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숭이두창(Monkeypox) 확진자 증가세가 심상치 않다. 유럽을 중심으로 원숭이두창 확진자는 4500명으로 보름 새 3배 늘었다. 원숭이두창이 동성애로 퍼진다는 잘못된 정보의 확산은 감염 의심자가 자발적 신고를 꺼리고 숨게 해 피해를 더욱 키울 수 있다는 경고가 잇따른다.
한스 클루주 세계보건기구(WHO) 유럽사무소장은 2일(현지시간) “유럽은 현재 세게 원숭이두창 확산의 중심지”라며 “각국 정부와 보건기구, 시민사회가 함께 원숭이두창을 통제하기 위해 긴급행동에 나서야 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테드로스 아드하놈 게브레예수스 WHO 사무총장 역시 “원숭이두창이 어린이, 임산부, 면역저하자 등 고위험군으로 번질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면서 가능한 빠른 시일 내 긴급 비상대책위원회를 재소집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앞서 WHO는 지난달 25일 원숭이두창이 ‘국제적 공중보건비상사태(PHEIC)’에 해당하는지 살펴본 결과 “현재로서는 아니다”는 결론을 내렸다.
원숭이두창은 지난 5월 유럽 국가 중 영국에서 첫 사례가 보고됐다. 감염 초기 남성 동성애자 간 성관계를 통해 감염된다는 잘못된 정보가 퍼졌다. 확산 원인으로 성소수자 파티 등 특정 감염 경로만 부각됐기 때문이다. 유럽 원숭이두창 감염자 99%가 21~40세 사이 남성이라는 점도 의혹을 키웠다.
그러나 세계 보건당국은 이를 잘못된 정보라고 재차 강조하고 있다. WHO는 지난 5월25일 “원숭이두창 감염은 남성과 성관계를 갖는 남성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고 발표했다. 지난달 30일엔 유엔에이즈계획(UNAIDS) 역시 “코로나19, HIV, 최근 원숭이두창 관련 루머가 인종, 경제적 지위, 성 정체성으로 이미 소외된 집단에 대한 낙인과 차별을 강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질병관리청 역시 지난달 28일 ‘팩트체크’ 카드뉴스를 통해 “확진자나 감염동물과의 밀접 접촉, 상처, 체액, 옷·침구 등을 통해 누구나 감염될 수 있다”며 “성적 지향에 관계없이 원숭이두창에 감염 위험이 가장 큰 사람은 감염자와 밀접한 신체접촉을 한 사람들이다. 남성과 성관계를 갖는 남성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고 했다.
또 유럽에서는 감염자 절대 다수가 남성이지만 아프리카에서는 또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WHO에 따르면 올해 들어 아프리카 국가들은 1800여건의 원숭이두창 의심사례를 보고했다. 남녀 감염자 비율은 거의 균등하고 대체로 감염 동물과의 접촉으로 발병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동성간 성접촉으로만 바이러스가 전파된다는 것도 대표적인 잘못된 정보다. 사람간 전파는 성접촉뿐 아니라 감염된 병변(물집, 딱지, 체액)을 통한 환부 밀접 접촉으로도 충분히 가능하다. 침대 시트와 같은 오염된 물질과 닿았을 때도 발생할 수 있다. 비말, 공기 전파도 아예 불가한 것은 아니다.
원숭이두창 감염자는 성소수자라는 ‘낙인효과’는 확진자들이 신고하지 않고 숨게 하는 부작용을 초래, 결국 시한폭탄을 키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방역당국 역시 최대 21일(3주)에 달하는 긴 잠복기 특성상 자발적 신고와 적극적 검사가 국내 유입을 막고 지역사회 확산을 억제하는 최선의 예방책이라고 강조해왔다.
임숙영 질병청 중앙방역대책본부(방대본) 상황총괄단장은 브리핑에서 “감염병 환자에 대한 편견과 사회적 낙인은 의심환자를 숨게 만들어 감염병 피해를 더욱 키울 수 있다”면서 “감염병의 대응 및 관리의 과정에서 환자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생기지 않도록 공동체 모두가 노력해 달라”고 당부했다.
정기석 한림대 성심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원숭이두창 감염의 전제조건은 동성애가 아닌 육체적 밀접 접촉”이라며 “동성이든 이성이든 밀접 접촉하면 원숭이두창에 걸릴 수 있다는 게 확인된 과학적 팩트”라고 말했다.
김우주 고려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유럽과 북미와는 달리 아프리카는 남녀 감염자 비율이 거의 균등한 것으로 나타났다. 감염병은 지역사회 문화나 행동 양식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면서 “감염병은 차별이 없다. 어떤 집단이든 누구든 감염될 수 있다. 낙인찍기가 아닌 좀 더 성숙한 태도와 인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