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리, 오고무, 탭 댄스, 백종원, 비트박스, 고든 램지…. 접점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이 키워드를 아우르는 뮤지컬이 있다. 지난달 30일 개막한 ‘미세스 다웃파이어’다. 배우 로빈 윌리엄스가 주연한 동명의 영화를 각색한 이 작품이 한국에 상륙했다. 지난해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초연한 뒤 해외 라이선스 공연으로는 처음 막을 올렸다. 쏟아지는 배우들 개인기와 밈(Meme)의 향연에 정신없이 웃다 보면 어느새 “사랑이 있는 한 가족은 언제나 연결된다”는 메시지에 다다른다.
주인공 다니엘은 철없는 가장이다. 성우로 일했지만 애드리브를 남발해 직장을 잃는다. 아내 미란다는 “다니엘은 인생이 장난”이라며 그에게 이혼을 통보하고, 세 아이의 양육권도 가져간다. 아이들 곁을 지키고 싶던 다니엘은 친형 프랭크와 그의 동성 배우자 안드레를 찾아가 자신을 여자로 만들어달라고 청한다. 노년의 돌봄 도우미로 변신해 옛집으로 들어가려는 계획이다. 결과는 대성공. 미란다는 육아와 가사에 능한데다가 유쾌하고 따듯하기까지 한 다웃파이어에게 마음을 홀딱 빼앗긴다. 다니엘은 그렇게 아슬아슬한 이중생활을 시작한다.
1993년 개봉한 원작은 각색을 거쳐 시공을 건너뛴 유머로 웃음을 자아낸다. 자신을 “자상하고 리더십 있고 열정적이고 마지막으로 카리스마 있는” 여자로 변신시켜달라는 다니엘의 요구에 프랭크와 안드레는 “오스카의 윤여정”을 예로 든다. ENA 인기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 나와 화제를 모은 인사말, ‘지린다’ ‘차단각’ 등 온갖 신조어,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와 ‘욕쟁이 요리사’ 고든 램지를 패러디한 유튜버 등 한국 관객에게 친숙한 요소가 장면마다 녹아들었다. 말맛을 잘 살리기로 유명한 황석희 번역가의 솜씨다.
무대 위에서 벌어지는 퀵 체인지(공연 예술에서 배우가 의상을 빠르게 갈아입는 것)는 ‘미세스 다웃파이어’의 백미다. 배우들은 러닝타임 165분 동안 30번 가까이 의상, 가발, 마스크 등을 썼다 벗으며 다니엘과 다웃파이어를 오간다. 이중 18번의 퀵 체인지를 무대에서 재현한다. 주름진 노인을 표현한 마스크는 영화 ‘기생충’(감독 봉준호), ‘부산행’(감독 연상호),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 시리즈 등의 특수 분장을 맡았던 스튜디오 셀에서 2개월에 걸쳐 제작했다. 겉모습만 변하는 게 아니다. 의상과 함께 목소리, 표정, 연기 톤도 달라지는 마법이 무대에서 벌어진다.
다니엘 역을 맡아 여장에 처음 도전한 배우 양준모는 말 그대로 깜짝 변신을 보여준다. 안중근(영웅), 장발장(레 미제라블) 등 굵직한 인물을 주로 연기했던 그는 능청스러운 목소리로 매운 농담을 던지다가도 절절한 부성애를 드러내 관객을 웃기고 울린다. 개인기도 볼거리다. 다니엘이 자기 정체를 밝혀야 하는지 고민하는 장면에서 그는 몸을 좌우로 틀며 대사를 뱉더니 “지옥에서 만나자”고 외친다. 자신이 출연했던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를 패러디한 장면이다. 즉석에서 녹음과 반복 재생을 할 수 있는 악기 루프 스테이션을 이용해 비트박스와 랩, 노래를 선보이는 장면은 경탄스럽다. 배우 정성화와 임창정이 다니엘 역에 함께 캐스팅됐다. 미란다는 신영숙과 박혜나가 번갈아 연기한다.
자유롭게 폭소가 터져 나오는 객석 분위기는 ‘미세스 다웃파이어’의 화룡점정이다. 웃음만 있는 게 아니다. ‘미세스 다웃파이어’는 다양한 가족 형태를 긍정하며 감동을 준다. 이혼한 뒤에도 부부가 교류하며 아이를 공동 양육하는 다니엘 가족 외에도, 프랭크·안드레로 대표되는 동성 부부, 입양 가정, 조손 가정 등을 두루 끌어안는다. 어린이 캐릭터를 생생하게 그린 점 또한 ‘미세스 다웃파이어’의 미덕이다. 다니엘과 미란다의 세 아이 리디아·크리스·나탈리를 통해 부모의 이혼으로 혼란스러워하던 자녀들이 새로운 가족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보여준다. 공연은 오는 11월6일까지 서울 잠실동 샤롯데씨어터에서 이어진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