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좀 걸렸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예능 ‘솔로지옥’은 지난 10일 넷플릭스 전 세계 TV쇼 부문에서 5위(플릭스패트롤 기준)에 올랐다. 한국에서 제작한 예능 프로그램이 10위권 안에 든 건 처음이다. 지난달 18일부터 매주 토요일 2회씩 공개하며 꾸준히 입소문을 탄 결과다. ‘솔로지옥’은 어떻게 국내를 넘어 세계 시청자를 사로잡았을까.
‘솔로지옥’은 JTBC 소속 두 명의 PD가 넷플릭스와 만든 결과물이다. 11일 화상 인터뷰로 만난 김재원, 김나현 PD는 넷플릭스 전 세계 순위 진입 소식에 얼떨떨한 눈치였다. 김재원 PD는 “국내 팬들이 만족할 프로그램을 계획하고 만들었다”며 “생각 외로 해외 팬들도 반응해주셨다. 무슨 일인지 싶고 이유도 모르겠다”고 솔직한 소감을 전했다. 두 사람이 어떤 제작 과정을 거쳐 지금의 ‘솔로지옥’을 만들었는지 들어봤다.
- ‘솔로지옥’은 어떻게 시작한 프로그램인가요.
김재원 PD “제가 데이팅 프로그램 마니아예요. 지난해 이전에 하던 프로그램이 끝나면서 새 프로그램을 기획하게 됐죠. 전에 무인도에서 촬영할 기회가 있었어요. 한여름에 무인도에서 데이팅 프로그램을 해보면 어떨까 생각했습니다. 기획안을 써서 JTBC 사내 공모전에 제출했더니 CP님이 넷플릭스에 가져가면 더 좋을 것 같은 콘셉트라고 제안해주셨어요. 고맙게도 넷플릭스에서 ‘솔로지옥’ 기획안을 좋아해주셔서 진행을 시작했습니다.”
- 출연자 섭외 기준은 무엇이었나요.
김재원 PD “종합적인 매력을 봤어요. 외모와 직업, 나이도 중요하지만 대화를 나눴을 때 그 사람이 풍기는 아우라 같은 전체적인 매력을 많이 봤습니다. 살면서 이성에게 한 번도 거절당하지 않았을 것 같은 인상의 출연자를 찾기 위해 노력했어요.”
김나현 PD “섹시와 귀티를 포함한 매력이었어요. 자신이 어떤 매력이 있는지 알고 자신감 있게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을 뽑자는 마음으로 캐스팅 했습니다. 결국 그런 친구들이 모여준 것 같아요. ‘솔로지옥’이 좋은 반응을 얻는 원인이 아닐까요.”
김재원 PD “섭외는 대부분 SNS를 통해서 했어요. 특정 직군만 섭외될 것 같아서 길거리에 나가서 전단지를 돌려보기도 하고, 회사나 대학교 홍보실에 연락해서 추천해주시는 분들을 알아보기도 했어요.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모든 걸 동원해 섭외했습니다.”
- 촬영과 편집하면서 어떤 점을 신경 썼나요.
김나현 PD “현장에서 출연진들이 솔직하고 자유롭게 생활할 수 있도록 최대한 개입하지 않으려고 했어요. 연애 감정에만 편하게 집중할 수 있도록 펼쳐놓으려고 했죠. ‘솔로지옥’은 러닝타임이 짧은 편이에요. 러브라인 위주로만 간결하고 임팩트 있게 편집하려고 했어요. 그 외엔 많이 뺐어요.”
김재원 PD “기획 시작 단계부터 넷플릭스와 40~50분으로 길지 않게 하자고 얘기했어요. 데이팅 프로그램 뿐 아니라 한국 예능은 대부분 80~90분, 2시간 가까이 되는 프로그램도 있어요. 너무 길면 해외 시청자가 보기에 진입 장벽이 될 거라 생각했어요. 예능 PD는 재밌게 잘 만드는 게 직업이라 잘라내기에 아까운 장면도 많았지만 냉정하게 많이 드러냈어요. 결국 그게 시청자 입장에선 가장 질 좋은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형태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소수 마니아를 위한 프로그램이 아니니까요.”
- 일반인 출연진은 어떤 검증 과정을 거쳤나요.
김나현 PD “여러 번 만나서 인터뷰했어요. 넷플릭스 자체적으로 출연자를 검증하는 단계들이 있어요. 다른 데이팅 프로그램보다 1~2단계 더 면밀하게 검증했습니다.”
김재원 PD “예를 들면 정신과 전문의 상담을 통해서 스트레스 상황을 견딜 정도로 정신력이 튼튼한지 도움을 받기도 했어요. 섭외도 오래 걸렸지만 검증도 꽤 오래 걸린 편이에요. 결과적으로 출연자를 더 신뢰할 수 있었어요. 루머가 있는 것도 알지만, 출연자가 직접 명확하게 아니라고 했으니 근거 없는 소문이지 않았을까 싶어요.
- 넷플릭스와 일하는 경험은 어땠나요.
김재원 PD “PD로서 굉장히 좋았어요. 완성도에 훨씬 더 많이 신경 쓸 수 있었어요. 편집본을 너무 많이 봐서 나중엔 출연자 멘트를 다 외울 정도였으니까요. 그만큼 편집할 시간이 충분히 주어졌습니다. 사전 제작은 처음이라 걱정도 많았어요. 시청자 반응 없이 엔딩까지 만드는 건 처음이었어요. 우리 감에만 의존해서 가야 한다는 게 부담되고 걱정도 컸어요. 사전 제작을 해서 190개여국 시청자에게도 더빙과 자막까지 제공하는 기회가 생긴 것 같아서 결국 모든 게 좋았습니다.”
- ‘솔로지옥’은 다른 데이팅 프로그램과 무엇이 다를까요.
김재원 PD “모든 데이팅 프로그램의 공통점이 선택이에요. 누군가는 선택하고 선택의 결과를 온전히 받아들여야 하는 순간이 찾아오죠. 고백했지만 거절을 당하거나, 결국 받아들여지거나 하는 식으로요. 그 순간순간의 감정은 누구도 숨길 수 없어요. 살면서 누구나 겪어본 감정이기도 하잖아요. 그 감정을 느끼려고 데이팅 프로그램을 봐요. 지난해 훌륭한 데이팅 프로그램이 많이 나왔지만 일종의 변화구라고 해야 할까요. 전 남친과 전 여친이 나오거나 현재 커플이 나와서 다른 사람과 데이트를 하기도 했어요. ‘돌싱’이 나오기도 했고요. ‘솔로지옥’은 그런 변화구 없이 원론적인 데이팅 프로그램으로 만들고 싶었습니다.”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