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가 의료쇼핑·무임승차로 인한 국민건강보험 재정 누수를 막겠다며 첫 정부 개편안을 내놨다. 이를 두고 재정지출 효율화에만 초점을 맞춰 정작 환자들의 부담이 늘어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8일 ‘건강보험 지속가능성 제고방안 및 필수의료 지원대책’을 발표했다. 이번 대책은 건강보험 재정구조를 개편하는 대신 지출을 효율화하는 데 중점을 뒀다. 건보 지속가능성을 위해 불필요한 지출을 줄여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가장 먼저 수술대에 올린 것은 지난 정부의 ‘문재인 케어’다. 건보 보장성 강화를 위해 문재인 케어가 시행됐지만, 이로 인해 과잉진료가 발생해 국민들의 의료비 부담이 증가했다고 평가했다. 근거로는 지난 7월 발표된 감사원의 감사보고서를 인용했다. 해당 보고서에는 건강보험 급여 항목 확대 이후 적정 규모 대비 과다 보상, 지출관리 미흡, 과잉진료 유발 등 문제점이 나타났다는 내용이 담겼다.
결국 ‘문재인 케어’는 사실상 폐기 수순을 밟을 것으로 보인다. 복지부는 자기공명영상(MRI), 초음파 검사 등이 의학적으로 불명확한 경우에도 남용되고 있다고 보고 급여기준을 명확히 하기로 했다. 특히 올해 급여화 할 예정이었던 근골격계 초음파·MRI는 필수 항목을 설정해 제한적으로 급여화하겠다고 못 박으며 지원 규모 축소도 예고했다.
본인부담 상한제 기준도 상향한다. 본인부담 상한제는 연간 건강보험 본인부담금이 개인별 상한액을 초과하는 경우 환급하는 제도다. 지원 대상 중 소득상위 30%의 상한액을 연평균 소득의 10% 수준으로 인상하고, 상급종합병원의 경증질환 105개의 외래 진료는 제외하도록 개편한다.
의료계에서는 해당 대책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보건의료노조는 12일 성명서를 내고 “이번 대책은 건강보험의 지속가능성 제고라고 포장한 보장성 축소 방안에 불과하다”며 “이미 급여화된 MRI·초음파 진단을 의료적 필요에 따라 급여화 여부를 신중하게 검토하겠다는 입장으로, 향후 보장성 확대에 상당한 제동이 걸릴 것으로 판단된다”고 비판했다.
보건의료단체연합도 “건강보험 본인부담 상한제 기준을 상향하려고 한다. 현재의 건강보험 상한제도 주요국가의 제도에 비추어 충분치 않고 비급여가 포함되지 않아 유효성이 떨어지는 상황인데 이를 강화하기는커녕 축소하려는 것”이라고 질타했다.
건보 재정지출 책임을 환자에게 전가한다고도 날을 세웠다. 이들은 “정부가 왜곡해서 언급한 것과 달리 감사원 감사보고서에도 과잉진료를 낳는 것은 병원이 진료, 검사, 처치 등 행위를 많이 할수록 더 많은 수입을 얻는 ‘행위별수가제’를 채택하기 때문”이라며 “거의 무상의료 제도를 운영하는 유럽 대다수 나라들이 한국보다 과잉진료가 적은 것은 의료의 상업화가 문제이지 높은 보장성이 원인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번 대책은 건강보험 보장성이 낮아 의료비 부담에 허덕이는 국민들을 외면하는 것”이라며 “보장성을 축소하려는 윤 정부의 시도는 서민들 대다수의 건강과 삶을 위협하는 것”이라고 경고했다.
노동계에서도 비판이 제기됐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은 성명서를 내고 “윤 정부는 재정을 핑계 삼아 보장성 강화가 아닌 보장성 축소를 외치고 있다. 이는 국민의 생명을 포기하겠다는 의미와 다를 바 없다”며 “이번 발표는 보장성 강화가 아닌 재정 문제에만 집중하고, 국민 개인에게 의료비 부담을 지게 만들고 있어 결코 동의할 수 없다”고 날을 세웠다.
환자들 사이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안기종 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쿠키뉴스에 “MRI·초음파 진단을 의학적 근거에 따라 급여화 여부를 검토하겠다는 부분에 대해 보장성이 위축되지 않을까 우려했다. 다만 복지부에서 건보 보장성을 축소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강하게 이야기를 했기 때문에 지켜볼 것”이라고 밝혔다.
전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국장은 재정지출 효율화 핑계를 대면서, 환자에게 부담을 지우는 구조로 개악한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전 국장은 “정부는 공급자들의 비도덕적 행위로 인해 (MRI·초음파) 과잉진료가 만연하기 때문에 바꿔야 한다고 얘기한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선 민간병원이 95%에 달해 과잉진료를 하게 만드는 구조를 바꿔야 하는데, 그게 아니라 보장성만 탓하고 있다”면서 “이번 대책은 환자 의료비를 높여 건보 재정을 아끼겠다고 발표한 것과 다름 없다”고 했다.
김은빈 기자 eunbeen1123@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