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1. 지난해 8월 9일 21시 30분에 방영한 K채널 드라마 1회차에서 아버지가 미성년자인 아들에게 소주잔을 주고 소주를 따라준다. 아버지는 물을 따라서 건배를 하고 미성년자인 아들은 술을 마신다. 화장실에 갔다 온 다른 아들이 “난 왜 소주, 난 왜 소주 안 주는데, 아버지? 한 잔만 줘. 소주 주세요.”라고 하자 아버지는 “이놈 자식이, 도대체 누굴 닮아서” 하며 다른 아들에게도 소주를 따라준다. 2회차에서는 경찰대학에 합격한 아들에게 “축하한다. 잘했어.”라고 말하며 술을 따라준다. 아버지와 아들은 건배를 하고 술을 마신다.
사례2. 지난해 8월 10일 22시 30분에 방영한 J채널 예능 11회차에서 출연자 A는 인터뷰 중 “가장 부러웠던 것은 해방타운에 오자마자! 얼음에 맥주를! 따서 바로 마시는 거, 그게 너무 하고 싶었어요.”라고 말한다. ‘낮술이 주는 여유를 즐기고픈 A’ 자막도 달린다. 이 대사와 함께 과거 B가 해방타운에 들어와 맥주를 따라 마시는 장면을 다시 회상해 송출한다.
미디어에 노출된 음주 장면이 성인의 음주를 늘리는 효과가 있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됐다.
한국건강증진개발원이 미디어 음주장면 노출이 성인 음주 문제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고, 그 결과를 국내 학술지인 보건교육건강증진학회지에 게재했다. 그동안 드라마, 예능 등 미디어 속 음주장면은 대표적인 음주 조장환경으로 알려져 왔으나, 방송업계의 인식과 자정활동 빈도는 매우 낮은 편이었다.
이번 연구는 미디어의 영향과 청소년 보호에 초점을 둔 그동안의 연구에서 대상을 성인까지 확대, 미디어 음주장면 노출 정도가 성인 음주에 미치는 영향을 검증하고자 실시했다. 전국 17개 시·도 20세 이상 65세 미만 성인남녀 1057명을 대상으로 한 온라인 설문조사를 기반으로 통계분석을 진행했다.
연구 결과, 미디어 속 음주장면에 자주 노출될수록 성인의 긍정적 음주기대와 음주동기가 증가하고, 음주문제가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드라마·예능·인터넷 술방 등의 음주장면에 대한 노출이 많아지면 긍정적인 음주효과에 대한 기대감으로 인해 음주동기가 높아져 결국 음주가 증가하는 것이다.
이번 연구는 그동안 ‘서민의 술’, ‘애환을 달래주는 술’, ‘대인관계를 원만하게 하는 술’ 등으로 긍정 미화됐던 미디어 속 음주장면과 성인 음주문제 증가 사이의 상관관계를 밝혔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한편, 지난해 방영된 TV 드라마, 예능 프로그램에 대한 모니터링 결과, 음주장면이 송출된 편 수 기준으로 음주장면은 1편 당 2.3회 송출된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건강증진개발원은 지난해 전체 시청률 상위 10위 드라마 219개(편수 1787회), 전체 시청률 상위 20위 예능 프로그램 438개(편수 1739회) 등 총 657개(편수 3526회)에 대한 모니터링을 진행했다.이 중 음주장면이 노출된 프로그램은 395개(편수 1427회), 장면은 3231건에 달해, TV 드라마, 예능프로그램 1회(편) 당 약 2건의 음주장면이 등장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한국건강증진개발원은 모니터링한 3231건의 음주장면 중 2017년 보건복지부와 함께 마련한 ‘미디어 음주장면 가이드라인’, 방송심의에 관한 기준, 패널조사 등에 따라 문제가 있다고 판단한 22건에 대해 방송심의를 요청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는 19건 중 2건을 ‘권고’와 ‘의견제시’ 수준으로 심의조치했으며, 3건은 현재 심의 중이다. 나머지 심의조치되지 않은 건의 경우 ‘표현의 자유’, ‘미성년자에게 술을 강요하지는 않음’, ‘드라마 전개상 필요함’ 등이 이유인 것으로 나타났다.
강창범 한국건강증진개발원 건강증진사업실 실장은 “최근 TV보다 상대적으로 표현에 더 자유로운 OTT(인터넷으로 영화, 드라마 등 각종 영상을 제공하는 서비스), SNS 등의 채널에서 음주를 주제로 한 콘텐츠가 인기”라며 “이러한 콘텐츠는 음주를 지나치게 미화하거나, 음란·폭력 장면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아 우리 모두의 경각심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조현장 한국건강증진개발원 원장은 “긍정적으로 표현한 미디어 음주장면이 주 소비층인 성인의 음주문제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근거를 이번 연구를 통해 구축했다”면서 “이번 연구 결과와 모니터링 결과를 종합해 미디어 음주장면의 위해성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높이고, 방송계에 자정을 위한 노력에 동참해 줄 것을 지속 촉구하겠다”라고 밝혔다.
노상우 기자 nswreal@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