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기사를 끝낸 후 문득 든 생각은 로맨스스캠이 보이스피싱보다 악랄하다는 것이다. 물론 피해자들의 돈을 갈취한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로맨스스캠은 긴 시간 피해자들의 ‘마음’에 큰 상처를 입힌다. 이런 점에서 그 죄질이 더 깊고 악랄했다.
피해자 중 한 명은 “사람을 한 번 좀 믿어보고 싶었다”고 했다. 그는 취직 후 사회초년생으로 사회에 뛰어들어 열심히 살아갔다. 하지만 믿고 있던 사람에게 배신당한 그는 직장도 그만두고 우울증으로 고통받고 있었다. 대외활동을 하지 않던 그에게 인터넷에서 다정하게 다가온 로맨스스캠 사기꾼은 하늘에서 내려온 동아줄과 같았다.
이후 투자제안이 이어졌지만, 사기라는 것을 알고나서도 돈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는 설명은 처절했다. 사람에게 배신당해 상처를 입은 사람이 또 다시 상처를 입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기자에게 와닿았다. 끝내 그 믿음은 배신당했고, 모든 것을 잃어버린 피해자에게 남은 것과 많은 빚과 파산신청뿐이다.
이렇게 ‘돈’과 ‘마음’ 두 번 상처입은 로맨스스캠 피해자들은 한 번 더 상처를 입게 된다. 피해사실을 호소하더라도 제대로 된 구제를 받을 수 없기 때문. 국가가 집중적으로 단속에 열을 올리는 ‘보이스피싱’과는 정말 대조적이다.
로맨스스캠 피해자를 구제할 방법은 사실상 없다. 로맨스스캠의 경우 은행의 지급정지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보이스피싱은 전자통신금융사기 특별법에 근거해 즉각적인 계좌지급정지가 가능하지만, 로맨스스캠은 ‘물품 사기’로 분류돼 제외된다.
따라서 송금 신청을 한 은행이 ‘착오송금’이라고 보고 자체적으로 연락을 하거나, 적극적으로 나서주지 않는 이상 피해금액은 해외에 숨어있는 사기꾼의 계좌로 흘러들어가게 된다.
심지어 로맨스스캠 피해에 대한 자료조차 부족하다. 미국이나 영국에선 로맨스스캠 피해가 심각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적극적인 조사 및 대응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지난 8일 국정원에 접수된 신고를 정리한 통계가 발표됐지만, 국내에서 발생한 로맨스스캠 전체 피해를 반영하지 못한다.
‘돈’은 물건으로 분류된다. 하지만 ‘사랑’을 물건이라 볼 수 있을까. 로맨스스캠을 ‘물품 사기’로 분류해 피해자들을 도와주지 못하는 국내법의 현실은 웃을래야 웃을 수 없다.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기 부끄러워 숨어있는 로맨스스캠 피해자들은 국가의 ‘분류’로 오늘도 고통받고 있다. 하루빨리 로맨스스캠의 심각성을 깨닫고 제대로 된 대응체계가 만들어지길 희망한다.
김동운 기자 chobits3095@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