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뮤지컬은 세계로 비상할 준비가 됐습니다. 콘텐츠 산업으로 도약할 준비가 됐습니다. 뮤지컬산업 진흥법으로 날개를 달아주시길 바랍니다.”
뮤지컬 제작사 오디컴퍼니를 이끄는 신춘수 한국뮤지컬제작사협회 회장의 말이다. 신 회장을 비롯한 뮤지컬 업계 종사자들은 29일 서울 여의도동 국회의사당 의원회관에 모여 뮤지컬산업 진흥법을 제정해달라고 국회에 요구했다.
“공공 방임 속에 한국 뮤지컬 성숙 없이 팽창만”
한국은 미국, 영국, 일본과 함께 세계 4대 뮤지컬 시장 중 한 곳으로 꼽힌다. 관객 수와 매출액이 높아서다. 공연예술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뮤지컬 티켓 판매액은 1826억으로,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 이전보다도 높은 매출을 올렸다. 클래식·연극 등을 포함한 공연 시장 전체 티켓 판매액의 80% 가까이를 차지하는 수치다. 최근 몇 년 사이 해외 프러덕션과 협업하거나 한국 창작 뮤지컬 라이선스를 수출하는 사례도 늘어 ‘K-뮤지컬’의 글로벌 흥행 가능성도 높아졌다.
문제는 커지는 뮤지컬 시장 규모를 관련법이 따라잡지 못한다는 점이다. 한국 뮤지컬은 1966년 공연된 ‘살짜기옵서예’ 이후 50년 넘게 질곡을 견뎌왔지만, 법률상으로는 ‘공연’으로 묶여 장르 특성에 기반한 지원을 받지 못했다. 원종원 순천향대 공연영상학과 교수 겸 뮤지컬 평론가는 “한국 뮤지컬은 성숙하지 못한 채 팽창했다. 공공의 방임이 가장 큰 이유”라며 “뮤지컬을 독립 장르로 인지하지 않고 발전 가능성을 모색하지도 않은 채 다른 예술 장르와 뭉뚱그려 취급했다. 공공의 지원과 제도가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올해 초 공연법 개정을 통해 뮤지컬이 법률상 독립 장르로 인정받으면서 업계 종사자들은 뮤지컬산업 진흥법 제정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종규 한국뮤지컬협회 이사장은 “지금도 뮤지컬 지원 사업이 시행되고 있지만, 여러 기관에서 산발적으로 이뤄지는데다 대부분 단기 지원에 그친다”면서 “진흥법 제정을 통해 전담 기구를 설치하고 뮤지컬산업 발전을 위한 기금을 조성하는 등 종합적·체계적·장기적인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춘수 회장은 한국 뮤지컬이 글로벌 경쟁력을 가지려면 진흥법을 토대로 한 정부 지원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신 회장은 “인구절벽 등 내수 시장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해외 시장 진출은 필수”라며 “뮤지컬은 문화선진국으로서 위상을 높일 수 있는 장르인 만큼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뮤지컬계 잇따른 스캔들…관객 공감대 얻을 수 있을까
뮤지컬 업계가 넘어야 할 또 다른 산은 관객이다. 뮤지컬산업 진흥법의 필요성을 관객에게 설득해야 하는데, 상황이 좋지 않다. 지난 몇 년 사이 대극장 뮤지컬 가격이 2~3만원 오르고 할인 정책은 줄어드는 걸 지켜본 ‘회전문 관객’(같은 작품을 여러 번 보는 관객)의 불만이 커졌다. 뮤지컬 ‘엘리자벳’ 10주년 기념 공연을 앞두고 불거진 주연 배우의 캐스팅 관여 의혹도 악재다. 제작사인 EMK뮤지컬컴퍼니가 ‘오디션과 원작사 동의를 얻어 배우들을 캐스팅했다’고 여러 차례 밝혔으나 관객들 반응은 여전히 냉담하다.
업계도 이런 분위기를 인식한 듯 “내부 자정이 필요하다”고 의견을 모았다. 신 회장은 △ 콘텐츠 경쟁력 강화 △ 제작비 조달 방식 다각화 △ 합리적인 제작 시스템 마련 등을 민간의 숙제로 언급했다. 그는 “업계 종사자들이 뮤지컬 시장 발전을 위해 대화해야 한다. 고통스럽겠지만 한국뮤지컬협회와 한국뮤지컬제작사협회가 선두에서 대화의 물꼬를 트겠다”고 했다. 한국뮤지컬협회 배우분과위원장을 맡은 배우 정영주는 “급여와 복지 등 배우가 보호받을 수 있는 법적인 테두리가 필요하다”며 “뮤지컬 산업 진흥법 제정과 함께 뮤지컬배우협회를 만들 계획도 세우고 있다”고 귀띔했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