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과 백 경계에서 열일하는 ‘경관의 피’ [쿡리뷰]

흑과 백 경계에서 열일하는 ‘경관의 피’ [쿡리뷰]

기사승인 2021-12-31 06:19:01
영화 ‘경관의 피’ 포스터

민재(최우식)는 강윤(조진웅)이 건넨 명품 정장과 시계를 착용하고 외제차를 운전한다. 불법주차 단속원은 경찰 배지를 보여주는 민재에게 “외제차 타는 경찰은 처음 본다”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이래도 되는지 싶은 민재에게 강윤은 상위 1% 상류층을 잡기 위해 필요한 유니폼이라 타이른다. 민재는 고급 빌라에서 호화로운 생활을 누리는 강윤의 돈이 어디에서 나온 건지 의심한다.

영화 ‘경관의 피’(감독 이규만)는 정체불명의 후원금을 받으며 위법 수사를 이어가는 광역수사대 에이스 강윤과 그를 감시하는 원칙주의자 경찰 민재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다. 민재는 경찰이었던 아버지의 죽음에 숨겨진 비밀을 찾기 위해 강윤의 팀에 발령받아 신종 마약 사건을 수사한다. 그 과정에서 처음엔 의심스럽던 강윤의 행동과 말에 점점 신뢰를 느낀다. 민재는 이전처럼 원칙대로 살아가야 할지, 강윤처럼 범죄자를 잡는 걸 우선으로 할지 고민에 빠진다.

일본 작가 사사키 조가 쓴 동명의 원작을 바탕으로 하는 영화다. 일본 작품 특유의 비정하고 차가운 태도가 영화 전체를 장악하고 있다. 민재가 느끼는 감정이나 인간을 향한 따뜻한 정서, 사건의 중요성과 흥미로움엔 관심이 없다. 어떤 태도로 일을 해야 하는지, 그 목적을 달성하는 과정에서 윤리는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자신이 하는 일의 진짜 정체는 무엇인지 등 업무에 관한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마약을 수사하는 경찰을 다룬 그동안의 한국영화들이 여럿 떠오르지만 그것과 다른 결이다. 불필요한 주제들을 제쳐두고 하나만 좇는 영화의 태도는 영화 속 인물들과 닮았다.

영화 ‘경관의 피’ 스틸컷

강윤을 둘러싼 여러 시선은 인간의 욕망을 전제로 한다. 더 많은 부를 쌓고 자신의 능력을 뽐내고 싶어 하는 인간의 본성은 모두가 강윤을 의심하게 한다. 하지만 이야기는 생각처럼 단순하게 흘러가지 않는다. 범죄와 평범한 삶의 경계에 서 있는 직업 경찰의 정체성이 부각되면서다. 특수한 범죄자를 잡는 특수한 직업 세계에도 보편적인 논리가 적용되어야 하는 걸까. ‘경관의 피’는 정답이 없는 균형감 있는 문제를 낸 후, 인간 내면에 미스터리를 숨겨두고 질주한다. 외부에서 나름대로 정답을 찾아가는 민재의 고군분투는 흥미롭다. 일 잘하는 인물들이 더 잘하기 위해 애쓰는 이야기를 장르적 재미 위에 얹어 흥미롭게 만들어냈다.

부패한 경찰로 의심받는 강윤을 연기한 배우 조진웅은 이미 여러 드라마, 영화에서 비슷한 경찰 역할을 소화했다. 익숙한 캐릭터가 지겹게 느껴지지 않는 경험이 신선하다. 신선한 캐릭터를 만난 최우식은 전형적이지 않은 연기를 선보이며 관객들을 영화 속으로 안내한다.

다음달 5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
이준범 기자
이 기사 어떻게 생각하세요
  • 추천해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추천기사
많이 본 기사
오피니언
실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