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제시한 ‘실내 마스크 의무 조정 기준’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사실상 마지막 방역 빗장을 푸는 셈인데 정확한 수치도 제시하지 않아 기준이 불명확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부 전문가들은 해당 기준이 ‘비과학적’이라며 지표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26일 질병관리청 중앙방역대책본부에 따르면 이날 0시 기준 코로나19 신규 확진자는 2만5545명이다. 주말 진단 건수가 줄어든 영향으로 전날 5만8448명 대비 3만2903명 줄었다. 1주일 전인 지난 19일(2만6608명)보다 1063명 감소해 사흘째 전주 대비 소폭 감소세가 이어지고 있다.
다만 재원 중인 위중증 환자 수는 9일 연속 500명대를 기록했다. 이날 위중증 환자 수는 583명에 달한다. 전날 사망자는 42명으로, 직전일(46명)보다 4명 적다. 중환자 병상 가동률은 전날 오후 5시 기준 39%다.
코로나19 방역지표에 켜진 빨간불이 여전한 가운데 정부는 ‘실내 마스크 의무화 해제 논의’를 꺼내들었다. 대전, 충남 등 지방자치단체에서 쏘아올린 실내 마스크 해제 논의에 등 떠밀리듯 방역당국이 조정 기준을 마련했다.
방역당국이 지난 23일 발표한 실내 마스크 착용 의무 조정 기준은 4가지다. △신규 확진자 2주 연속 감소 △위중증·사망자 발생 감소 △중환자 병상 가용력 50% 이상 △고령층 개량백신 접종률 50%·감염취약시설 60% 이상 등 4대 지표 중 2개 이상이 충족되면 의료기관, 대중교통 등을 제외한 저위험 실내 시설에서의 마스크 착용 의무를 ‘권고’로 완화할 계획이다.
정부는 ‘과학방역’ 기조에 근거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 22일 국회에서 열린 ‘실내 마스크 의무 해제 당정협의회’에서 “윤석열 정부는 과학 방역에 기초해 코로나19에 대응하고 있다”며 “실내 마스크 의무 조정 문제 역시 과학 방역 기조에서 결정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해당 지표가 지나치게 느슨하다고 지적했다. 우선 ‘중환자 병상 가용력 50% 이상’ 조건은 이미 달성했다. 25일 오후 5시 기준 전국 중환자 병상 가동률은 39%다. 병상 가동률이 유지된다면 향후 3가지 지표 중 한 가지만 충족해도 실내 마스크 의무를 해제할 수 있다.
게다가 신규 확진자나 위중증·사망자가 몇 명 줄어야 하는지, 구체적인 수치도 제시되지 않았다. 김우주 고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과학적 근거라면 수치화·계량화돼야 타당한데, 숫자가 없다. 가령 ‘신규 확진자 수 하루 3만명 이하’와 같이 구체적인 숫자를 제시해야 과학방역 아닌가”라며 “고령자 백신 접종률 50%도 택도 없는 소리다. 75% 이상은 돼야 한다”고 질타했다.
방역정책에 정치적 판단이 개입된 것 아니냐는 우려도 보냈다. 김 교수는 “정치권에서 먼저 얘기가 나온 뒤 복지부 장관과 질병청장을 불러 압박하는 것이 정치방역 아닌가”라며 “지난 정부를 두고 정치방역이라며 그렇게 비판을 했는데, 정치적 이익에 방역을 이용하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고개를 저었다.
4대 지표에 백신 접종률을 포함한 것이 타당하지 않다는 지적도 나왔다. 천은미 이대목동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고령층 백신 접종률 50% 이상이어야 마스크를 자율화할 수 있다는 것이 강제 백신 패스나 다름없는 것 아닌가”라며 “고위험군에 부작용을 감수하면서 백신 접종을 강제하기보다 치료제 처방률을 올리는 방식으로 정책이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예고한 실내 마스크 의무 해제 시점 역시 비현실적이라고 비판했다. 방역당국은 ‘1월 말’ 해당 기준을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지영미 질병청장은 지난 23일 코로나19 정례브리핑을 통해 “예측하긴 어렵지만 (내년) 1월 중 코로나19 유행이 완만한 정점에 이르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시기상조’라고 입을 모은다. 천 교수는 “계절적 상황에 비춰볼 때 실내 마스크 해제 논의를 시작하기에 적절치 않다”며 “바이러스 활동량이 높아지는 겨울엔 인플루엔자(계절독감) 유행과 더불어 코로나19 확진자가 많이 나올 수밖에 없다. 4대 지표를 충족하기 위해선 시간이 상당히 많이 소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 교수도 “크리스마스에 연말, 설 연휴까지 이동이 많아지는 시기다. 여기에 더해 중국에서 신규 확진자가 늘고 있어 언제 유입될지 모른다”면서 “앞으로 어떤 변이가 또 발생할지 모르기 때문에 불확실성이 여전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김은빈 기자 eunbeen1123@kukinews.com