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글로벌캠퍼스재단의 최근 행보를 보면 ‘후안무치(厚顔無恥)’란 사자성어가 떠오른다. 낯가죽이 두꺼워 부끄러움을 모른다는 뜻이다.
재단은 공유재산 수의계약 불법임대, 직원의 청탁금지법 위반, 직장 내 괴롭힘 등이 최근 쿠키뉴스 보도를 통해 알려지자 자성은커녕 직원 입단속에만 혈안이 됐다.
인천글로벌캠퍼스재단은 지난 1일 재단 사무총장 명의로 ‘재단 이미지 실추 행위 등에 대한 엄중경고’란 제목의 이메일을 전 직원에게 발송했다. (단독기사 ‘인천글로벌캠퍼스, 부실운영 자성 없이 입단속 이메일‘ 참고)
이 이메일을 살펴보면 부실운영 등에 관한 재단의 인식과 입장, 태도를 엿볼 수 있다. 먼저 '악의적인 의도로 익명성을 이용해 재단의 경영방침 및 입주대학 등에 대해 사실과 무관한 개인적 견해를 게시했다'는 부분을 보자.
‘악의적인 의도’ 주장은 재단의 자체 판단과 입장이 들어갈 수 있으니 그렇다 치자. 그러나 ‘재단의 경영방침 및 입주대학 등에 대해 사실과 무관한 개인적 견해’ 주장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겠다는 의도가 읽힌다.
경영방침이라면 공유재산을 학원에 수의계약으로 불법 임대해준 것으로 보인다. 보도 당시엔 불법 임대에 대해 적절하지 못했다고 인정했다. 그런데 이메일엔 사실과 무관한 개인적 견해로 호도하고 있다.
쿠키뉴스가 보도한 모든 기사엔 ‘입주대학’이라는 용어가 쓰이지 않았다. 학원과 수의계약 불법임대를 지적했을 뿐이다. 학원을 입주대학으로 여기는 것인지, 혼동하고 있는 것인지는 알 길이 없다. 다만 학원과 입주대학은 하늘과 땅 차이다. 게다가 무등록 학원인데 말이다.
두 번째 ‘업무상 지득한 정보를 오·남용해 내부 직원 개인정보를 유출·침해하는 등 대외적으로 재단 이미지·신뢰도를 실추시켜 공직기강 저해’라는 부분이다. 내부 직원 개인정보는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로 형사재판을 받는 것, 직장 내 괴롭힘 신고 조사 등 두 가지다.
개인정보는 마땅히 보호받아야 한다. 그러나 인천시 출자·출연기관이고 급여를 세금으로 받는 공인(公人)의 지위를 가진 직원의 일탈행위까지 보호받아야 한다는 주장엔 쉽게 수긍이 가지 않는다. 직원의 일탈행위가 대외적 이미지와 신뢰도를 실추시켜 공직기강을 저해한 것인데 재단의 주장은 되레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세 번째 ‘비밀정보, 재단 또는 재단 내부 직원을 위해할 목적의 거짓정보, 직원 개인정보를 무단 유포·유출 행위 발견 시 징계위원회 회부 최대 해임까지 이를 수 있음을 엄중 경고’라는 부분이다.
재단은 ‘해임’이라는 최고 수위 징계를 적시하며 협박에 가까운 엄포를 했다. 스스로 시인한 불법 임대, 청탁금지법 위반, 직장 내 괴롭힘 신고 등을 ‘거짓정보’라고 단언하면서 말이다. 왜 이렇게까지 무리수를 두는지 배경이 궁금할 수밖에 없다.
통상 대다수 기관은 이런 경우 해당 직원에 대한 조치부터 한 뒤 수습에 힘쓴다. 그런데 재단은 아무런 조치 없이 오히려 일탈행위를 두둔(斗頓)하는데 재단의 2인자인 사무총장까지 나섰다. 이 직원이 대체 누구길래 궁금하다. 거물급 인사를 뒷배로 둔 실세 직원인가 하는 의구심을 떨쳐내기가 쉽지 않다.
네 번째 ‘재단 임직원은 상기 사항을 숙지하고 엄격히 준수하기 바라며 향후 재단 업무추진 방해 등 유사사례 발생시 강력한 징계 외에 민·형사상 책임 등 어떠한 불이익도 감수하는 것으로 간주할 것이며 재단에 끼친 각종 손해에 대해 끝까지 추적하여 지체 없이 변상·복구토록 할 것‘이라는 부분이다.
공공기관이 전 직원을 상대로 보낸 이메일 내용이라는 것 자체가 놀랍다. 전 직원을 상대로 아예 대놓고 겁박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 문구를 정독하면 온몸이 오싹해지고 등골에 땀이 흘러내릴 지경이다. 하물며 직원들은 어떠하랴.
재단은 2017년 교직원 카드깡 횡령사건으로 사법처벌과 함께 비리감사를 받아 ‘비리기관’ 낙인(烙印)이 찍힌 아픈 경험이 있다. 이후 재단은 청렴도 강화와 이미지 회복에 힘써온 것으로 알려져 왔다. 하지만 이메일을 보니 도덕적 기준은 2017년과 별반 차이가 느껴지지 않는다.
인천글로벌캠퍼스재단은 2012년 외국 명문대학이 함께 사용하는 공동캠퍼스 운영을 목표로 설립된 재단법인이다. 정부가 캠퍼스 건축비 등을 댔고, 인천시가 재산을 출연해 운영 전반을 관리한다. 현재 운영비 전액은 시 산하 인천경제자유구역청 예산으로 충당되고 있다.
현재 인천글로벌캠퍼스에는 뉴욕주립대 Stony Brook과 FIT, 겐트대, 조지메이슨대, 유타대 등 외국 명문대학이 입주해 있다. 이들 대학은 지성의 요람이자 산실이다. 재단의 존재 이유이고 기본이자, 핵심은 입주대학의 학교 운영 전반을 지원하는 것이다.
대학과 무관한 학원에 불법 임대해주고 캠퍼스 시설까지 공유하도록 해준 것이 ‘경영방침’이라 강변하니 쓴웃음이 나온다. 외부 비판을 ‘악의적 의도’로 폄훼하며 책임회피, 안으론 재갈 물리기에 여념이 없으니 개탄스럽기 짝이 없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언로(言路) 차단은 비리와 부패의 시작이다. 잠시 틀어막을 순 있겠지만 종착은 자멸뿐이다. 얼마 전 공석이던 재단의 대표이사 자리에 신임 대표가 부임했다. 무너진 공직기강과 심각한 부실운영, 깊어진 내부 불신 등 켜켜이 쌓인 난제를 어떤 방책으로 풀어갈지 주목된다.
인천=이현준 기자 chungsongha@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