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는 동짓날에 팥죽을 쑤어 온 가족이 함께 나눠 먹으며, 집안의 평안과 건강을 기원하는 풍속이 있다. 고려시대 이색(李穡)이 저술한 『목은집(牧隱集)』의 「팥죽을 먹다[豆粥]」라는 시에서 ‘무더운 여름철에 궁중에서 일을 하며 팥죽을 먹었다’는 구절을 통해 여름에도 팥죽을 즐겨 먹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 풍속을 적은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는 ‘초복, 중복, 말복에 팥을 삶아 죽을 쑤어 먹는다’라는 구절도 기록되어 있다. 이처럼 복날 먹는 팥죽을 복죽(伏粥)이라 하였는데, 이를 통해 알 수 있듯 겨울철 동짓날은 물론이고 무더운 여름을 나는 음식으로도, 팥죽이 널리 사랑받아 왔음을 알 수 있다.
팥을 삶으면 붉은색을 띤 거품이 난다. 붉은색은 카로티노이드 색소성분인 안토시아닌이다. 팥에 함유된 안토시아닌은 항산화 작용이 있는 물질로 찬물에도 녹는 수용성이다.
거품은 사포닌(saponin)의 일종으로, 사포닌은 비누를 뜻하는 ‘soap’와 어원을 같이 한다. 비누처럼 거품이 많이 나기 때문에 그렇게 이름 붙여진 것이다. 팥을 삶을 때 나오는 붉은 색의 거품이 많은 물에는 인체에 유익한 생리활성물질인 안토시아닌과 사포닌이 많이 함유되어 있는 것이다.
팥 사포닌은 나쁜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고, 혈액순환을 돕는 역할을 한다. 또한 팥에 함유된 폴리페놀류는 중성지방이 쌓이는 것을 억제하고, 활성산소를 제거하여 암세포 발생을 효과적으로 억제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팥이 인체에 도움을 주는 이유는 체내의 불필요한 수분을 소변을 통해 체외로 배출시키는 작용이다.
인체에서 이뇨를 담당하는 기관은 신장, 우리말로 ‘콩팥’이다. 신장의 모양은 콩을 닮고 그 작용은 팥을 닮았다고 하여 콩팥인 것이다. 한의학에서는 팥을 ‘적소두(赤小豆)’라고 부른다. 적소두는 소변을 잘 나오게 하고 해독작용을 하며 고름을 배출하는 효능도 있다. 따라서 소변이 시원치 않을 때, 몸이 잘 붓거나, 열이 많을 때 음식으로나 약재로 팥을 사용한다. 또한 팥은 다이어트에도 도움이 되는 것으로 최근 들어 인기가 높다.
팥은 동북아시아가 원산지로 우리나라에서는 오래 전부터 재배해 왔다. 오랜 재배 역사만큼 다양한 요리에 사용되어왔다. 동짓날의 대표적 음식인 팥죽은 물론이고, 여름에 더위를 쫓는데 인기 높은 팥빙수, 그리고 각종 빵과 과자류에 들어가는 팥고물, 팥소, 팥앙금 등으로 사용된다.
팥의 주요성분은 탄수화물과 단백질이며 각종 무기질 및 비타민, 사포닌을 함유하고 있다. 팥의 칼로리는 다른 곡물과 비슷한 수준인 100g 기준으로 약 312칼로리이다. 그런데 팥이 다이어트에 도움이 되는 곡물로 알려진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상대적으로 단백질과 식이섬유가 많다는 점과 GI 지수(혈당 지수)가 낮아서 체내에 흡수되는 탄수화물의 속도가 느린 덕분이다. 또한 체내 불필요한 수분을 체외로 배출하는 작용 덕분이다. 수분을 배출하는 작용은 칼륨이 중요하다. 팥에는 칼륨 함량이 높다고 알려진 바나나의 4배 이상의 칼륨이 함유되어 있어서, 짠 음식에 많이 들어있는 나트륨을 체외로 잘 배출함으로써 부기를 빼는 작용을 하기 때문이다.
팥은 곡류 중 비타민B1이 가장 많다. 비타민B1이 부족하면 입맛이 떨어지고, 기억력이 감퇴하며, 수면 장애를 겪는다. 그러므로 팥을 적절히 섭취하면 팥에 함유되어 있는 풍부한 비타민 B1성분이 신진대사를 촉진시켜 피로를 풀어주고, 기력보충에 효과를 나타낸다.
민간에서 산후에 지친 산모의 몸을 보하기 위하여 잉어에 팥을 넣어 대리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는 『식료본초(食療本草)』에서 ‘잉어는 각기병과 부은 증상을 다스려주고 열감이 나는 관절통을 치료하며, 소변을 조금씩 너무 자주 보는 증상을 다스려준다. 여기에 팥과 녹두를 더하면 효과가 좋다’라는 구절에서 기인한 것이다.
『食療本草』:「和鯉魚爛煮食之,甚治腳氣及大腹水腫;散氣,去關節煩熱,止小便數;綠赤者,並可食。」
그러므로 꼭 출산 후의 산모가 아니더라도 잘 먹지 못한 상태에서, 불필요한 수분정체로 몸이 푸석푸석하게 부은 사람에게 효과적임을 알 수 있다.
팥과 비슷하게 생긴 곡물로 홍두(紅豆)가 있는데, 홍두는 영양 면에서는 팥과 비슷하지만, 크기가 더 크다. 팥과 홍두의 가장 큰 차이점은 체내의 불필요한 수분을 배출하는 효능이 홍두에는 없다는 점이다. 그래서 다이어트에 팥과 비슷하다 하여 홍두를 사용하면 원하는 다이어트 효과를 보기가 어렵다. 하지만 균형 잡힌 식사 대신 팥만 너무 좋아하면 몸이 수척해진다는 구절이 전해진다.
(赤小豆不宜久食,久食则令人黑瘦结燥)
이는 팥이 지닌 강한 이뇨작용 때문으로, 너무 마른 사람은 팥을 오래 먹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본격적인 추위가 찾아오는 동지 즈음에, 맛과 영양 면에서 도움이 되며, 나쁜 기운을 물리쳐준다는 전설을 담은 팥죽을 코로나 팬데믹으로 지친 주변 이웃들과 함께 나누는 즐거움이 그 어느 때보다 그리워지는 시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