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방 업주 박씨는 2000만원의 선불금을 주고 조씨를 고용했다. 박씨의 지시와 강요가 없었지만, 조씨는 커피 배달을 나갈 때마다 스스로 손님을 대상으로 성판매를 하고 커피값과 별도의 화대를 받았다. 몇년 후 조씨가 선불금을 제때 갚지 못하자 박씨는 소송을 냈다. 그런데 법원은 박씨가 돈을 돌려받을 자격이 없다고 판결했다.
# 울산의 한 유흥주점 업자는 여성들을 고용하면서 선불금을 지급하는 대신, 지역 신용협동조합으로부터 대출을 받도록 했다. 여성들은 인당 4000만원 내외 대출을 받으면서 연대보증까지 섰다. 신용협동조합은 유흥주점과 결탁해 여성 433명에게 총 156억7100만원의 신용대출을 내줬고, 결국 파산해 여성들에게 돈을 갚으라며 소송을 냈다. 법원은 여성들의 연대보증과 채무가 모두 무효라고 판결했다.
조씨와 울산의 여성들은 성매매 피해자로 인정됐다. 조씨가 커피 한잔을 배달해서 버는 돈은 2000원이었다. 하지만 업주는 조씨에게 월 30만원의 재료비를 청구했다. 지각을 하면 시간당 2만원, 결근을 하면 하루에 25만원의 벌금도 물렸다. 울산 유흥주점은 여성들에게 엄연한 불법행위인 성매매를 조장·알선했다. 신용협동조합은 이 사실을 알고도 대출을 실행했다. ‘자발적 성판매’ 프레임이 씌워졌지만, 사실은 경제적으로 압박당해 성매매 업계에 갇힌 것이다.
성매매로 인해 생긴 빚은 갚을 필요가 없다. 업주 개인에 대한 채무는 물론, 제2·제3 금융권 채무도 마찬가지다. 성매매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 제10조는 성매매 관련 채무관계는 형식을 불문하고 무효라고 규정한다. 빚은 성매매 여성들의 족쇄로 꼽히지만, 마음만 먹으면 여성들은 언제든 족쇄를 풀어낼 수 있다.
탈성매매 여정은 전화 한 통으로 시작된다. 여성가족부가 24시간 운영하는 1366 여성긴급전화에 연락해 상담사에게 나의 자초지종을 설명하는 ‘초기상담’을 한다. 내가 현재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지, 받고 싶은 도움이 무엇인지 등 기초적인 정보를 알리는 단계다. 초기상담을 마치면 상담사는 내 거주지와 가깝고, 나의 문제를 해결해줄 역량을 갖춘 상담소를 연결해준다. 서울에는 다시함께상담센터(시립), 여성인권센터 ‘보다’(민간) 등이 대표적이며, 이 외에도 수많은 탈성매매 상담소가 운영되고 있다. 연결된 상담소가 나와 맞지 않는다고 느껴져도, 단념하지 말고 다른 상담소 연결을 요청하면 된다.
상담원과 마주 앉아 본격적인 상담이 진행된다. 상담은 대부분 대면으로 진행된다. 상담소에 직접 찾아가거나, 상담원에게 내가 있는 곳으로 방문해줄 것을 요청할 수 있다. 탈성매매 계획을 설계하려면 상담원은 나의 △경제상황 △학력·이력 △건강상태 △가족·친구 등 인적 네트워크 △성매매 유입 계기 등을 전반적으로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상담원과 나의 신뢰 관계 형성이 중요하기 때문에 대면 상담은 필수다. 대화를 하고, 자필로 나의 이야기를 적기도 한다. 밝히기 싫은 사실은 털어놓지 않아도 된다. 상담소에 밝힌 정보들이 외부에 노출될 위험은 없으며, 탈성매매 지원을 받는 동안 가명을 사용할 수도 있다.
채무관계 ‘대청소’가 실시된다. 내게 얽혀있는 채무관계 목록을 작성해야 한다. 빚을 진 시기와 액수, 채권자, 일했던 업소 등을 활동가의 설명에 따라 기억나는 대로 정리한다. 성매매와 관련된 불법 일수, 선불금, 마이킹 대출은 상담소에서 채무부존재 소송을 통해 없앤다. 채무부존재 소송은 ‘갚을 필요 없는 빚’임을 입증하는 과정이다. 성매매 관련성을 증명하기 어려운 빚도 파산·회생 제도를 활용해 줄인다. 경찰 조사와 재판 등 모든 과정은 상담소의 상담원들과 변호사가 도와준다. 물론, 상담원은 소송이나 파산을 강요하지 않는다. 상담원은 해결책을 제안하고, 최종 결정은 내가 한다.
의료·주거·교육지원이 이어진다. 새로운 직업을 갖고 살아갈 준비를 하는 시간이다. 우선, 내게 필요한 병원 진료를 받을 수 있다. 상담소와 연계된 병원에 가거나, 내가 원하는 병원에 상담원과 동행한다. 학원이나 직업교육기관에서 교육을 받고, 취업을 연계 받아 일경험을 쌓을 수 있다. 병원이나 학원에 다닐 때 내가 탈성매매 지원을 받고 있다는 사실은 절대 공개되지 않는다. 거주지가 불안하면, 숙식이 제공되는 쉼터에 입소해 2년 동안 지낼 수 있다. 쉼터는 비공개 시설이기 때문에 안전이 보장된다. 지역의 성매매 집결지에 머물렀던 경험이 있다면, 쉼터에서 독립한 이후에도 약 1년간 지자체의 탈성매매 지원 조례를 통해 매달 주거비, 생계비, 교육비를 지원받는다. 전주시, 수원시, 창원시, 원주시를 비롯해 여러 지자체가 이런 조례를 두고 있다.
모든 지원은 무료다. 탈성매매 과정에 포함된 지원을 받기 위해 지불해야 하는 비용은 없다. 탈성매매는 국가가 보장하는 개인의 권리다. 성매매피해자보호법 제3조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탈성매매를 지원할 의무가 있다고 규정한다. 이에 따라 상담소는 정부와 지자체의 예산을 활용해 탈성매매를 지원한다. 상담소에서 활동 중인 상담원들은 미성년자도, 전과자도, 성매매 단속 현장 검거자도 모두 도울 매뉴얼을 갖춘 전문가다. 나는 ‘탈성매매 의지’ 하나만 준비하면 된다.
취재 도움= 이하영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 전국연대 공동대표
한성주 기자 castleowner@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