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지원 작가는 지난 26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자신이 쓴 ENA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이렇게 설명했다. 유인식 PD가 탄생시킨 명장면과 배우들이 탄생시킨 명연기도 많지만, 문 작가의 대사 역시 매회 회자된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3주 후 종영하더라도 잊고 싶지 않은 명대사 다섯 개를 짚어봤다.
“제 이름은 똑바로 읽어도 거꾸로 읽어도 우영우입니다.”
1회에서 첫 출근한 신입 변호사 우영우의 자기소개를 들은 최수연(하윤경)은 얼굴을 찡그리며 말한다. “너 회사에서는 그런 얘기하면 안 돼. ‘기러기, 토마토’가 뭐야.” 한 번 하고 말 줄 알았던 우영우의 자기소개는 매회 반복해서 등장한다. 처음엔 이상하고 낯설었다. 이젠 익숙해지다 못해 안 나오면 섭섭할 지경이다. 토마토를 봐도, 역삼역을 봐도 자꾸 생각난다. “기러기, 토마토, 스위스, 인도인, 별똥별, 우영우”라는 글자만 봐도 특유의 어조로 대사를 읊는 배우 박은빈 목소리가 자동 재생된다. 아무것도 아닌 자기소개를 한 번씩 따라 하게 만드는 귀엽고 중독성 있는 대사로 각인시킨 예가 있었나.
“80년 전만 해도 나와 김정훈 씨는 살 가치가 없는 사람들이었어요.”
우영우는 누군가를 처음 만나면 자폐 스펙트럼 장애라는 정확한 진단명으로 자신을 소개한다. 장애가 있어도 매 사건 천재성을 발휘하는 변호사 우영우의 무난한 활약상을 기대한 시청자들에게 ‘우영우’ 3회는 찬물을 끼얹는다. 우영우보다 중증인 김정훈(문상훈)이 얽힌 사건을 통해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바라보는 과거와 현재 우리 사회의 시선을 고발하는 것. ‘의대생이 죽고 자폐인이 살면 국가적 손실’이란 글에 아무 생각 없이 ‘좋아요’를 눌렀던 시청자들은 이 대사를 들으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늘어져서 보던 ‘우영우’를 똑바르게 앉아서 각 잡고 보게 만든 대사다.
“너는 봄날의 햇살 같아.”
작가가 40대의 멋진 모습을 많이 넣었다는 정명석(강기영)과 우영우와 러브라인을 형성하는 이준호(강태오)가 판타지에 가깝다면, 최수연과 권민우(주종혁)는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인물들이다. 권민우가 자신이 가진 차별주의 시선을 자각하지 못하는 인물이라면, 최수연은 영우를 돕는 자신의 행동에 확신을 갖지 못한 인물로 그려진다. 우당탕탕 우영우가 최수연을 봄날의 햇살로 호명하는 순간, 그동안 최수연에게 가졌던 혹시 하는 의심이 한순간에 날아갔다. 생각지 못한 시점에 등장한 이 따스한 대사는 시청자들에게 누군가에게 봄날의 햇살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 정도로 큰 호응을 얻었다. 아마 많은 시청자들이 ‘우영우’ 최고의 명대사로 기억하지 않을까.
“한 번은 만나보고 싶었어요.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한국 드라마에서 갈등 요소로 빠지지 않는 출생의 비밀은 ‘우영우’를 평범한 드라마로 만들 수 있는 의심스러운 소재였다. 마지막회에서 공개할 줄 알았던 비밀은 의외로 8회에서 드러났다. 드라마를 단순한 신파로 소비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하게 했고, 인간 우영우를 더 깊이 이해하고 싶어지게 했다. 익숙하고 당연했던 어머니의 부재를 우영우가 어떤 마음으로 견뎠을지, 본의 아니게 항상 외롭게 했던 아버지가 우영우에게 어떤 존재인지 다시 생각하게 만든 대사다. 드라마를 보면서 눈물 흘리지 않겠다는 결심이 흔들린 시청자들이 많지 않을까. 우영우를 연기한 배우 박은빈도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 꼽은 장면이다.
“권민우 변호사 페널티 되게 좋아하네?”
권민우가 펼치는 다양한 권모술수는 이제 그만할 법도 하지만, 매회 끝없이 이어진다. 우리 사회가 합의한 약자에게 주어지는 혜택이 과하다며 오히려 강자라고 호명하는 권민우는 드라마에서 자신이 가장 공정하다고 믿는 인물이다. ‘우영우’는 권민우가 자신이 벌인 일에 스스로 넘어지는 전개 대신, 그의 논리를 반박하고 무엇이 잘못인지 짚어주는 이야기를 선택한다. 우영우에게 페널티를 줘야 한다는 권민우 이야기를 들은 정명석 변호사는 한 번 타이르듯 설명한 것으로 해결되지 않았다는 걸 깨닫는다. 그리고 그의 잘못을 지적하며 자신이 동료들과 일하는 방식을 친절하게 설명한다. 답답한 마음을 참고 지켜보던 시청자들이 가장 기다렸던 대사 중 하나가 아닐까. 이 정도론 부족하다며 벼르고 있을 시청자가 더 많겠지만.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
“낙하산 없어” “창의적”… 변호사가 본 ‘우영우’ [‘우영우’ 신드롬①]
‘우영우’에 빌런이 없는 이유 [‘우영우’ 신드롬②]
더 많은, 더 다양한 우영우가 필요해 [‘우영우’ 신드롬③]
내 옆자리에 우영우가 온다면 [‘우영우’ 신드롬④]
우영우와 소수자들 [‘우영우’ 신드롬⑤]
오래 기억하고 싶은 ‘우영우’ 명대사 5 [‘우영우’ 신드롬⑥]
권민우가 빠진 착각 [‘우영우’ 신드롬⑦]