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 게임’ 망작 아니면 걸작…모험이었죠” 황동혁 감독 [쿠키인터뷰]

“‘오징어 게임’ 망작 아니면 걸작…모험이었죠” 황동혁 감독 [쿠키인터뷰]

기사승인 2021-09-30 06:46:01
황동혁 감독. 넷플릭스 제공

[쿠키뉴스] 이준범 기자 = 수억원 빚을 진 사람들이 모여 어린 시절 즐기던 게임에 참가한다. 어딘지도, 누가 주최하는지도 모르고, 진행 요원은 얼굴을 가렸다. 상금은 456억원. 탈락은 곧 죽음을 의미한다. 만화 같은 설정의 한국 드라마가 전 세계 시청자들을 매혹했다. 미국과 전 세계 넷플릭스 인기 순위 1위를 달리고 있는 ‘오징어 게임’ 이야기다.

‘오징어 게임’은 영화 ‘도가니’ ‘남한산성’을 연출한 황동혁 감독의 작품이다. 만화책을 읽다가 아이디어를 얻어 2009년 직접 쓴 대본이 12년 만에 빛을 봤다. 대단한 인기만큼 논란도 많고 궁금증도 많았다. 지난 28일 화상 인터뷰로 만난 황동혁 감독은 지금 상황이 얼떨떨한 눈치였다. 현재 심경부터 각종 논란에 대한 입장, 게임 선정 과정과 작은 디테일까지 하나씩 성실하게 답했다. 45분 동안 이어진 황 감독의 답변을 일문일답으로 정리했다. (‘오징어 게임’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으니 주의)


- ‘오징어 게임’이 전 세계에서 엄청난 인기를 얻고 있어요.

“잘 되려고 만들었지만, 이렇게까지 잘될 줄은 저도 생각 못했어요. 상상도 못한 일이 일주일 만에 벌어지니까 얼떨떨해요. 좋다가도 이게 진짜인가 싶고, 약간 멍한 상태입니다.”


- 어떻게 만들게 된 작품인가요.

“2008년 처음 떠올렸던 작품이에요. 그때 경제적으로 가장 힘든 시기였죠. 작품을 하다가 엎어지고, 생활비도 부족해서 대출받고 빚도 생겼거든요. 내가 데스게임에 참여하면 어떨까, 만들면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 시작하게 된 작품이에요.”


- 해외에서 인기를 끄는 이유가 뭘까요.

“넷플릭스와 작업하기 때문에 글로벌 시청자에게 통하는 작품을 만들고 싶었어요. 단순하고 비주얼한 게임을 준비했어요. 다섯 번째 게임은 원래 동그란 딱지 게임에서 구슬치기로 바꿨어요. 아름답고 홀짝 게임이 간단하잖아요. 아이들 게임이 가진 단순성은 전 세계 사람들도 이해하기 쉬워요. 동시에 어느 나라나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 때문에 힘든 세상이 됐어요. 부익부빈익빈이 더 심해졌다고 하잖아요. 전 세계 누구나 경제적인 모순, 구조적 문제를 겪고 있어서 ‘오징어 게임’에 더 공감해주신 것 아닐까 생각해요.”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 스틸컷

- 제작 과정에 고충은 없었나요.


“전 영화를 하던 사람이에요. 8시간 분량 작품을 만드는 건 영화 네 편을 동시에 만드는 거죠. 혼자 대본 쓰고 촬영하는 과정이 힘든 일이에요. 이번 작품하면서 몸이 정말 많이 상했어요. 다시 또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힘든 작업이었습니다. ‘오징어 게임’은 가장 모험이라고 생각하고 한 작품이에요. 중간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모 아니면 도, 누군가에겐 망작이고 누군가에겐 걸작이라고 생각했죠. 리스크가 컸던 작품입니다. 대신 마음대로 해볼 수 있는 걸 다 해볼 수 있는 기회인 건 장점이었어요. 어느 회는 코미디처럼, 어느 회는 모험이나 휴먼 드라마처럼 만들었어요. 제가 시도해볼 수 있는 모든 장르를 한 작품 안에서 할 수 있는 점이 매력이었습니다. 드라마는 이런 매력이 있다는 걸 고통과 함께 깨달았어요.”


- 다른 데스게임 작품들과 어떻게 차별화하려고 했나요.

“데스게임은 전제가 비슷해요. 힘과 권력을 가진 사람이 약한 사람을 게임장에 몰아넣고 게임 시킨다는 건 데스게임의 클리셰죠.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비유나 우화처럼 만들고 싶었기 때문에 전제는 같을 수밖에 없었어요. 차별점은 ‘오징어 게임’엔 영웅이 없다는 거죠. 보통 데스게임은 똑똑한 사람이 헤쳐가고 상대를 무찌르고 세상을 구원할 영웅이 존재하지만, ‘오징어 게임’은 그렇지 않아요. 기훈(이정재)조차 남의 도움으로 게임을 풀어가죠. 똑똑하고 잘난 영웅 이야기가 아니라 모든 사람의 일이라고 생각하게 하고 싶었어요. 또 보통 강제로 게임을 시키지만 전 나갈 수 있는 권한을 줬어요. 나갔다가 다시 자발적으로 들어오죠. 해외 반응을 보면 2회에서 많이 놀라더라고요. 게임은 간단해서 규칙을 이해하는 데 몇초 걸리지 않아요.게임보다 게임하는 사람의 감정과 심리를 더 보이게 하고 싶었어요.”


- 이미 사용 중인 일반인의 전화번호가 유출돼 피해를 입었어요.

“없는 번호를 찾아서 쓴다고 체크했어요. ‘010’을 안 눌러도 걸리는 시스템이 있는지 제작진이 체크를 못했죠. 꼼꼼하게 살피지 못해 사과드려요. 지금 제작진이 해결 중이에요. 전화번호가 영상에 뜨는 문제도 해결 중인 걸로 알고 있어요. 드라마에 나오는 계좌번호는 사실 제작진의 계좌번호예요. 456원을 보내는 분들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문제가 될 것 같아서 얘기해서 정리하는 과정입니다.”


- 여혐 논란도 일어났어요.

“여혐이라고까지 하낀 좀 그래요. VIP들이 있는 공간에 나오는 분들은 남녀 한명씩 바디페인팅 시켜서 도구로 쓰는 모습을 형상화했어요. 인간을 도구화시키는 사회를 비판하고 싶었죠. 혐오가 아니라 캐릭터들이 극단적인 상황에 처했을 때 할 수 있는 대사들을 쓰려고 했어요. 캐릭터를 구축하기 위한 현실적인 선택이었습니다. 특정 성별을 혐오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었어요.”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 스틸컷

- 게임을 배치한 순서에 의미가 있나요.

“처음 대본을 썼을 때 배치한 것과 동일해요. 가장 기본적인 건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처음, ‘오징어 게임’을 가장 마지막으로 하는 거였어요. 첫 게임은 가장 대중적이고 수백명이 같이하는 게임이어야 했어요. 동시에 가장 충격을 줄 게임이 무엇인가 생각할 떄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가 떠올랐습니다. 수백명이 큰 운동장에서 같이 움직이고 멈추는 게임을 하면 그 자체로 충격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오징어 게임’은 가장 격렬한 게임이에요. 어릴 때 ‘오징어 게임’을 하면서 몸싸움이 일어나고 다치기도 했어요. 마지막에 두 명의 주인공이 투사처럼 선 위에서 목숨 걸고 하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중간엔 ‘달고나 게임’처럼 쉬운 게임과 ‘고공 줄다리기’처럼 긴장감 있는 게임을 순차적으로 배치했습니다.”


- 참가자를 456명으로 정한 이유가 있나요.

“처음엔 1000명으로 1000만원씩 100억원이었어요. 그런데 100억이 너무 작아졌어요. 아파트가 70~80억원씩 하는 상황에서 얼마가 적절할까 생각했죠. 가장 많았던 로또 당첨 금액을 찾아보니까 400억원대 기록이 있더라고요. 상금을 400억원대로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456번이 외우기도 쉬울 것 같았죠. 만약 시즌2를 하게 되면 456을 다른 사연의 번호로 쓸 생각도 하고 있어요.”


- 왜 빨간 머리였나요.

“기훈이 머리를 자르고 정상적인 삶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장면이에요. 과연 그가 머리 자르고 아무 일 없는 사람처럼 정상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기훈이 입은 상처나 그가 느끼는 분노를 헤어스타일로 표현하고 싶었다. ‘깔끔하게 잘라주세요’ 대신 그런 머리를 시도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죠. 작품에 핑크 색감을 계속 써서 노랑이나 파랑 머리보다는 빨간 머리가 상징성과 일관성 있을 것 같아서 그렇게 했습니다.”
 

- 새벽(정호연)이 원래는 남자 캐릭터였다고 들었어요.

“보니까 남자가 너무 많았어요. 여성을 대표할 캐릭터가 있어야 해서 바꿨어요. 원래는 지영도 지용이란 이름의 남자였어요. 3년 전 대본을 바꿀 때 ‘꼭 남자일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여자로 할 수 있는 효과적인 게 많은 것 같았어요. 감성적으로도 훨씬 조화롭다는 생각을 했고요.”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 스틸컷

- 2회에서 일남이 굳이 기훈을 찾아간 이유가 뭘까요.

“첫 만남에서 기훈이 아무도 말 걸지 않는 일남에게 먼저 말을 걸잖아요. 그게 일남의 어떤 부분을 건드렸다고 생각했어요. 보통 노인에게 별 관심도 없고 멀리하는데, 오지랖 넓은 기훈은 ‘여기 뭐하고 계시는 거냐’고 대화를 나누는 사람이에요. 그 한 번의 만남이 일남의 관심을 끌었고, 그래서 기훈을 찾아가서 게임에 다시 들어오도록 유도한다는 설정이었어요. 기훈이와 같이 놀고 싶어서 그랬을 거예요. 기훈이 일남의 아들이란 설도 있던데 그건 아닙니다. 하하.”
 

- 미술에 대한 칭찬도 많아요.

“일남이 들어가서 놀고 싶어서 만든 게임으로 생각하고 작업했어요. 무시무시한 게임장이 아니라 어린 일남이 빠질 수 있는 콘셉트를 잡았죠. 현실에 존재하는 공간이 아니라, 초현실적인 느낌으로 하고 싶었어요. 미술 회의를 정말 많이 했어요.”


- ‘오징어 게임’이 전하는 메시지는 뭘까요.

“‘오징어 게임’에 많은 사람이 공감하는 세상이 됐어요. 작품으로 보면 좋을지 모르지만, 세상으로 보면 서글프다고 생각해요. 마지막 대사가 ‘난 말이 아니야 사람이야’잖아요. 말처럼 살아가지만 우린 말이 아니에요. ‘우린 사람이고 이렇게 말처럼 살아서는 안 된다’는 얘기, ‘누가 우리를 말처럼 움직이는 게임판을 만들었는지 알아야 하고 분노해야 한다’는 얘길 기훈이를 통해 하고 싶었어요. 그게 제가 하고 싶은 얘기예요.”


- ‘오징어 게임’ 시즌2가 나올 수 있을까요.

“제가 몸이 너무 망가져서 다시 ‘오징어 게임’을 혼자 할 수 있을까 싶어요. 영화를 구상하고 있어서 그걸 먼저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렇게 인기가 생기고 원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걸 책임지려면 ‘수습해야하지 않을까’라고 열어놓고 생각하고 있어요.”


bluebell@kukinews.com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
이준범 기자
이 기사 어떻게 생각하세요
  • 추천해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추천기사
많이 본 기사
오피니언
실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