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임부부 지원 사업이 올해부터 지방자치단체로 넘어가면서 일선 병원과 난임 부부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저출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정부가 책임을 지고 정책을 세심하게 설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아이 갖고 싶은 마음 같은데… 지역마다 지원 횟수 달라”
16일 보건복지부 등에 따르면 연 200억원대 국고가 투입됐던 난임 지원 사업이 올해 1월부터 지자체로 이양됐다. 이에 따라 난임시술에 대한 정부형 지원은 건강보험과 지자체 보건소 추가 지원(중위소득 180% 이하 가구에 최대 110만원)으로 이뤄지고 있다.
모든 이들에게 지원금이 지급되는 건 아니다. 기준 중위소득 180% 이하, 기초 생활보장수급자 및 차상위계층이 지원 대상이다. 2022년 기준중위소득 180% 이하는 2인 가구 기준 월 538만원 정도라 사실상 맞벌이 부부는 지원을 받기 힘든 구조다.
연령에 따라 지원금도 달라진다. 만 44세 이하 산모에겐 70%, 만 45세 이상은 50%만 지원하고 있다. 지원 횟수도 제한돼 있다. 신선배아는 최대 9회, 동결배아 7회, 인공수정 5회만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정부 지원 한도를 소진할 경우 난임 부부가 모든 비용을 자부담해야 한다. 난임시술의 특성상 실패를 거듭할 경우 천만원 단위의 본인부담 비용이 들기도 한다.
정부 지원사업을 보완하기 위해 난임부부 시술비 지원을 추가로 하는 지자체도 있다. 서울시는 1회당 최대 180만원씩 3회까지 시술비를 시가 분담한다. 광주광역시는 1회당 최대 150만원씩, 연간 4회까지 지원하고 있다.
지자체 추가 지원이 없는 곳에 사는 난임부부들은 이사까지 고려하고 있다. 난임시술을 여러 번 받은 ‘고차수’ 난임부부인 이모(40)씨는 “이제 받을 수 있는 지원 횟수가 얼마 남지 않아 걱정된다. 자부담으로만 시술을 진행하기엔 높은 금액이라 이사를 가야 하나 고민도 있다”면서 “아이를 갖고 싶은 간절한 마음은 모두 같은데 사는 곳에 따라 차별을 받는 것 같다”고 울먹였다.
난임 전문 병원 곡소리… “미지급금만 억 단위”
정부 사업이 지자체로 이양되면서 일선 병원의 한숨도 깊어졌다. 지자체로 넘기면서 난임부부 지원 사업 예산을 따로 책정하지 않은 탓이다. 지방재정을 통으로 연 4조1000억원 확충했다. 지자체에 따라 난임부부 지원 사업이 후순위로 밀릴 가능성도 열려있다.
익명을 요청한 서울의 한 난임시술 전문병원 원장은 “난임지원 사업이 지자체로 이관되면서 예산이 넉넉지 않은 지역은 10개월가량 지원금을 못 받았다”면서 “병원에선 당장 난임 시술에 드는 물품 대금 지급부터 직원들 급여 등을 줘야 하는데, 미지급금 규모가 천정부지로 증가하고 있다. 언제까지 지급한다는 약속도 없어 답답한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이어 “많은 난임 부부들이 혜택을 받고 있어 병원도 사명감을 갖고 시술을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미지급금 규모가 점점 커져 경영상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난임 지원 사업이 제대로 유지되기 위해선 정당하게 대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범채 광주 시엘병원 원장은 “병원에 오는 대부분의 환자가 지원 대상인데 지자체에서 돈을 주지 않는 상황이라 경영상 어려움이 크다”며 “중앙정부에서 할 때도 미지급금이 고민이었는데 지자체로 넘어가며 더욱 심각해졌다. 쌓여있는 미수금만 10억원이 넘는 수준”이라고 털어놨다. 이어 “행정적 부담도 커졌다. 정부에서 하던 사업을 지자체로 이양하면서 지원금을 청구해야 하는 곳이 30여군데가 넘는다”고 부연했다.
그러면서 “일선에선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난임시술을 하며 노력하고 있는데, 10개월 동안 돈이 밀려도 해결이 안 되는 상황”이라며 “미납금은 못 받았지만 서류상으론 수익으로 책정돼 세금고지까지 가중돼 이중고를 겪고 있다”고 말했다.
지자체도 난감하긴 마찬가지다. 광주광역시 한 보건소 관계자는 “현재 관련 예산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라며 “병원에 따라 미납금이 억 단위인 곳도 있다. 어떤 병원은 4월에 신청했는데, 그 다음해 2월에 줄 때도 있다”고 밝혔다.
이어 “지자체로 이양되면서 예산을 증액해야 하는데, 내려온 예산은 그대로다. 병원에서 미지급금을 달라는 민원 전화가 와도 드릴 수 있는 돈이 없어 답답하다”면서 “난임 시술을 받고자 하는 부부가 늘어난 만큼 지자체에도 예산을 추가 편성해야 한다”고 했다.
의료계 “정부, 저출생 문제 해결 의지 있는지 의심”
의료계에서는 정부가 저출생 대책에 사실상 손을 놓은 거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한다. 김재연 대한산부인과의사회 회장은 “해당 사업이 지자체로 이양되면서 문제가 더욱 심각해졌다. 정부에서 난임지원금 예산을 늘려야 하는데, 50억원 밖에 편성하지 않았다. 지금처럼 지자체 이양 사업으로 유지한다면 지원금은 연초에 끝난다. 매년 상황이 악화되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원치 않는 사람에게 아이를 낳게 하려면 엄청난 예산이 들어가지만, 아이를 낳고 싶어하는 난임부부에겐 1000만원 가량만 투입하면 아이를 낳을 수 있다. 아기를 낳고 싶은 사람에겐 사회경제적 이유를 불문하고 지원하는 것이 국가의 의무사항”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난임 지원 관련 예산을 책정한 것을 보면 정부가 저출생 대책에 대한 의지가 있는지 모르겠다”면서 “국가가 책임지고 난임지원 사업을 확대하고, 병원 미지급금은 완납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중신 대한산부인과학회 이사장도 “현장에서는 죽겠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원금을 1년째 밀린 병원이 수두룩하다. 말하자면 지자체가 병원에 외상을 받은 것”이라며 “지자체로 이양되면서 복지부는 일은 덜어졌을지 모르지만 병원에선 행정적·경제적 부담만 늘어났다. 하루빨리 개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복지부는 해당 사업을 지자체로 이양한 이유에 대해 원론적인 답변만 내놨다. 복지부 관계자는 “지방 재정분권 강화로 해당 사업이 지자체로 넘어갔다. 지자체 자율성 보장 측면”이라면서 “행정안전부가 지자체에 난임지원 예산을 따로 책정한 것이 아니라 지자체에서 관련 예산을 편성해야 하는 부분이다. 복지부도 병원들이 미납금을 받지 못하는 상황을 인지하고 있어 조속히 해결해달라고 지자체에 안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은빈 기자 eunbeen1123@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