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이준범 기자 = “네가 안준호구나? 내 아들”
넷플릭스 ‘D.P.’ 2회에서 병원 치료를 받고 자대로 복귀한 한호열(구교환) 상병은 마치 모든 걸 알고 있다는 듯, 안준호(정해인) 이병에게 인사를 건넨다. 한호열은 자신을 형이라고 칭하며 안준호에게 부대 소개와 업무에 관한 일장연설을 늘어놓는다. 안준호는 긴장을 풀지 않고 의심스러운 눈으로 주시한다. 결과적으로 안준호는 한호열을 만나고 나서야 숨통을 틔우고 본격적인 군 생활을 시작한다. 시청자도 마찬가지다. 불안하고 답답하기만 했던 1회를 지나 한호열을 만나고 나서야 기댈 곳을 찾는다. 원작에서 한 명의 인물이었던 인물이 둘로 나뉘어 서로에게 의지하는 구도가 됐다.
최근 화상 인터뷰로 만난 배우 구교환은 자신이 연기한 한호열을 다른 시각으로 봤다. 극장에서 탈영병과 대치 상황에서 급격히 얼어붙는 모습, 안준호를 집으로 초대해 라면을 먹는 모습 등에서 한호열의 진짜 모습을 봤다. ‘무엇이 유머를 한호열의 가장 강력한 무기로 만들었나’ 하는 생각에 빠지기도 했다. 자신이 맡은 캐릭터를 한두 가지 모습으로 규정짓지 않기 위해 생각한 결과다.
“한호열 첫 인상은 마치 군대에 100년 동안 있던 사람 같았어요. 초자연적인 존재인가 싶었죠. 하지만 장면에 따라 판단이 바뀌었어요. 어떤 장면에선 용맹한 호랑이 같고, 어떤 장면에선 약하고 한없이 감싸줘야 할 인물로 보이기도 했습니다. ‘어떤 인물로 규정 짓지 말자’가 제가 연기할 때 캐릭터에 다가가는 방법 중 하나예요. 이번엔 더 각 장면 생각을 많이 했어요. 한호열은 제 주변에 가까운 위로해주고 싶은 친구이자, 위로받고 싶을 때 제게 와주는 친구라고 번갈아 가면서 계속 생각했던 것 같아요.”
‘D.P.’ 공개 이후 한호열을 연기한 구교환의 나이가 화제를 모았다. 헌병대장을 연기한 배우 현봉식(84년생)보다 구교환(82년생)이 두 살이나 위라는 사실이 드러나서다. 정작 구교환은 크게 신경쓰지 않는 눈치였다. 실제 나이보다 어린 역할이어도 “제가 믿고, 제작진이 믿으면 시청자도 믿을 거라고 생각했다”라며 “60세를 연기해도 같은 믿음을 갖고 연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신 자신이 좋아하는 유머를 한호열에 담는 것에 집중하려 했다.
“한호열은 저와 다른 지점도 많아요. 제가 가진 것에서 300% ‘업’된 모습을 더하면 한호열의 유머가 나오는 것 같습니다. 감독님이 한호열 역할을 저에게 주신 이유를 설명하며 구교환의 유머 기질을 어느 정도 담고 싶다는 말씀을 해주셨어요. 배우 주성치, 빌 머레이처럼 제가 좋아하는 배우의 호흡을 한호열에 넣어보자는 생각을 했습니다. ‘D.P.’를 통해 제가 좋아하는 유머가 시청자들에게 웃음을 줬다는 것에 성취감이 있어요.”
독립영화계에서 오랜 기간 활동한 구교환은 최근 ‘킹덤: 아신전’, ‘모가디슈’, ‘D.P.’까지 상업 작품으로 연이어 대중을 만났다. OTT와 영화를 가리지 않는 점도 특징이다. 구교환은 “스크린에서든, OTT에서든 극이 시작되면 마치 거기 있었던 사람처럼 보이고 싶다”며 “그게 가장 큰 욕심”이라고 했다. 배우로서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은 궁금함이 가장 크다.
“가장 먼저 이야기를 봐요. 정확히 말하면 이야기 안에 존재하는 인물에 대한 호기심이죠. 사실 정확하게 답을 내리고 작품에 들어가진 않는 편이에요. 첫 촬영이나 어떤 장면에서 그 인물을 알게 되는 경우도 있어요. 호열이는 휴가를 나와서 안준호를 집에 초대했을 때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됐어요. 감독님들이 이미 의도한 것이겠지만, 실제 장면을 마주하고 움직일 때 배우로서 느껴지는 것들이 있거든요. 계속 궁금한 인물, 내가 판단할 수 없는 것들에 관심이 많은 편이에요.”
‘D.P.’는 그동안 영화에 집중했던 구교환이 출연한 첫 시리즈물이다. 마음가짐은 같았다. 그저 조금 긴 영화를 찍는다는 마음으로 작업에 임했다. ‘D.P.’가 그에게 어떤 작업으로 남을지는 아직 알 수 없단다. 다만 행복했던 작업이란 건 확실하다.
“한호열은 직장이나, 우리 주변에 필요한 인물 같아요. 제가 본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호열이가 부산역에서 내려서 ‘하이, 부산’이라고 했을 때예요. 자세히 보면 뒤에서 환하게 웃는 준호의 모습이 보이거든요. 호열이가 군대를 바꾸거나 거창한 변화는 이루지 못했어요. 하지만 한 인물에게 미소를 남겨줬다는 것 자체가 기억에 남아요. 제 주변에도 한호열 같은 사람이 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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