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데뷔 후에 이렇게 많은 인터뷰를 하기는 처음이에요.” 화면 너머 배우 이원근이 수줍게 웃으며 말했다. 반달 모양으로 휘어지는 눈을 보니, 그가 왜 ‘소형견’으로 불리는지 단숨에 알 수 있었다. 이원근은 지난 6일 종영한 SBS 금토드라마 ‘원 더 우먼’에서 조연주(이하늬)를 짝사랑하는 안유준을 연기했다. “누나가 내 편인 적은 별로 없었어요. 내가 항상 누나 편이었지.” 극 중 기억을 잃은 채 졸지에 재벌가 며느리 신세가 된 연주를 유준은 단번에 알아봤다. 최근 화상으로 만난 이원근은 “어떤 상황에서도 연주를 이해하고 믿어주며 편을 들어주는 게 유준이의 매력”이라고 말했다.
일편단심 연주만 바라보는 유준이지만, 처음부터 둘 사이 러브라인이 기획되지는 않았다. 이원근은 “촬영 초반엔 ‘유준은 연주를 응원하고 따르는 인물’로 표현됐었다. 멜로 감정은 나중에 나와서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지 감독님께 여쭤보니, ‘연주 앞에선 귀엽고 강아지 같다가도 일할 땐 진지한 모습을 보여주면 좋겠다’는 말씀을 하셨다”고 귀띔했다. 서평지검 검사인 유준은 연주 앞에서 손으로 꽃받침 모양을 만들며 애교를 떨다가도, 취조실에 들어가면 날카로운 눈빛으로 카리스마를 뿜어낸다. 이원근은 “유준의 편차를 표현하는 데 집중했다”며 “유준을 입체적으로 그려주신 작가님과 감독님에게 감사하다”고 말했다.
유준과 한승욱(이상윤)의 신경전도 볼거리였다. 자신의 연적임을 직감한 걸까. 유준은 첫 만남 때부터 승욱에게 으르렁댄다. “승욱과 유준의 매력이 서로 달라 우열을 가릴 순 없어요. 그런데 극중에서 유준이가 승욱보다 부자 아닌가요? 세금을 1000억이나 냈다는데. 그게 나은 점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웃음)” 유준과 연주가 이별하는 장면은 이원근이 낸 아이디어로 완성됐다. 대본엔 ‘담담하게 보낸다’고 쓰였지만, 이원근은 눈시울을 붉혀 유준의 감정을 표현했다. 그는 “촬영에 들어가니 눈물이 고이고 말도 떨려서 그 감정을 살려 연기했다”면서 “유준이의 결말이 마음 아프지만, 연주와 관계가 아름답게 정리된 것 같아 마음에 든다”고 돌아봤다.
이원근은 인터뷰 내내 “감사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드라마가 높은 시청률(17.8%, 닐슨코리아 전국 기준)로 막을 내려서만은 아니다. 그는 “선배 배우들에게 좋은 에너지를 받았다”고 했다. ‘원 더 우먼’을 이끈 배우 이하늬에겐 “대사가 많은데도 NG 한 번 없이 역할을 소화하셨다”며 “드라마 흥행 동력은 선배님의 열연”이라고 찬사를 보냈다. 1년6개월 간 의무 경찰로 복무한 뒤 오랜만에 촬영장으로 돌아온 그에게 이하늬는 좋은 선생님이었다. “좋은 배우,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고민을 품고 있던 그에게 본받을 만한 역할 모델이 돼서다. 이원근은 “국방의 의무를 다하는 동안 나는 어떤 아들, 어떤 친구, 어떤 배우였는지를 생각해봤다. 늘 성장하는 배우이자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그 방법은 살아가면서 찾아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20대 초반에 ‘시간이 지나면 다 변하기 마련이다. 네가 어떻게 변할지 궁금하다’는 말을 듣고 크게 상처받은 경험이 있어요. 저는 제 모든 걸 보여줬다고 생각했는데, 돌아오는 말은 ‘너도 변하겠지’라니…. 그때 다짐했어요. 변함없이 좋은 사람이 되자고요. 형식적인 얘기로 들릴 수도 있지만 진심이에요. 제 올챙이 시절을 잊지 않으려고요. 제가 어떻게 자랐는지, 제가 겪은 힘듦과 슬픔은 무엇이었는지를 기억하며 언젠가는 후배들을 바르게 인도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제 경험들을 토대로 마음가짐과 자세를 바로 잡으며 살다 보면, 좋은 사람이자 좋은 배우로 향하는 길을 지혜롭게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