적인 메시지를 전하려는 욕심은 갖지 않았다. 대신 “안준호를 정말 진지하게 대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고 털어놨다.
“처음 ‘D.P.’ 미팅 자리에서 한준희 감독님과 제작진 분들에게 믿음을 느꼈어요. 꼭 현장에서 같이 작업하고 싶다는 생각이 확고해졌죠. 김보통 작가님의 원작 웹툰이 워낙 힘이 있는 이야기잖아요. 과연 글로 어떻게 풀어서 보여질지 궁금했습니다. 극 중 다양한 탈영병 이야기가 상당히 묵직하고 힘 있게 느껴졌어요. 캐릭터를 진지하게 대해야겠다는 생각이 부담으로 다가왔습니다. 가볍게 다뤄서는 안 되는 촬영들이 많았다고 생각해요. 실제로 그렇게 연기에 임했고요.”
극 중 액션 장면을 위해 촬영 3개월 전부터 복싱을 배웠다. 함께 액션 합을 맞출 배우 이준영과 복싱의 ‘복’자도 모르는 상태에서 기본기부터 배웠다. 복싱이 그렇게까지 체력적으로 힘든 운동인 줄 처음 알았다. 김보통 작가의 원작 웹툰도 읽었다. 생활관에서 일어나는 이야기가 특히 공감됐다. 첫 촬영날 리얼한 세트에 몰입해 실수도 나왔다. 자신의 계급과 이름을 대는 관등성명 장면에서 ‘이병 안준호’ 대신 ‘이병 정해인’이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참 부끄러운 순간이었어요. 안준호로서의 몰입보다 정해인으로서의 몰입이 더 컸던 것 같아요. 첫 촬영이었고 현장 세트와 선임 역할 배우 연기가 정말 리얼해서 긴장됐던 것 같아요. 저도 모르게 ‘이병 정해인’이라고 하고 말았어요.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라고 해야 할까요. 순간 그런 게 훅 발현된 것 같아요. 군 복무 당시에 누가 제 어깨를 치며 무조건 관등성명을 해야 했던 기억이 있거든요. 정말 이등병 때는 피곤했던 기억이 있어요. 온몸에 신경 곤두세워야 하고, 항상 주변을 살펴야했던 기억이에요.”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다가도 정해인은 여러 번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마지막 오열을 터뜨리는 연기에 대해 묻자, 당시를 회상하며 한참을 먹먹한 표정으로 답변을 망설였다. 어떤 연습도, 리허설도 없이 촬영한 장면이다. 스스로도 그렇게 울 줄 몰랐다. “지금 생각해도 끔찍한 기억”이라며 고통스러워했다. ‘D.P.’가 다루는 군대 문화에 대한 이야기도 꺼냈다.
“제가 군 생활을 시작한 시기가 2008년이에요. 전역을 2010년에 했고요. ‘D.P.’의 배경이 2014년이고, 2014년에 실제로 안타까운 사건 사고가 있었죠. 가혹행위가 정말 없어졌으면 좋겠어요. 요즘엔 군대가 많이 바뀌고 병영 문화가 개선됐다고 알고 있어요. 더 많이 개선돼서 국가의 부름을 받고 군대에 가는 젊은이들이 건강하게 전역했으면 좋겠습니다.”
지난달 27일 공개된 이후 ‘D.P.’를 향한 호평이 쏟아졌다. 정해인은 “출연한 배우로서 얼떨떨하다”고 했다. ‘D.P.’는 그에게 가장 느끼는 점이 많았고, 많은 생각을 하게 한 작품이다. 많은 시청자들이 ‘D.P.’에 공감한 이유가 무엇인지도 생각해봤다.
“저도 촬영하면서 제 군 생활이 떠올랐어요. 보시는 분들도 자신의 군 생활이 그려지는 게 당연한 반응이겠죠. 주변에서도 ‘군대가 정말 저렇냐’고 많이 물어보셨어요. 시청자들이 그만큼 더 빠져서 보셨다고 생각해요. 결코 가볍지 않은 이야기고요. 군대 이야기지만, 동시에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군대는 2년 동안 생활하는 사회의 축소판이잖아요. 그래서 많은 분들이 공감된다고 해주시지 않았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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