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한성주 기자 =혼인에 기반하지 않은 가족도 제도적으로 포용해야 한다는 요구가 이어지고 있다.
비혼 동거 가족은 서로의 보호자가 되기 어렵다. 15일 여성가족부가 공개한 비혼동거 실태조사 결과, 지난해 기준 비혼 동거 가족을 형성한 경험이 있는 만 19~69세 국민 3007명 가운데 절반(49.2%)은 ‘가족의 법적인 보호자로 인정받지 못했다’고 토로했다. 출생신고를 할 때(52.3%), 의료기관에서 보호자가 필요할 때(47.3%), 보육시설이나 학교에서 가족관계를 증명해야 할 때(42.9%) 등의 상황에서도 고충이 컸다.
제도적 혜택을 누리는 것도 언감생심이다. 비혼 동거 가족 응답자 가운데 과반(50.5%)은 주택 청약, 주거비 대출 등 주거지원제도 이용이 어렵다고 답했다. 세금 납부 시 인적공제나 교육비 혜택의 사각지대를 지적한 응답도 62.4%에 달했다. 응답자들은 공적 가족복지서비스 수혜 시 동등한 인정(51.9%)과 사망·장례 시 법적 배우자와 동일한 인정(50.2%)이 절실한 것으로 나타났다.
비혼 동거 가족을 혼인에 기반한 가족과 차별할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유대감과 협동을 가족의 본질로 본다면, 비혼 동거 가족은 오히려 혼인에 기반한 가족보다 더욱 이상적인 모습이다. 비혼 동거가족의 63%는 배우자와 만족스러운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고 답했다. 가족실태조사에서 파악한 혼인 기반 가족(57%)보다 6%p 높은 수치다.
오히려 비혼 동거 가족은 성평등한 가족문화의 모범을 보여주고 있었다. 비혼 동거 가족의 70%는 배우자와 시장 보기, 식사 준비, 청소 등 가사 노동을 똑같이 분담한다고 답했다. 자녀 양육과 교육도 61.4%가 배우자와 똑같이 분담한다고 답했다. 가족실태조사에서 혼인 기반 가족은 불과 26.6%가 배우자와 가사노동을 똑같이 분담한다고 답했다. 자녀 양육과 교육을 배우자와 동일하게 분담하는 비율은 39.2%에 그쳤다.
사회적 변화를 반영해 법률과 제도를 제때 개선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비혼 동거 가족의 현황과 문제사항을 명확히 파악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새롭게 등장한 삶의 방식과 가족 다양성을 고려한 정책 마련도 과제로 꼽혔다.
변수정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15일 개최된 여성가족부 가족정책포럼에서 “가족을 형성하는 방식이 다양해지고 혼인 및 가족의 의미가 변화했다”며 “성인기의 의무 이행 과업과도 같던 혼인이 더 이상 모두가 거치는 이벤트가 아닌 선택사항이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결혼이라는 단일 제도만 존재하는 사회에서 행정통계는 결혼을 택하지 않은 사람들의 관계를 포착하지 못한다”며 “현재 사람들이 어떤 형태로 가족을 구성하고 함께 살아가는지 실태를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영정 서울시여성가족재단 연구위원은 “비혼동거 가족 및 다양한 생활공동체들이 정책으로부터 소외되지 않으려면, 제도 개선을 위한 기초 작업과 더불어 구체적으로 차별을 개선하는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내다봤다. 그는 “법률 제개정과 생활동반자 제도 도입을 중심으로, 그동안 다양한 생활공동체가 보장받지 못했던 돌봄의 권리, 경제적 권리, 사회적 인식 개선을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광동 한국법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프랑스는 종래 이성간 결합 및 혈연 중심의 가족 관념이 지배적이었지만, 가족의 구성과 결합이 완화된 형태의 가족을 제도화 했다”며 “독일의 경우 합법적인 혼인과 비혼 생활공동체 사이의 차이점과 경계가 해체되고 있다”고 해외 사례를 소개했다. 그는 “비혼동거 관련 입법모형 구축시 해외의 입법사례를 참고하면서도 국내 정책 입안의 필요성, 시기, 현실성, 헌법상 근거 등을 구체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조은주 전북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동거관계에 대해 전반적인 사회 태도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확대되어가고 있는 추세로, 비혼동거 가족 지원을 위한 법제도 개선 필요성에 대한 국민 인식도 상당한 것으로 나타났다”며 “사회적 인식보다 법제도 개선이 뒤처지고 있는 현실에 대해 음미해볼 필요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송효진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우리 사회에서 가족다양성이 증가하는 변화에 맞추어, 사회의 차별적 인식과 처우를 해소하고 예방하기 위한 법적 근거가 필요하다”며 “가족 상황과 형태를 이유로 차별을 가하는 것을 금지하는 근거가 마련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가족 정책의 기본법 또는 포괄적 차별금지법 등에 이같은 근거 규정을 둘 수 있을 것”이라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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